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을 규정하는 자는 누구인가
상태바
한의학을 규정하는 자는 누구인가
  • 승인 2014.03.27 09: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창운

정창운

mjmedi@http://


한의학 위키칼럼 & 메타블로그
정 창 운
근거중심의
한방진료확립에
관심이 많은
초보 한의사
“비정상을 규정함으로써 정상을 규정한다.”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가 그의 주저 중의 하나인 「광기의 역사」에서 면밀히 다룬 주제이다. 한때 언제나 우리 주변을 떠돌던 비정상인들과 정상인 간의 구별이 뚜렷하지 않던 시기가 있었다. 오히려 그들은 신성한 존재로까지 받아들여진 적도 있었다.

그러나 계몽주의와 이성의 시대가 닥치면서, 이성의 잣대에 맞지 않는 이 비정상인들은 미치광이가 되어 수용소에 감금되는 신세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이 감금된 ‘비정상인’들은 이제 사회의 시선을 벗어나 보이지 않는, 비가시적인 존재가 되어버리고, 우리는 이제 비이성을 잊어버리는 존재가 되어왔다는 것이 푸코의 주장이다. 이 푸코의 대감금 가설에 대해서 정신과 의사들은 잘못된 주장이라고 반론을 펼치기도 하지만, ‘우리’가 아닌 ‘그들’을 격리함으로써 우리가 누구인지 정의하는 장면은 비단 광인의 사례 뿐만이 아니라 역사 어디에서나 흔히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을 보면, 푸코의 이론은 충분히 그러한 반론을 무시하게끔 만드는 설득력이 있다.

불과 100년 전만 하더라도 ‘의학’ 이었던 한의학은 일본 제국주의의 간섭으로 인하여 그 수천년 간의 학문적 권좌에서 내려와야 했으며, 그러한 학문적 바탕으로 의술을 실천하던 의사들은 ‘의생’이라는 지위로 격하되었으며, 광복 이후에도 본연의 ‘의사’로 회복된 것이 아니라 ‘한의사’라는 지위로 고착되어버린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의사’라는 명칭 자체가 지금의 한의사를 의미했다는 것, 나아가 한의사는 본래 동서양 의학을 막론하고 최선의 치료를 선택할 수 있었던 온전한 직업이었다는 것을 지금 기억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이는 한의사가 물러난 후 의학적 담론의 진공 상태를 양의사라는 사람들이 대체하였고 그들에 의해 ‘새롭게’ 의학이 출발하였다는, 그들에 의해 만들어진 역사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치료 수단이 없던 양의사들이 한약을 처방하고, 연구하였다거나, 양의사의 탄생 이전에도 꾸준히 한의사들이 양약을 처방하여 치료하였다거나 하는 모습은 잊혀지게 되었다.

다행히 근래에 와서 여러 한의계의 노력을 통해서 한의학과 한의사의 입지를 새롭게 다지게 되었지만, 식민지 시대부터 인간에 대한 ‘권력’을 등에 업은 양의사들은 이러한 한의학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경우에는 그들이 지배하는 담론의 힘을 이용하여 다시 보이지 않는 것으로 만들어 온 것이 지금까지의 한의학을 둘러싼 논쟁들이었다. 한의학이란 ‘양의학이 아닌 것, 양의학으로 규정할 수 없는 것’ 이것이 아니었을까. 광기의 사례와는 달리 ‘우리’를 규정함으로써 ‘그들’을 모두 구석으로 밀어넣은 것은 미국 의사(Medical Doctor)들의 다른 의사들을 통합하거나 혹은 배척한 의학사에서도 읽을 수 있는 장면들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상황은 많이 바뀌었다. 더 이상 우리와 그들 간의 전선이 명확치 않게 된 것이다. 긴 전선을 사이에 두고 지리한 영역분쟁을 해오는 동안, 정작 전선과는 한참 먼 곳에서 게릴라전이 벌어지게 되었고 그들이 점령한 지역은 점차 넓어지게 되었다. 한의사들이 해오던 의료행위들이 정작 수만리 해외에서 ‘아직은’ 기전은 모르나, 의학적으로 확실한 효과가 있다는 보고들이 의학적 담론질서 하에서 인정이 되고 있다. 불과 십년 전만 하더라도 ‘한방치료는 전혀 효과가 없거나 해로울 것이다’ ‘이론체계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등으로 한의학을 비가시화 하려던 것이 양의사들의 모습이었지만, 과학적 방법론 하에서의 효과 입증이라는 등 뒤의 비수가 그들의 뿌리 깊은 주장을 뒤흔들게 됐다.

하지만, 그들의 후안무치함은 어디로 가지 않았다. 새로운 의학에 대한 인정을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효과 있으면 의학이다’라는 새로운 캐치프레이즈로 그들의 오만함과 탐욕을 정당화하게 됐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그것은 효과가 없다. 해롭다. 알 수 없다’ 등으로 한의학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부인하던 이들이 ‘이것은 IMS이므로 한의학이 아니다. 이것은 천연물신약이므로 한의학이 아니다’라는 자기 최면을 걸기 시작한 것을 곳곳에서 목도할 수 있다. 한의학의 자리에서 한의사를 밀어내고, 양의사들에게 모든 권리를 주는 작업이 너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을 보면, 오히려 한의사가 지금까지 잘못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착각마저 들게 만든다. 차라리 과거의 양의학은 자신과 남을 구별함으로써 순결을 지키려는 면모라도 보여주었는지 모르나, 지금의 양의학은 게걸스럽게 모든 것을 자기화하려는 자본주의적 팽창의 추악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의학은 침탈당하고 흡수당하며 그 존재를 점점 잃어가고 있다. 이제 그것은 양의학이므로, 한의학의 영역이 아니라는 강제 점령의 선언들이 곳곳에서 울려퍼지고 있다. 논리와 이성은 온데간데 없고 오로지 자본과 힘의 논리에 의해서 이뤄지는 과정들이어서 더욱 항변할 길이 마땅치가 않다. 먼 곳에서의 전황은 대단히 아군에게 유리하지만 본진은 극심한 위기를 겪고 있는 현실.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까. 그래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생각해본다. 대체 한의학이란 무엇인가? 여기에 대한 뚜렷한 규정이 바로 반격의 실마리가 될 것 같다.

한의학이란 무엇인가, 이에 명확한 권위를 가지고 답할 사람은 오직 한의사일 수밖에 없다. 아니, 한의사가 되어야만 한다. 양의사에 의해 점령된 의학을 脫영토화하고,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질서를 부여할 수밖에 없기에) 그 자리를 한의학적 관점을 통합한 새로운 과학을 창조함으로 의학을 한의사의 참여 하에 再영토화 하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일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그들의 으름장과 협박에 원한을 가지는 ‘인간’이 되기보다는, 넓은 지평에서 의학의 모든 것을 긍정하고 받아들이는 새로운 창조자가 되는 것, ‘의학’에 있어서의 가치를 뒤집는 것, 이것이 지금시대를 살아가는 한의사 앞에 남겨진 숙제일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