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분쟁 10주년 기념 기고 - 서광진(서울 광장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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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약분쟁 10주년 기념 기고 - 서광진(서울 광장한의원)
  • 승인 2003.08.16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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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한 책임감과 사회적 기여도 높여야
한의학 정체성 끊임없는 고민 필요


다음 글은 한약분쟁 당시 한의협 전산이사를 맡았던 서광진 원장(서울 광장한의원)이 한약분쟁 10년을 맞아 그 소회를 보내온 것이다. <편집자 주>


며칠 전 10년 동안 쌓아두었던 상당히 많은 분량의 한약분쟁관련 자료를 폐기하면서, 진정 한약분쟁이 종료된 것일까 하고 반문해보았다. 한의학은 어떤 길을 가게 될 것인가 하는 것과 같은 화두로 여겨지는 그 의문에는 항시 어깨가 무겁게 눌리는 현실감이 답을 대신하게 된다. 그 무거운 현실 속으로 다시 뛰어들 엄두가 나질 않아 머뭇거렸지만 당시의 회고를 올해에만 벌써 여러 차례 되풀이하곤 한다.

한약분쟁은 동서양의 문화가 한반도에서 만나면서 필연적으로 부딪히는 문화적인 충돌이라고 생각한다. 수 천년간 한민족의 의학으로 당당한 자리를 차지했던 한의학은 민족문화의 자존이라고 여겨도 무방할 것이다. 우리의 언어 속에 있는 한의학의 표현들, 우리 민족의 사고 속에 있는 한의학적 마인드, 우리 문화 속에 스며있는 한의학의 모습들이 그 증거이다. 이러한 자존심이 조금씩 홀대를 받아왔지만. 수 십 년 동안 쌓인 것이 터져 나온 것이 십 년 전 그 분쟁일 것이다.

십 년이 지난 지금, 그 당시의 모습이 여과될 것은 여과되고 잊혀질 것은 잊혀졌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뚜렷하게 남아 있을 기억은 당시의 울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학부시절부터 모호한 냉대에 많은 좌절을 겪었던 한의사들은 시행규칙이 삭제되던 그 해 봄에 억울함과 좌절, 동시에 분노를 느꼈을 것이다. 이어진 여름의 탈진, 단결, 희망을 넘어서 가을의 반전과 겨울의 마무리라는 순서로 한 해를 마감한 것으로 기억된다.

그 해 이후 행정적으로 한방정책관실 설치, 법적으로 한약사제도 법제화, 학술적으로 한의학연구원 개소 등등 그동안 한의계의 숙원사업들이 상당부분 이루어지고 있다. 금번 한의약육성법까지도 그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회원 숫자가 대폭 증가하면서 회세 역시 많이 커지고 있다.

당시 앞장섰던 많은 한의사들의 이름도, 얼굴도 당연히 많이 잊혀지겠으나, 그들이 본업을 뒷전으로 하고 한의계의 앞에 서서 겪어야만 했던 세속적이지만 현실적인 고뇌가 잊혀지는 것은 또 다시 당시의 아픈 과정을 거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하게 된다.

우리는 지금, 그 해에는 전혀 없었던 여러 가지 행정적, 법적 등등 많은 성과들이 우리 한의계의 보다 성숙한 책임감을 요구한다는 것은 간과하고 있지는 않을까 생각해본다. 과거에 대한 성찰이 미래의 설계를 위한 것이라면, 한약분쟁 10주년을 통해 우리가 준비하고 항시 품고 있어야 할 그 무엇을 정의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우리 한의계가 변한 만큼 세상도 많이 달라졌다. 그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만 할 것이다. 그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적 기여도를 높이는 일이다. 각 개인의 의료기술 수준을 높이고, 진료에 성실해야 할 것은 물론이고 각종 봉사활동도 전개하여 한의학 이용인구의 저변을 확대해야 할 것이다. 10년 전 한의사의 손을 들어준 대다수 국민의 마음을 헤아려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한의학의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한의학에 대한 사랑을 서로 발표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지면서 실질적인 치료효과 제고의 기회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한의 진료의 특화나 상업화는 모두 필요한 사안이다. 하지만 한의학이란 것을 토대로 이루어져야만 한다. 우리의 정체성이 담보되지 않는 변신은 참혹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사회 활동에도 적극 참여해야 할 것이다. 93년 청년한의사회의 활약을 기억해보자. 물론 당시보다는 한의계의 사정이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 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 자신이 속한 지역에서부터 솔선해야 한다.

전문의를 둘러싼 최근 한의계의 분열이 마음에 걸리지만 열린 마음으로 서로를 이해하고자 노력한다면 그 잡음을 최소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끝으로 당시 한약분쟁을 앞장서면서 많은 개인적인 희생을 하셨지만 그 희생을 마다하시고 계속적으로 한의계를 위해 봉사해주시는 많은 분들에게 이 지면을 통해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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