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 636] 온갖 禁忌로 가득했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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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 636] 온갖 禁忌로 가득했던 세상
  • 승인 2014.06.13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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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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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庭要訣」
본문에 앞서 권수에는 ‘家庭要訣 百選’이란 제목이 달려 있고 ‘黑鷄赤龍之月日’이라 적혀 있다. 작성 시기를 육십갑자로 풀어보면 癸酉年丙辰月이 되니 이로 보아 대략 1873년이나 일제강점기인 1933년에 등사된 필사본으로 보인다. 표지는 자주 들여다 본 탓인지 다소 낡아있지만 본문은 비교적 온전한 상태이다.
 ◇「가정요결」
본문 첫 장에는 오행상생, 오행상극, 선천수, 후천수 등과 天干三合法과 地支六沖法 등 여러 가지 기본적인 수리오행의 상호관계를 기재해 놓았다. 納徵定親日에는 혼례 때 준비하는 절차와 택일법이 기재되어 있는데, 지금과는 시대상황이 크게 달랐던 시절의 기준이다. 남녀 사이의 오행으로 궁합을 맞추어보는 婚姻宮合法이 실려 있는데, 본인의 의사보다는 이웃의 중개로 집안 간의 혼인을 치렀던 구시대에 가정생활의 성공확률을 높이고자 보완책으로 고안된 선택 방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어지는 修造門은 집을 새로 짓는다거나 이사, 혹은 墳墓를 만드는 일에 날짜를 정하는 방법이 소개되어 있다. 이른바 生氣福德을 따지는 방법도 들어 있는데, 예전에는 약을 쓰는 것도 生氣日(일명 天喜)이나 天醫日(혹은 天宜라고 부름)을 골라 시작하였다. 천의일 조문 밑에는 ‘求醫治病에 鍼藥皆驗’이라는 주석이 보인다. 민심이 흉흉하고 난리가 잦은 세상을 살아갈 적에는 橫厄을 피하기 위해 갖가지 금기와 주의를 요하는 일이 잇달았던 것이다.

금기에는 瘟㾮殺이란 것도 있다. 온황은 역병을 일컫는 말이지만 모진 질병도 신격화되어 금기일이 배당되었다. 설명에 보면 ‘忌療病竪造修宅移徙’라 했으니 집을 짓거나 개장, 이사뿐 만 아니라 아픈 곳을 치료하는 일도 살이 든 날을 피해 다른 날을 잡아야 했다. 이와 비슷한 것으로 土瘟이 있는데 ‘忌動土, 及破土開金井’이라 하여 토목공사를 벌이거나 굴이나 우물을 파는 일을 삼가라 하였다. 土忌, 土禁 역시 이와 비슷한 금기인데, 이다지도 꺼리는 날이 많아 어찌 일을 했을까 싶다.

하지만 「신찬벽온방」瘟疫所因에 보면 獄溫, 場溫, 墓溫, 廟溫, 社溫 등이 열거되어 있는 것을 보면 대규모 토목일로 인해 식수원이 더렵혀지거나 많은 사람이 함께 일을 벌이면서 식중독과 같은 식원성 질환에 집단 감염될 우려가 있기에 몹시 주의를 기울이고 경각심을 환기하고자 한 것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특별히 분묘의 改葬, 샘을 파거나 우물을 쌓는 일, 변소를 짓는 일 등을 세심하게 지정한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또 하나 비슷한 사유로 소나 말의 코를 뚫는 일은 물론이요, 개나 고양이를 집에 들이는 날, 누에를 치는 날도 가려서 했으며, 나아가 음식을 장만하는 일에 있어서도 造醬日, 造酒吉日, 造麯日로 나누어 반드시 날을 받아서 행하였다. 아마도 어려서 시골에서 자란 많은 분들이 집안의 대소사에 이와 같이 日辰을 가려 일하고 계획을 세우던 예전 풍습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의약과 관련해서는 求醫療病日, 合藥吉日, 服藥吉日, 却病諸方文, 病人生死預判法, 四時得病日 등이 있다. 또한 埋胎法이 기재되어 있는데, 이는 출산 후 빠져나온 태반을 거두어 간수했다가 길한 방위와 길일을 선택해 땅에 묻는 것을 말한다. 「동의보감」‘安産藏胎衣吉方’과「언해태산집요」‘安産藏衣十三神吉凶方位’에서는 아예 월별로 도표화되어 있다. 대개 이러한 금기법은 조선 초기「撮要新書」에서 집중적으로 다뤄진 이후 의약에선 점차 소멸되었지만 조선시대 기층민 사이에선 이렇게 변형된 습속으로 이어져 온 것이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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