행복을 가장한 인간의 허황된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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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가장한 인간의 허황된 욕망
  • 승인 2015.07.23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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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성진

황보성진

mjmedi@http://


영화읽기 | 종이 달
 
감독 : 요시다 다이하치
출연 : 미야자와 리에, 이케마츠 소스케, 오오시마 유코


요즘 아이들에게 장래희망을 물어보면 대다수가 특정 직업을 얘기하기보다는 그냥 돈 많은 부자가 되고 싶다는 말을 한다. 물론 현대인들에게 돈은 꼭 필요한 존재이고, 이것으로 인해 계층이 나뉘기도 하기 때문에 돈이 많다면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이 어릴 때부터 생긴다는 것이 결코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돈을 어떻게 벌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몇몇의 아이들은 매일 쏟아져 나오는 뉴스 속 인물들처럼 갖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만 벌면 되는 것 아니냐는 얘기를 하는 경우도 있어 우리 사회의 병폐가 답습되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 생길 때도 있다.

평화롭지만 조금은 지루한 일상을 살고 있던 평범한 주부 리카(미야자와 리에)는 파트 타임으로 일하던 은행의 계약직 사원이 되고, 미모와 다정한 성품으로 고객들의 신임을 얻게 되자 점점 자신감을 되찾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외근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백화점을 들르게 된 리카는 계획에 없던 화장품을 구매하지만 가지고 있던 돈이 부족해서 고객의 예금에서 1만엔을 꺼내 충당하고, 곧 은행을 찾아 그 돈을 다시 채워 놓는다. 한편, 리카는 까다로운 고객의 손자인 대학생 코타(이케마츠 소스케)가 학비가 없어 휴학할 위기에 처했다는 것을 알고 도움을 주기 위해 또다시 고객의 예금에 손을 댄다.

일본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19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던 일본 버블 경제 시대를 배경으로 하면서 당시 실제로 벌어졌던 각종 금융관련 사건/사고를 소재로 하는 작품들이 많은 편이다. <종이 달> 역시 그 시대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가쿠다 미쓰요의 동명 소설을 각색하고, 드라마로도 제작된 작품이다. 비단 은행 직원의 횡령 사건이 일본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기에 그다지 독특한 소재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일본의 시대적 배경을 좀 더 이해하고 본다면 비슷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우리나라 관객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상당할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이 영화는 단순한 횡령 사건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어릴 때 아버지의 지갑에서 돈을 훔쳐 기부를 하고, 현재는 은행의 돈을 훔쳐 코타의 등록금을 내주면서 부정적인 방법일지언정 자신의 힘으로 누군가를 도왔다는 것에 삶의 행복을 느끼는 한 여성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이러한 그녀의 심리를 무채색에 가까운 색상에서 점차 밝은 색으로 표현해 나가면서 주인공이 행복함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물론 주인공의 횡령 사건이 알려지게 되고, 회사에서 문제가 발생하게 되지만 그녀는 “가장 행복하다고 느낀 순간 달이 손가락으로 지워졌다. 이 모든 건 종이 달처럼 가짜이기에 괜찮을 거라고 위로하니까 마음이 편해졌다”고 말하면서 행복을 가장한 인간의 허황된 욕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서 ‘종이 달’은 사진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절, 일본의 사진관에서 종이로 초승달 모양을 만들고 그 밑에서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남기는 ‘행복한 순간’을 의미하기도 한다. 1990년대 일본 최고의 스타였던 미야자와 리에가 삶의 의미를 되찾아가는 중년 여성의 모습을 기가 막히게 표현하였고, 그녀는 이 영화를 통해 각종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2015년 제19회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 상영작이기도 한 <종이 달>은 전반적으로 일본 영화답게 약간 밋밋해서 지루하고, 예상과는 다른 결말에 의아하면서 애매모호함을 느낄 수도 있지만 한 번 쯤의 일탈을 꿈꿨던 많은 사람들에게 과연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상영 중>

황보성진 /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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