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여 년의 가학(家學) 한의사, 선조들의 정신 이어나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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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여 년의 가학(家學) 한의사, 선조들의 정신 이어나갈 것”
  • 승인 2014.08.15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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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호 기자

김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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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7대째 한의사 이어온 춘원당한방병원 윤영석 원장


1847년부터 현재까지 한의사를 가업으로 이어가고 있는 춘원당한방병원. 선조들의 뒤를 이어 7대째 한의사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은 윤영석 원장(56)이다. 윤 원장의 장남은 동국대한의대에 재학 중이며 차남은 현재 제주도에서 공보의 생활을 하고 있다. 이들은 8대째 가업을 이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200년 이상 대대손손 한의사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8대인 두 아들도 현재 ‘한의대생-한의공보의’ 
한방박물관 운영으로 선조들의 발자취 모아


1847년부터 시작 된 ‘춘원당’
‘춘원당’이라는 이름의 한의원은 1847년 평안북도 박천(博川)에서 1대 윤상신(尹尙信, 1792~1879) 선생이 건립했다. 윤상신 선생은 1817년 과거에 급제해 무관으로 활동하다 1842년 평양에서 용양위부호군(龍驤衛副護軍)의 관직까지 이른 후 물러났고 5년 뒤인 1847년부터 한의사 활동을 시작했다. 그 후 1879년 별세할 때까지 32년간 고향에서 의술을 펼쳤다고 한다.

이어 2대 윤빙열, 3대 윤기찬(尹基燦, 1848~1912), 4대 윤단덕(1862~1915) 선생 등 후손들이 의업을 이었다. 1912년에 3대 윤기찬 선생이 별세하고 3년 후엔 4대인 윤단덕 선생까지 콜레라로 유명을 달리해, 70여 년을 이어온 춘원당 집안은 가학(家學)을 이어가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됐다

이때 5대 윤종흠(尹宗欽 1910~1990) 선생은 5세의 어린 아이였다. 윤기찬 선생의 부인인 양씨는 춘원당의 대를 이어야 한다는 목표를 제일로 삼고 손자 윤종흠 선생을 평양의 명의였던 김춘성 선생에게 맡기기로 했다. 이를 위해 손자를 서당에 보내 한학을 익히게 했고 18세가 되던 1928년, 평양에 있는 김춘성 선생에게 한의학 수업을 받게 했다. 그 후 10년간 수련한 후 의생시험에 합격해 한의사로서의 첫발을 내딛었다. 박골 마을에서 춘원당이 문을 닫은 지 23년 만에 평양에 ‘춘원당’이라는 간판을 다시 걸었다. 당시 평양의 춘원당 한의원은 소화기 질환과 부인병을 전문으로 해 유명해졌다. 윤종흠 선생의 치료법은 기존의 처방에 얽매이지 않고 증상에 따라 스스로 입방하는 것이었다.

윤영석 원장은 “할아버지께서는 본초를 평생 공부라고 강조하셨다”라며 “본초를 알아야 처방을 잘한다는 교육을 많이 받았고 또 기존의 처방을 끌어다 쓰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얘기를 듣고 증상에 맞게끔 처방을 했으며 그 가방이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춘원당 가문은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1951년 윤종흠 선생은 아들 6대 윤용희(尹容熙 1931~1968) 선생과 함께 월남한다. 그리고 1953년 현재 춘원당한방병원이 위치한 서울 종로구 돈의동에 한의원을 개원했다.
윤용희 선생이 서울한의과대학(경희대 한의대의 전신)에 입학해 한의사 집안의 계보를 잇게 되지만 불행하게도 1968년 교통사고로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7대인 윤영석(尹永錫) 원장의 나이가 12세 때였다.

윤종흠 선생은 손자 윤영석 원장의 어린 시절부터 학문적 스승 역할을 했다.
윤 원장은 “초등학교 5학년이 되던 해에 할아버지께서 한의사가 되라는 증표로 팔에 점 형태의 경혈 침 문신을 새겨주셨다”라며 “일종의 의식이었는데 현재 두 아들에게도 한의사가 되라는 의미로 똑같이 경혈 침 문신을 새겨줬다”고 말했다. 또 “할아버지께서 강조하신 것 중 하나가 현재 위치한 한의원 자리를 떠나지 말라는 것이어서 61년간 지키고 있다. 비록 골목에 위치해 있지만 100년이고 200년이고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의미가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윤종흠 선생은 1978년에 윤영석 원장이 경희대한의대에 입학하고 본과 1학년 시절부터 임상교육을 시켰다. 이 교육은 졸업 6년 후까지 이어졌다. 긴 교육과정이 끝나자 윤종흠 선생은 손자 윤영석 원장에게 춘원당한의원을 물려줬다.

◇1953년 당시의 춘원당한의원
<사진출처=춘원당한방박물관>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묻자 윤 원장은 “할아버지께서는 두 아들들에게 예방주사도 못 맞게 할 만큼 모든 병을 한의학으로 치료하셨다”라며 “환자들도 많았지만 할아버지를 양아버지로 모신 분이 특히 많아 삼촌이 여럿이었다”고 말했다.

두 아들도 한의사… 박물관 건립으로 문화적 외연 넓혀
조선말기때부터 한의학을 가학으로 지내오다 보니 자연스레 한의사가 돼야겠다고 다짐한  윤 원장. 그는 “어릴 적 말을 시작할 때부터 한의사가 돼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라며 “지금 두 아들도 어릴 때부터 한의사가 돼야한다고 가르쳤고 현재 첫째는 동국대한의대에 재학 중이며 둘째는 우석대를 졸업하고 면허 취득 후 제주도에서 공보의로 근무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7대에 이어 8대까지 가학이 이어지는 것이다.

윤 원장이 두 아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기본을 충실히 하라는 것이다. 이는 병만 보지 말고 사람을 보라는 의미인데 한의학의 기본처럼 몸 전반적인 것을 보고 시야를 넓히라는 의미다. 또 명의가 되려면 돈을 벌 생각을 하면 안 된다는 것도 강조했다. 최소 3년 동안은 수익을 생각하지 말고 오로지 환자를 보라고 했다.

현재 춘원당한방병원은 본관과 신관 두 개 건물로 나뉘어 있다. 본관에는 한약연구소를 비롯한 검사실, 예진실, 순환기내과, 내분비내과, 피부이비인후과, 부인과, 세미나실이 있으며 신관에는 춘원당 역사관, 재활의학과, 소화기내과, 한약조제실, 탕전실, 춘원당박물관이 있다. 의료진은 윤 원장을 제외한 총 6명의 진료과장이 과별로 진료를 맡고 있다. 
특히 한방박물관에는 그동안 윤 원장이 수집했던 한방유물들 그리고 선조들이 썼던 유품이 전시돼 있다. 또 조선시대에 사용했던 약장기, 초두, 제약기, 약성주기, 약도량형기, 경혈도, 침통, 약소반, 노리개 등 다양한 물품들이 전시돼 있다.

윤 원장은 “모든 비즈니스는 어느 정도 기반이 잡히면 문화적인 것에 투자를 해야 한다”라며 “사람들이 이태리 제품을 좋게 평가하는 것은 문화적인 가치를 부여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어 “의료업도 문화적인 것에 투자를 해야 가치가 올라가고 박물관이 있음으로써 옛날과 지금이 연계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박물관을 운영하면서 선조의 발자취도 모으고 현재의 것도 기록하고 앞으로의 것도 기록해 춘원당을 계승할 것이다”고 밝혔다. 

김춘호 기자 what@mj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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