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호 칼럼] 터스키기 매독사건과 모자생존촉진연구(PROMIS)
상태바
[한창호 칼럼] 터스키기 매독사건과 모자생존촉진연구(PROMIS)
  • 승인 2014.08.14 09: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창호

한창호

mjmedi@http://


한 창 호
동국대학교 한의과대학
상처 없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그러나 요즘 우리에겐 상처가 너무 크다.
세월호가 침몰한 지 120일이 지났다. 그사이 유병언 변사체가 발견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수많은 어린 학생들과 시민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실체적 진실을 밝히려는 의지가 없는 나라에서 살고 있다. 국정원, 검찰, 경찰, 군 그리고 정부, 국회 어디 하나 더 아프게 할 뿐 상처받은 마음에 위안이 되어주지 못한다.
상처 많은 나무가 아름다운 무늬를 남긴다고 하던가? 그러나 무늬를 남기기 위해 상처를 반기는 경우가 있을까? 더군다나 진정 감내하기 힘든 죽음과도 같은 너무도 힘겨운 상처를 받게 되니 말이다.

오늘은 80년 전 있었던 잘못된 사건과 지금 벌어지고 있는 임상시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두 사건은 흑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고,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며, 미국이 주도하는 임상시험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매독과 에이즈라는 당대의 중대한 감염질환에 대한 연구인 점도 닮았다. 역사적 과오를 답습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두 연구에 대해 살펴본다.

터스키기 매독사건
1932년 미국 공중보건국에서는 존 커틀러 박사의 주도하에 약 40년간 미국 알라바마주 터스키기의 흑인들에 대한 매독연구를 진행하였다. 이 지역 흑인들은 매독에 많이 감염되어 있었고, 가난해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매독환자를 대상으로 치료를 하지 않으면 어떤 경과를 보이는지를 관찰하는 연구가 시작되었다. 정부에서 파견된 의사들은 매독으로 고통 받는 흑인들에게 진단과 치료로 오인하게 하면서 혈액과 뇌척수액을 뽑아 검사하고, 아스피린과 철분제를 치료약이라고 나눠줬다. 이 실험은 1943년 매독을 치료할 수 있는 페니실린이 나온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이때 임상시험대상자들은 치료약이 나왔다는 사실을 통보 받지 못했다.

정부는 지역 의사들과 보건소에 생체실험에 참여한 흑인들이 병원에 올 경우 그냥 돌려보내라고 하였으며, 1941년 지역 청년들이 징집되었을 때 매독에 걸린 것이 발견되어 치료하려고 했지만 공중보건국에서 청년 256명의 명단을 건네며 이들을 치료하지 말 것을 요청했고 군에서 이를 받아들였다. 1966년 공중보건국에서 성병 조사 임무를 맡고 있던 피터 벅스턴이 이를 알고 문제를 제기했으나 묵살당했고, 이후 1972년 직장을 그만둔 벅스턴은 신문기자 친구에게 제보하여 이 사건이 다행이 세상에 알려졌다.

결국 1973년 실험은 중단되었고 미국 상원에서 청문회까지 열리게 됐다. 실험 생존자와 유족들은 정부에 소송을 걸어 총 1000만 달러의 보상을 받게 되었으며, 1997년 5월 16일 빌 클린턴 대통령은 피해자와 그 가족들을 백악관에 초청해 공식 사과하였다.

모자생존촉진연구(PROMIS)
최근에도 임상시험이 여러 가지 윤리적인 문제 등에 직면하고 있다. 예를 들면 모자생존촉진연구(PROMIS)는 미국국립알레르기감염질환연구소가 우간다, 말라위, 탄자니아, 잠비아 등 아프리카 15개 국가에서 수행하고 있는 HIV감염치료법의 모자 수직감염 예방능력을 비교하는 임상시험인데, 일부 의사들과 국경없는의사회 등 비영리단체 일각에서는 윤리적인 이유를 들어 이 임상시험을 중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임상시험을 주도하고 있는 존스홉킨스대학 블룸버그 보건대학원의 메리 글렌 파울러에 의하면 모자생존촉진연구는 임신부를 항역전사바이러스제치료(HAART)를 할 경우 산모나 아기를 불필요한 위험에 노출시킬 것인지를 판단하기 위한 증거확보를 위한 것인데, 특정 치료법이 산모와 아기에게 악영향을 끼치지 않음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며 지속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PROMIS 연구에 참여하고 있는 몇몇 나라는 이미 국가시책으로 세가지 방법 중 가장 강도가 높은 HAART라고 불리는 3가지 약물을 무기한 투여 받도록 했으며, 2013년 세계보건기구도 가능한 한 HIV에 감염되어 있는 임신부들은 3가지 모두를 무기한 사용하는 이 치료를 받으라고 권고한 바 있다. 즉, 임상시험에 참여할 경우 3명 중 한 명만 현재 권고하고 있는 치료를 받게 되고, 다른 경우는 임신 중 한가지 약물만 투여받거나 3가지를 투여받다가 면역세포수가 위험수준으로 떨어지지 않는다면 출산 혹은 수유종료 직후 약물투여를 중단하는 약물치료 강도가 약한 치료법을 선택하게 되기 때문이다.
2012년 NIH는 국가시책으로 3가지 치료약을 무기한 사용하기를 권장하는 나라에서 피험자들에게 구식 치료법을 제공한 것은 윤리에 위배되지 않다고 하면서, 이는 아직 이 치료법이 다른 2가지 방법보다 우월하다는 증거가 없다고 하였다.

무엇이 옳은가
UN 통계자료에 의하면 2009~2012년 국가시책으로 고강도 약물치료정책을 시행했던 말라위와 잠비아에서는 생후 14개월 미만 아이들의 HIV감염률이 절반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이 임상시험은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 만일 중단하지 않는다 해도 임상시험동의서를 제대로 다시 받아야 한다. 비록 이전에 임상시험 시작 당시에 받았다 하더라도 다시 WHO의 권고 사항과 4개국에서의 정부권고사항을 정확히 임상시험대상자에게 알려주고 모든 정보를 충분히 이해하고 판단한 상태에서 사전동의(Informed consent)를 다시 받아야 한다. 그들에게는 그러한 권리가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진행된 데이터를 전면 공개하고 재검토하여 연구지속의 편익을 정확히 따져보아야 한다.
임상연구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도 인격적이고 윤리적으로 존중 받아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