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612 「萬民必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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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612 「萬民必讀」
  • 승인 2013.12.05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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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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統一의 염원을 담아, 가정의학상식

國花인 무궁화를 표지 도안에 새겨 넣고 가정상식이란 수식어 아래 한자로 ‘萬民必讀’이라고 제목을 쓴 이 책은 30여 쪽에 불과한 리플릿판 소책자이다. 인쇄상태가 고르지 못해 표지의 큰 글씨도 제대로 읽히지 않을 만큼 엉성하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좌우 3단으로 나누어 배치한 표제의 오른편에는 ‘大韓民國公報處登錄濟’라고 쓴 전각체의 명문이 새겨져 있고 그 아래 ‘第五四三號’라고 적혀 있다. 일제치하로 부터 관부의 엄격한 출판통제를 받던 것이 이제는 자발적으로 관청의 허가를 표방하여 권위를 인정받으려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만민필독」


발행처는 통일산업사로 되어 있는데, 뒷 표지 한쪽에 조그맣게 외곽선을 둘러 배치한 판권부에는 저작겸발행자로 李根旭이란 성명이 밝혀져 있고, 단기4290년 1월로 발행일이 적혀 있다. 서기로 환산하면 1957년이 되니 한국전쟁이 끝난 지 오래 지 않은 시점이고 온갖 사회문제와 전쟁 후유증으로 어려웠던 시절이다.

표지 뒷면에는 판권부 이외에도 나이와 단기, 서기, 간지를 대조해 빨리 찾을 수 있도록 만든 연대대조표가 빈틈없이 들어차 있다. 빽빽한 판면구성을 보아 조금이라도 지면을 줄여 책값을 아끼려고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 발행일자 바로 옆에 ‘(값百환)’이라고 책값이 조그맣게 적혀 있는 품이 바로 이러한 사정을 말해주는 듯하다. 이 보잘 것 없는 가정의학서를 소개하는 이유는 그래도 이 작은 책자에 당시의 어려웠던 의료현실이 투영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갱지로 된 본문은 이미 산화가 심해 부스러지기 직전이고 표지도 역시 세월이 흐른 만큼 노랗게 변색된 지 오래이다.

표지 뒷면에는 ‘厚生精’이란 補血强壯劑 광고가 전면에 걸쳐 실려 있다. 한국약품공사란 회사의 제약부에서 만든 제품인데, 전면 중앙에 적혀 있는 효능을 읽어보니 ‘위장병, 냉병, 해수병, 신경통, 신경쇠약, 補陰陽, 영양부족, 惡病流行時, 소화불량, 중독증’ 이렇게 많은 적응증이 한꺼번에 적혀 있다. 요즘 유행하는 건강증진제의 원조격으로 보이는데, 10종에 달하는 적응증 가운데는 만성병이 태반이요, 쉽지 않은 증상들인데도 이 많은 병증을 다스릴 수 있는 약이라니 가히 만병통치약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이 역시 혼란스러웠던 세태를 반영하는 모습이랄 수밖에 없다.

차례를 들여다보니 당시 시대상황과 사회적 관심사를 반영한 듯, 첫머리에 기미독립선언민족대표33인, 民族日誌 항목이 들어 있다. 하지만 곧바로 이어지는 본편에는 내과편, 외과편, 산부인과편, 여자임산처리법, 소아과편, 피부과편, 혈액관계 및 신경통편, 눈 〮〮귀 코 입 이의병편, 전염병편 등 상습병에 대한 처치법들로 가득 메워져 있다. 또 구황제일방 및 벽곡하는 법, 특효경험방 및 가축병 치료법, 합식물주의법과 같은 전통적인 생활의학지식도 수재되어 있다. 바꿔 말해 전체 분량 가운데 태반이 건강의학상식과 가정에서 필요로 하는 응급처치법에 대한 내용으로 메워져 있는 셈이니 생활상식이라고 표현한 것 대부분이 열악한 의료현실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후로는 혼례관계서식, 제물차리는법, 출생서식 사망서식, 고소장 등 각종 민원서류 작성법과 신고서 양식들이 즐비하다. 그 가운데는 군인가족증명서, 第二國民兵旅行證明書式, 第二國民兵轉籍證明願, 신원보증서 등이 주요 서식으로 수재되어 있어 戰後 어려웠던 시대상황을 실감나게 전해준다. 상습증상에 대한 간단한 민간요법과 단방들, 전염병 대처법을 기재한 소략한 것들이지만 그나마 이 작은 책자가 가여운 민중들에겐 위로의 편지가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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