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만나는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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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만나는 행복
  • 승인 2014.03.06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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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김영호

mjmedi@http://


김 영 호
부산시 한의사회
정책기획·홍보이사
공감한의원 원장
세계적 교육 심리학자 하워드 가드너 하버드대 교육대학원 교수는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앱(App)을 이용하는 젊은 세대들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나타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현재 미국의 젊은 세대들은 극도로 ‘안정지향주의’를 보이며 실패를 두려워하므로 이 성향이 미래에는 크게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그가 우려하는 ‘길을 잃어본 적이 없는 세대’는 90년대 후반에 태어나 현재 10대 후반에서 20대에 해당한다. 이 인터뷰를 보고 우리나라의 상황을 생각해보니 다양한 분야에서 이미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흐름의 몇 가지 사례를 정리해보자.
첫째, 우리는 어느새 길을 잃지 않게 되었다. 여러 내비게이션과 앱이 최적화된 길을 찾아주므로 낯선 곳에 가서 길을 묻거나 길을 잃음으로써 만나게 되는 새로운 경험을 거의 하지 않게 된다. 해외에 여행을 가서도 낯선 곳에 대한 경험을 하기보다 스케줄을 분 단위로 쪼개고, 맛집이라고 알려진 곳들과 많은 사람들이 찾는 상점만 간다. 쉬고 있다는 느낌보다 게임에서 미션 클리어(Mission Clear) 하듯이 의무를 하나씩 해결하는 여행에 익숙해져 간다. 2000년에 유럽 배낭여행을 통해 수많은 사고와 길을 잃음을 통해 만난 사람과 장면들이 정해진 루트보다 오히려 더 큰 추억으로 남는 것을 보면 여행지에서 길을 잃지 않는 여행은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을 차단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둘째, 소비경향이 단순화되고 패턴화되어 간다.
아기 엄마들이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같은 브랜드의 유모차, 기저귀, 기타 아기 용품들을 보면서 서로 웃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렇게 된 이유가 일부 대형 육아카페를 통해 천편일률적인 정보를 접하다 보니 다양한 제품을 경험해보지 못하고 남들이 좋다고 하는 한두 개의 브랜드만 사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소비 방식은 일부 회사의 독점을 유발할 수 있고 더 좋은 제품을 만들지만 유통 경로를 찾지 못하는 신생 업체의 발전을 원천 봉쇄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소비자가 피해를 볼 수 있는 패턴이다. 점점 품질보다 입소문을 조작하고 과장된 광고와 경험담만이 확산될 수 있다. 이런 모습들도 실패하기 싫어하는 최근의 흐름이 만들어낸 모습이다.

셋째, 화려한 SNS와 달리 오프라인은 어둡다.
실패를 드러내려 하지 않고 좋은 것만 드러내는 SNS의 모습들은 ‘나만 낙오자인가’라는 고립감과 외로움을 줄 수 있다. 만나서 얘기하고 서로의 고민도 털어놓는 대신 온라인 상으로 좋은 모습만을 공유하다 보니 사람들은 점점 고립되어 가고 학생들은 나쁜 댓글 하나만으로도 자신의 존재 가치 자체가 흔들리는 경우까지 생기게 된다. 학창 시절에 아무리 힘든 시험이 있더라도 친구가 같이 힘들어하고 있으면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라는 위안이 되는데 최근에는 ‘나만 힘들다’라는 고립감과 열등감이 사회 전체로 퍼지고 있다.

넷째, 안정지향주의는 도전을 잡아먹는다.
‘슈퍼스타K’가 ‘K-POP스타’에게 오디션 프로그램의 1등자리를 내어준 것은 오디션 1등을 통해서 새로운 도전을 하기보다 바로 기획사에 소속될 수 있어 취업이 보장되는 ‘K-POP스타’가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 더더욱 심해지는 대학생들의 공기업, 공무원 선호 역시 실패를 경험하고 그것이 다시 자산이 되는 사회적 풍조가 아니라 결과와 안정만을 중시하는 현재 모습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실리콘 밸리에서는 실패를 하더라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 갖추어져있기 때문에 새로운 도전을 계속 한다는 기사는 미국의 저력을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다.

다섯째, 프랜차이즈만 선호하게 된다.
다양한 맛을 경험할 수 있는 ‘위험성’을 배제하고 어디에 가나 평균적인 맛을 제공하는 프랜차이즈 음식점과 커피숍이 우리나라 전체를 휩쓰는 것 역시 “실패하면 안돼”라는 흐름이 반영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추억이 깃든 동네 빵집과 식당을 찾아볼 수 없게 되고 원가를 절감하고 단편적인 맛만 보여주는 프랜차이즈 음식들에 길들여져 갔다.

김연아 선수의 은메달에 대해 우리나라 국민들은 분함을 감출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김연아 선수 본인은 그 과정으로써 충분히 만족한다고 인터뷰를 했다. 어느 것이 맞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동메달을 따고 무척 즐거워하는 네덜란드 스케이트 선수들과 은메달을 따고도 고개 숙이는 우리나라 선수가 비교되는 것은 조금 씁쓸하다. 가드너 교수의 우려처럼 실패를 성공의 주춧돌로 삼지 못하고 오로지 성공과 결과만이 중심이 되는 사회는 한의학적으로도 건강하지 못함은 분명하다. 우리 몸과 건강은 수많은 실패(가벼운 질병)들이 누적되어 건강해지듯이 앞으로 우리는 낯선 곳을 즐겨 찾고 실패를 기꺼이 받아들여 우연히 만나는 행복을 많이 느끼는 시대에서 살아갔으면 한다. 실패는 성공을 단단하게 떠받치는 주춧돌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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