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 등의 판결과 짜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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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등의 판결과 짜장면
  • 승인 2014.02.06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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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안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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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의 일침(一針)
안 종 주
전 ‘한겨레신문’
보건복지전문기자
보건학 박사
서울행정법원이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천연물 신약 고시’에 대해 위법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은 ‘의사와 한의사의 면허 범위 구분’, ‘한의사의 면허 범위 제한 여부’, ‘생약제제 개념의 정당 여부’, ‘천연물신약 인정의 세계적 추세 주장’, ‘한의사의 배타적 사용-처방권 범위’ 등 다양한 논쟁과 주장 등에 대해 견해를 밝히고 있다. 위법 판결이라고는 하나 그 내용을 보면 일방적으로 한의계가 환호를 지를 일도 아니다. 비록 최종심은 아니지만 한방의료계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과 양방의료계와의 싸움에서 필요한 전략을 한의계 종사자들은 판결에서 읽어내는 지혜를 터득해야 한다.

이에 앞서 지난해 12월 26일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이 합헌이라는 취지의 결정을 내렸다. 이 판결은 한의계가 환영할만한 성격임은 분명하지만 한의사가 모든 의료진단기기를 사용해도 좋다는 것은 아니고 이번에 문제가 된 안압측정기, 자동안굴절검사기 등 몇몇 안과진단기기 등에 대한 인정이었다. 따라서 앞으로 현대의료진단기기 사용을 둘러싼 양의계와의 싸움은 첩첩산중이랄 수 있다. 이 판결에서도 헌재가 밝힌 판결 이유를 꼼꼼히 살피고 헤아려야 한의계의 미래가 있다.

짧은 칼럼에서 이 두 판결의 의미를 자세하게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한의계가 깊이 성찰해야 할 부분을 살펴보자. 먼저 생약제제 판결에서는 “한방의학과 서양의학 상호간에 관심이 높아지고 그에 따른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으며, 한의학이 과학화·체계화되어 양방과 한방의 통합 및 보완치료에 대한 필요성이 커지는 현재의 추세를 고려하여 보면, 이처럼 기원생약에 대하여 규격을 달리하여 새로운 의약품을 제조하는 방법이 한방원리에 고유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또 헌재의 의료기기 사용 판결에서도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의료기기의 성능이 대폭 향상되어 보건위생상 위해의 우려 없이 진단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자격이 있는 의료인인 한의사에게 그 사용권한을 부여해야 한다”며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데 무게를 두었다.

이 두 판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의료법 등 현행법에 명확한 내용을 규정하지 않은 경우에는 국민의 건강 보호와 건강 증진을 가장 중요시한다는 점이다. 또 한의사나 의사가 진단기기에 대해 얼마나 잘 사용할 수 있는가와 이와 관련한 교육과정이 있는지, 기기 사용으로 인해 국민의 건강에 위해가 생기는지 따위를 따진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각종 진단기기와 약제의 개발은 날이 갈수록 급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다. 누가 이들을 개발하면서 양의계 또는 한의계만 사용하라고 하지도 않는다. 물론 그럴 수도 없는 일이다. 의사가 개발했기 때문에 한의사가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 역도 마찬가지다. 과학자가 개발한 의료기기는 한의사는 절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면 그것도 우스운 이야기다. 한의사가 개발한 양약을 의사가 처방해서는 안 되는 걸까? 의사가 개발한 한약을 한의사가 처방해서는 안 되는 걸까?

이번 판결은 한의계에게 해묵은 과제를 빨리 풀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방을 과학화하고 현대화하라는 것이다. 한의계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과거의 ‘허준’(옛날의 한의학을 지칭)에 머물지 말고 첨단한의학, 과학한의학을 연구하고 실천하는데 온힘을 쏟아야 한다.

이번 판결을 보면서 짜장면 생각이 났다. 짜장면은 원래 자장면이었다. 하지만 어느 때부턴가 짜장면이 자장면 동네에 들어와 살았다. 그리고 긴 세월 동안 동거했다. 마침내 짜장면은 우리말, 즉 한글 맞춤법에서도 자장면과 같은 표준어의 지위를 누리게 됐다. 공식 우리말이 된 것이다. 말(語)도 말(馬)과 같은 생명의 성격을 띠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즐겨 쓰면 곧 주인이 되는 것이다. 의료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한의계가 과학의 영역에 더 깊숙이 발을 디딜수록, 한의학의 과학화에 박차를 가할수록 짜장면처럼 될 수 있다. 자장면만 파는 양의사의 나라 대한민국에서 짜장면 간판을 내걸고 대박을 터트릴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자장면이냐, 짜장면이냐’보다는 어느 집 음식이 더 맛있고 몸에 좋은가를 따질 뿐이다. ‘자장면집’과 ‘짜장면집’이 상호(商號)를 놓고 싸움을 벌인다면 재판관은 주민들이 인정하는 음식점 주인의 손을 들어주는 법이다.

<필자 약력>
서울신문 과학/의학전문기자, 한겨레신문 사회부장, 보건복지전문기자, 국민건강보험공단 상임이사, 현 한국사회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저서로는 「에이즈 엑스화일」 「한국 의사들이 사는 법」 「인간복제 그 빛과 그림자」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증폭사회」 등이 있다. 현재 ‘내일신문’과 ‘프레시안’ 등에서 고정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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