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 655] 격변하는 시대상을 보여주는 健康風俗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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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 655] 격변하는 시대상을 보여주는 健康風俗圖
  • 승인 2014.11.06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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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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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文家庭寶鑑」

암울했던 일제치하를 거쳐 광복을 이루었지만 혼란 끝에 이어진 미군정과 한국전쟁을 잇달아 겪으면서 한국현대사는 격동 속에 휩싸인다. 격변의 시대에 오로지 생존을 위해 살아남아야했던 한국인들에게 충분한 의료시혜가 이루어질 만한 사회보장체계가 갖춰져 있었을 리 없었다. 그러기에 더욱 더 가정보건이 강조되었고 국민 개개인에게 스스로 지켜야할 위생수칙이 요구되었다.

오늘 소개할 자료는 바로 이 시기에 일반 대중들에게 꼭 필요하다고 여겨졌던 필수지식으로서의 건강상식이 담겨져 있는 통속의약서 가운데 하나이다. 이런 부류의 가정보감이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오는 과도기의 시대적 특징을 반영할 정도로 대중들의 지적 욕구에 일정 부분 부응하였고 끈질긴 생명력으로 오늘날까지도 중판을 거듭할 정도로 스테디셀러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다.

◇「명문가정보감」
1950년 3월에 처음 발행한 이 명문당판 「가정보감」은 50, 60년대에는 서점가의 인기서요, 궁벽한 시골집에서도 한권씩 갖춰야할 가정필비서로 자리 잡았다. 이후 새마을운동이 기세를 올리던 70년대까지만 해도 여전히 村老들에게 애호를 받았지만 이제는 헌책방에서나 간간이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희소해지고 말았다. 필자가 조사한 바로는 일제시기로부터 2000년대 이후까지 수많은 출판사에서 갖가지 모습으로 다양한 판종의 ‘가정보감’류 서적이 쏟아져 나와 명멸하였고, 그중 어떤 것은 베스트셀러보다 못하지 않는 인기를 누린 것도 있다.

대개 이런 가정보감류에 빠지지 않고 포함되는 내용이 바로 보건위생에 관한 기초지식과 만병치료법 등 의약상식류이다. 오늘 소개할 자료에는 표지에 아예 주요 내용을 줄줄이 나열해 놓았는데, 다음과 같다. 해몽판단법, 만병치료법, 백방길흉보감, 정감록비결, 사례편람, 토정비결, 천기대요, 男女受胎知法, 演說式辭法 등이다. 한눈에 보아도 변화하는 세상에 두루 필요한 신구지식과 통속적인 관심사를 반영하는 다분히 미신에 가까운 주술적인 비결류에 이르기까지 다종다양한 내용이 포괄되어 있다.

본문을 들여다보니 맨 먼저 편지투가 들어 있는데, 아마도 전통시대의 순한문투에서 벗어나 국한문혼용을 거쳐 한글시대를 맞이하였지만 예법만큼은 전통을 고수하려 했던 과도기의 고충이 엿보인다. 또한 불안했던 정국과 시대변화를 겪으면서 확실한 통신수단이 발달하지 않아 여전히 편지로 건강과 안부를 묻는 것이 가정사에서 중요한 일상사 가운데 으뜸이었다는 보여주고 있다.

그 다음으로 萬病通治法 항목이 등장하는데 제목 앞에 ‘自由治療’란 부제가 붙어 있다. 참으로 흥미로운 이름이 아닐 수 없다. 아마도 문턱 높은 병원에 가서 의사를 만나기 어려웠던 시절, 집안에서 스스로 해볼 수 있는 간단한 처치법을 알려준다는 것은 주머니가 가벼운 독자들에게 매우 매혹적이고 유용해 보였으리라.

전문은 내과, 외과, 부인과, 소아과, 비과, 이과, 치과, 구강과, 인후과, 안과, 수족과, 풍과, 피부과, 獸蟲傷科, 종창과, 기타 응급요결 등으로 세분되어 있는데, 양한방 어느 쪽 분류도 아닌 일반인의 눈높이에서 설정된 분류방식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기술내용은 기존의 단방요법에다가 민간에서 쓰이던 간단한 처치법들을 모아놓은 것에 불과해 그다지 신빙할 만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다만 표지만큼은 채색화로 장식했는데, 텔레비전 앞에서 서양식 드레스 차림의 신여성이 여유롭게 책을 읽고 있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아마도 당시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을 이 모습은 꿈꾸기 어려웠을 미래이자 건강의 상징으로 꾸며져 있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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