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인철 교수의 유럽방문기(上) - 독일의료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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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인철 교수의 유럽방문기(上) - 독일의료봉사
  • 승인 2003.08.08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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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들, 한방치료에 신기한 듯 넋 잃어
프랑크푸르트 등지서 6년째 진료


손인철(원광대 한의대 교수)


유럽지역의 한의학이 꾸준히 발전하고 있지만 미주지역에 비해 구체적인 발전양상을 접하기가 쉽지 않다. 마침 원광대 한의대 경혈학교실의 손인철 교수가 지난 7월 2일부터 12일까지 독일에서 의료봉사와 프랑스 한의대에서 특강을 마치고 귀국했다. 본지는 손 교수가 현지에서 활동한 사실과 독일과 프랑스의 한의학 상황을 2회에 걸쳐 게재한다. <편집자 주>


독일 지역에 한방의료 봉사를 시작한 지 이번까지 6회째, 처음에는 프랑크푸르트에서 교민들을 중심으로 했었는데 호응이 좋아 그 후에도 이어졌었고 근래에는 남부독일의 레겐스부르크에 가서 5년간 연이어 현지인을 중심으로 진료를 해오고 있다.

처음 프랑크푸르트에서 한방의료 봉사를 요청받았을 때는 준비는 하면서도 ‘과연 의료의 선진국이라 하는 유럽지역, 그중에서도 독일에 가서 우리가 진료를 하기 위해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인가’를 내심 염려했었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보다 더 아는 것도 한의학이고, 그들이 우리보다 부족한 바도 한의학이니 현지에 가서 의료봉사를 할 때는 가장 한의학적인 방법으로 해보자고 하며 시작했었는데 기대 이상으로 호응이 좋았다.

독일에서의 한의학이란 주로 침구학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실제로 독일에서는 의사들이 임상에서 침을 많이 사용하고 침 시술료가 정부의 의료보험에서 별도로 지급되기도 한다. 아는 바로는 독일에서의 침 시술 자격은 크게 3가지 계층에서 시술 가능하다. 의사는 침을 시술할 수가 있다.

또 하일프락티커 곧 자연요법사는 정부의 자격시험으로 면허가 인정되는데 이들은 진료실을 개원하여 자연요법과 침을 시술하게 되고 침 시술시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는다. 그리고 정식면허는 없어도 간호사들이 침을 따로 공부하여 의사의 지도 하에 침을 놓는 침구기사형태의 제도가 있다.

독일에 사는 한국의 간호사들 중 일부는 하일프락티커의 자격을 얻어 한의원을 개원한 사람도 있고, 침구에 관심을 가진 다른 일부의 간호사들은 중국 등지에서 침을 공부하여 병원급에서 의사의 지도 하에 침구기사 식으로 근무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3년여 전에 한국의 한의학에 관심을 갖고 있는 대학병원 산하의 병원에 근무하는 독일의사와 병원 경영진들이 필자에게 한국의 한의사를 초빙하여 한국에서 진료하는 방식으로 자기 병원에서 진료해줄 것을 협조 요청한 일이 있었다.

당시 필자가 현지에 가서 원칙적인 논의를 마치고 의사 파견 문제를 놓고 상호간에 준비해오다가 독일 현지에서의 의사 진료권이 인정되질 않아서 추진을 잠정적으로 중지한 바 있다. 그 전후의 인연으로 지금도 독일에 가서 진료를 하면 의사들이 환자를 보내기도 하는 등 진료에 필요한 제반 상황에 대해 적극적으로 협조해주는 편이다.

이번 독일의료봉사에서는 프랑스의 대학 특강도 있고 해서 원광대한의대 본과 4학년 서상록 군을 대동하였다. 독일에 도착한 다음날 프랑크푸르트의 원불교교당에서 진료하였다. 거의 매년 해 왔던 진료인지라 연락을 정식으로 하지 않았는데도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현지 교민과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종일 진료를 했었다.

진료실로 쓰는 교당은 마치 축제같은 분위기로 종일 사람들이 북적댔다. 점심식사는 아는 사람들끼리 서로 반찬을 한 가지씩 가지고 와서 교당 마당인 야외에서 서로 담소하며 먹었는데 마치 소풍 나온 기분이었다.

진료를 마치고 밤시간에 독일 기차 이체를 타고 바이에른주의 레겐스부르크로 향했다. 독일에서 처음 타보는 기차여행이었는데 주위정경이 산뜻해서인지 3시간여를 달리는데도 지루함을 느끼지 않았다.

레겐스부르크에는 독일인으로 원불교에 출가하여 수학을 마치고 교역자고시를 치르고 발령받아 교화활동을 하고 있는 독일인 원법우 교무가 있다. 역까지 마중 나온 현지 교무와 일행의 환영을 받으며 교당인 숙소로 향했다.

그 시간이 밤 9시 30분경. 해가 늦게 지는 이 지역은 한국의 석양같이 그 시간까지도 훤하다. 11시 경에 어두워지고 새벽 3시에 밝아지는 이 지역을 보면 그 옛날 왕과 귀족의 지배를 받던 하층 계급의 노동자들이 허구한 날 그 힘든 노동에 얼마나 힘들었을 것인가를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그러고 보면 하루 노동시간을 8시간으로 규정한 것은 이런 지역에 꼭 필요한 사항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레겐스부르크에서의 진료는 다음날 아침 8시부터 시작되었다. 독일인의 약속시간은 정확하다고 하지 않은가.

진료시간을 미리 예약한 환자들이 시간이 되니 하나 둘씩 오기 시작했다. 아침 8시부터 시작한 진료는 10분에서 15분 간격으로 예약되어 찾아오는 독일인 환자를 대상으로 진료를 했다. 침과 부항 뜸을 위주로 하되 수기요법을 적절히 활용하여 진료를 하고 약은 준비해간 한약 엑스제와 소화제를 주로 활용하며 구급약으로 우황청심환, 보약제로는 경옥고와 연령고본단을 준비하여 적절히 활용하였다.

치료효과는 대체로 빠르게 나타났다. 오래된 병도 침 한 두번에 호전되어 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이를 보고 독일인들은 ‘신기하다’고 놀란다. 그러나 나는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인체를 전체로 보는 한의학적인 방법으로 치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30대 후반의 여인인데, 知行 또는 Iginacio엄마로 더 우리에게 익숙한 독일인 여자환자가 있었다. 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임파선이 붓고 백혈구가 증가하여 현대의학에서는 치료가 어렵다고 하는 환자였다. 환자의 병력을 다 들은 후 진맥을 하니 화기가 역상되어 있어서 자침을 하고 가벼운 약을 투약하길 2회, 다음 날 아침 일찍 “침을 맞은 후 기분이 아주 상쾌하고 부어 있던 목의 임파선이 없어졌다”며 감사의 전화가 원법우 교무에게 왔었다고 기뻐했다. 10살 된 아들이 엄마의 목을 만져 본 뒤 목에 임파선이 없어진 것을 신기해하며 놀래서 “그 선생님은 하나님 아래에 계시는 신이 아니냐?”고 묻더라고 전해줬다.

독일인들을 진료하면서 느낀 것은 그들에게도 홧병은 있다는 것이었다.
선진국으로 복지시설이 세계적 수준을 달리는 나라인데도 일부 여자들이 겪는 질병은 동과 서가 따로 없었다. 그들의 얘기를 들어주면 얘기 중에 감동하며 쉽게 눈물 흘린다. 같은 기운은 서로 공명한다 했듯이 그 마음을 알아주니 말이 잘 통하지 않아도 진정으로 위해주려는 좋은 마음과 기운은 서로 공감하게 되는 것 같았다.

일정 관계상 보통 휴식은 밤에 취하고 시차에 적응해 가면서 진료를 해 나간다. 진료가 끝난 밤 시간에는 원법우교무의 안내를 받아 크나이팅어라는 300년 전통의 대형식당과 이타리아인 니노가 경영하는 우니베르소라는 피자집에 가서 대화의 시간을 가졌는데 그 덕분(!)에 잠자는 시간이 부족하여 피로가 잘 풀리는 것 같지가 않았다. 잠을 늦게 자더라도 하루의 시간을 함께 기도하며 시작해야 하므로 일어나는 시간은 그들과 같기 때문이다.

레겐스부르크에서는 일요일 하루는 쉬면서 알프스 산줄기인 그 지역 자연의 명소 베르히데스가덴에 가서 관광을 한 후, 다음 날인 월요일까지 4일간 하루에 50명 내외의 환자를 진료하였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 했듯이, 한국에서 시작하여 독일에 전파된 원불교 독일 교당에서 한국의 한의학을 통해 독일인들에게 실질적인 의료혜택을 주었던 것은 우리만이 할 수 있는 가장 보람 있는 일이라고 느껴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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