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 622 - 「古今實驗方」
상태바
고의서산책/ 622 - 「古今實驗方」
  • 승인 2014.03.02 09: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상우

안상우

mjmedi@http://


회복(回復)하지 못한 일제치하 한방의료

근세 의학서 1종을 소개하기로 하자. 서명은 「古今實驗方」으로 저자는 분명하게 밝혀져 있지 않은 채 ‘丁丑年秋七月旣望’이라고 작성시점을 밝힌 서문에는 ‘輯者識’라고만 표기되어 있다. 책은 철필로 원지를 긁어 자형을 만든 다음 인쇄잉크를 묻힌 롤러로 밀어 인쇄하던 이른바 謄寫版이라고 알려진 판종이다. 1950∼70년대에 널리 사용되었으나 이제는 보기 어려운 방식이다. 정방형으로 모가 반듯하게 써내려간 필치에서 공력을 들여 써내려갔을 筆耕士의 모습이 그려진다.

◇「고금실험방」


소개판본은 杏林書院에서 1958년에 펴낸 것으로, 저작 겸 발행자로 이 출판사의 사주인 李泰浩의 이름이 등재되어 있다. 동일한 서명으로 安昶中이 펴낸 「고금실험방」과는 내용이 서로 다르다. 발행시점에서 가장 가까운 정축년은 1937년으로 일제강점기에 해당한다. 출판을 위하여 마련했던 원고를 미처 펴내지 못한 채 지내다가 20여년이 지난 후에야 발행했던 것일까? 속은 모조지에 양면을 인쇄하였지만 겉은 옛 책을 본떠 線裝本으로 묶은 과도기 형태를 띠고 있다.

서문에서 밝힌 바를 새겨보면 “神農 이후로 稽古至今까지 醫學評論 및 著輯諸書가 가히 千百家語요 五車書冊이라 이를 수 있다. … 그 가운데 혹은 들어맞고 혹은 맞지 않는 것이 10 가운데 8∼9이므로 醫學界에서 매양 실지로 徵驗할 수 있는 良方을 만나지 못하는 것을 한탄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책을 펴내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편집자는 우연히 道家秘傳을 발견하여 여러 차례 시험해 본 결과 진정한 良方임을 깨달아 모자란 부분을 보충하고 여러 선현들의 경험방을 보태어 이 책을 꾸미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아울러 輯者라고 본인을 지칭한 저자도 역시 집안에서 내려온 가전문견방[傳家見聞]이 조금 있어 고루함을 망각하고 감히 여러 논설을 모아 책을 발행하게 되었다고 겸손하게 발행소감을 밝히고 있다.

목차를 일견해 보면, 중풍, 類中風, 豫防中風, 傷寒, 感冒, 中寒, 中暑로부터 발열, 내상, 음식상 등 주로 외감병과 외형, 잡병편의 갖가지 질환증상을 중심으로 내용을 구성하고 있다. 痿躄, 消渴, 痙病에까지 100여종에 가까운 갖가지 질병들은 상세분류가 이루어져 있지 않으나 아마도 大方科 즉 성인의 상습질환을 한데모아 놓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후반부에는 女科를 따로 두어 調經, 經閉, 崩漏로부터 임신, 小産, 産育, 産後 나아가 乳病, 乳癰, 부인제병에 이르기까지 월경과 임신, 출산에 해당하는 각종 산부인과 질환이 나열되어 있다.

또 啞科라 표기한 부류는 小兒科 질환을 지칭한 것으로 급경풍, 만경, 疳疾, 癖疾로부터 소아초생잡병, 두창, 女人出痘(附懷孕出痘), 마진에 이르기까지 전통적인 유소아 질환을 망라해 놓고 있다. 그 다음으로 또 한 가지 특징적인 것은 ‘瘍科’를 둔 점이다. 옹저, 나력, 附骨疽로부터 金瘡, 破傷風, 湯火, 中毒, 諸瘡까지 18조의 병증항목을 두어 외과 영역에 큰 비중을 두어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특히 결핵이라든가, 楊梅瘡, 疥癬, 折傷 등 일제강점기 말기에 난치질환으로 흔히 마주했을 질병들이 채록되어 있어 이 책이 다분히 시대적 한계상황과 당시의 열악했던 의료 여건을 여실하게 반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본문에 앞서 4言으로 이루어진 診脈要訣이 붙어 있다. 또「萬病回春」과 「壽世保元」을 절충하여 만든 약성가 237종이 수재되어 있는데, 안타깝게도 띄어쓰기가 되어 있지 않고 표점조차 붙이지 않은 채 줄글로 이어져 있어 약명을 찾아보기도 힘들 정도이다. 아마도 이 정도 약성가는 이미 숙지했으리라 여기고 참고용으로만 제시한다는 의미인 것 같다. 이어 諸病主藥이 나오는데 8자로 짝을 맞추고 1칸씩 띄어 썼기 때문에 비교적 가독성이 좋은 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