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 650] 영조의 장수비결, 內局牛乳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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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 650] 영조의 장수비결, 內局牛乳粥
  • 승인 2014.10.02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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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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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濟衆新編」③
앞서 살핀 것처럼 「濟衆新編」의 내용 가운데 상당 부분이「東醫寶鑑」과 일치하고 있다. 전문가의 연구에 따르면, 실제 이 책에 등재된 처방은 모두해서 541수인데, 이 중「동의보감」에서 따온 처방이 대략 397수에 이른다고 한다. 즉, 수록 처방에 있어서도 80% 이상이 보감처방에서 유래된 사실은 「동의보감」을 근거로 편집하되 번잡한 것은 덜어내고 부족한 것은 보충했다는 이 책의 편집원칙과 직접적인 관련성을 갖고 있다.
◇「제중신편」

책속의 방제명 앞에 ‘內局’이라고 구분하여 기재한 것은 內局方 즉, 내의원에서 전래되던 궁중비방으로 여기에 수록된 것은 대부분 납약에 해당하는 처방들이다. 납약증치방은 허준 시대에 이미 목록화되었지만 그 상세한 제법만큼은 직접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알기 어려웠을 것이다. 따라서 이 책에 이 모든 제조비법이 수록된 것은 바로 비밀전승 지식을 일반 대중에게 보편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공개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 예로 內局感應元, 水煮木香膏, 瀉靑丸, 龍腦安神丸, 蘇合鄕元, 神保元 등을 들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눈길을 끄는 것은 內局牛乳粥이다. 우유죽은 세종시대에 전순의가 지은 「식료찬요」에서 그 원형을 찾아볼 수 있고 「동의보감」에는 駝酪粥으로 소개되어 있다. 우유 1되에 멥쌀가루를 조금 넣고 죽을 끓여 따뜻하게 먹는 방법인데, 전통적으로 임금님의 새벽 자리끼 조반으로 애용되어 왔다. 특히 영조 임금은 노년에 이르러 이 우유죽을 매우 좋아하였다고 전한다. 「제중신편」에서는 ‘[內局]’이라고 별항을 두어 죽 끓이는 방법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데, 우유와 물을 넣고 달이다가 쌀로 빚은 새알심을 넣고 익혀 먹을 때 소금물로 간을 맞추어 조미한다고 하였으니 여기에 內局方으로 새삼 다시 오른 것도 모두 사연이 있었던 셈이다.

또 하나「제중신편」의 공헌으로 볼 수 있는 중요한 점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俗方󰡑에 대하여 효용성이 입증된 것들을 적극 수용하여 기록으로 남겼다는 점이다. 사실 「제중신편」이전 시대에 󰡐속방󰡑을 적극 받아들이는 것이 그리 흔한 일은 아니었다. 󰡐속방󰡑중에는 효과가 입증되었더라도 일부 계층이나 지역에서만 국한하여 전래되던 것들이 많았는데, 서적을 통해 널리 보급함으로써 백성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조선후기의 민간의서에서는 세속의 속방을 이런 방식으로 수집하여 포용함으로써 의학지식을 폭 넓게 확충하는데 일조한 면이 있다. 지창영은 이것을 두고 1800년대까지 민간에서 통용되던 일반적인 의약지식을 합리적으로 수용했다는 측면에 그 의의가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제중신편」에 수록된 내용 가운데 俗方을 수집하여 채용한 경우로 허로증에 쓰이는 五重膏를 예로 들 수 있다. 붕어에다가 생강, 건강, 호초, 백개자, 마늘 등속을 장만하여 닭 속에 넣고, 이것을 다시 개고기와 함께 소가죽에 쌓아 푹 고아서 고기와 국물을 먹는 사람 양에 맞추어 복용한다. 물고기와 날짐승, 들짐승 고기를 적절히 배합하여 골고루 허로를 보충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지난 주말 경기도한의사회에서 마련한 역대의학인물재조명 학술세미나에서 강연을 마치고 내친 길에 강명길의 묘소 참배길에 동참했다. 여러 차례 이장했다는 그의 묘역이 정조가 묻힌 건릉과 지척에 자리 잡은 것은 기막힌 인연이라 하겠다. 궁중에서만 쓰이던 內局方, 민초들이 다급하게 목숨을 구했던 俗方이 「제중신편」안에서 한데 어우러져 聖俗이 혼융한 蕩平의약방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이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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