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명의의안 213] 黑疸案-이영석(李泳錫)의 醫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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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명의의안 213] 黑疸案-이영석(李泳錫)의 醫案(1)
  • 승인 2014.04.18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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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일

김남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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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20여년 전 일인데, 금호동에 사는 모 회사 최 사장에게 그의 친지 박 사장의 아들이 아버지가 다 돌아가시게 되었다고 하기에 최 사장 말이 죽기는 왜 죽느냐고 한즉 큰 양방병원에서도 못 고친다고 하니 어떻게 하느냐고 하며 급기야 청파동에 있는 나의 한의원으로 가보라고 지시하더라고 왕진을 청하였다. 가서 본 즉 이삼일 내로 죽겠다고 하는데 나도 고칠 자신이 없었다. 病인즉 黑疸로서 온몸이 새까맣고 배가 광장히 부어 있으며 小大便이 不通하고 起居조차 不能이라 어떻게 처방을 내야 할지 망설이다가 궁리 끝에 腎臟과 肝臟 관계라 단정하고 鍼을 補瀉法으로 시술하고 五苓散 2첩을 지어 주어 복용케 한 후 지내보시다가 내일 연락하라고 하였던 바 연락이 없으므로 죽었다고 생각되어 전화를 건 즉 박 사장 아버지가 전화를 받는데, “다 나았는데요” 하는 것이다. 나는 다 나았단 말이 다 되었다는 것으로 알고 필경 죽은 것이라 여겨져서 “그거 안 되었군요” 하고, 재차 “어떤 상태였느냐”고 물은 즉 “모시러 갈까요? 빨리 오시오” 하는 것이다. 차를 잡아타고 가서 본 즉 놀라운 일이다. 환자 본인이 일어나서 일을 하다가 “살려주셔서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를 하는 것이다. 나도 도무지 영문을 모를 만큼 희한한 일이었다. 그 후 약 한재를 더 먹고 완쾌하였고 라디오 한 대를 선물로 받기까지 했다. 一鍼二藥이라고 하지만 이것은 藥보다 鍼에서 효과를 본 것이라 생각한다. (1974년 「醫林」제106호)

按語: 李泳錫 선생은 평안남도 순천출신의 한의사이다. 한국전쟁으로 1‧4후퇴 때 월남하여 갈월동에 성제국한의원을 개원하였다. 그는 “환자를 다루는데 돈의 욕심이 앞서서는 안 된다. 고치지 못할지언정 병을 더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 못 고치는 병이면 못 고친다고 잘라 말해서 거절하는 것이 醫者의 良識이다”라고 「醫林」제106호와 인터뷰에서 말하기도 하였다. 黑疸에 대해서 「東醫寶鑑」의 ‘黑疸難治’에서 “脾와 腎이 모두 病들면 黑疸, 色疸이 되는데, 女勞疸이라고도 하니, 몸이 노래지고 이마가 검어진다.<直指> ▲황달이 걸린 사람이 저녁 무렵에 마땅이 發熱이 나야하는데, 도리어 惡寒이 나타난다면 이것은 女勞가 된 것이니, 膀胱急, 小腹滿, 一身盡黃, 額上黑, 足下熱의 증상이 생겨 인하여 黑疸이 된 것이니, 腹脹하여 마치 水가 있는 모양이고 大便은 黑하고 때때로 溏泄하는 것은 女勞의 病이지 水病이 아니다. 腹滿하면 難治이다. <仲景> ▲酒疸을 下之시켜 오래되면 黑疸로 변하여 目靑, 面黑, 心中이 마치 마늘 무침을 먹은 것 같은 모양이 나타나고, 大便은 正黑色을 띠고 小便도 혹 黑해지면 難治이다. <仲景>”라고 설명하고 있다. 李泳錫 선생은 침구학을 잘 구사하는 인물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가 “腎臟과 肝臟 관계라 단정하고 鍼을 補瀉法으로 시술”했다고 한 것은 두 장부의 관련성을 고려한 鍼灸補瀉法이었을 것이다. 五苓散을 사용했다고 써 있지만 실제로는 아마도 그가 사용한 것은 茵蔯五苓散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그가 黃疸의 치료약으로서 五苓散을 사용했다고 하기 때문이다.
김남일/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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