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보 도오루, 비판적으로 읽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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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보 도오루, 비판적으로 읽읍시다
  • 승인 2013.11.07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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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희

김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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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면서 아보 도오루의 번역서가 몇 권인지 다시 검색해보았다.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나와 있는 아보 도오루의 책만 해도 34권이다. 비슷비슷한 제목에 하나마나한 이야기가 반복되지만 잘 팔리고 있다.
서평을 훑어보았다. 일반인(의학의 비전공자)이 쓴 칭찬 일색의 서평이 많다. 의사는 물론이고 의학지식이 있거나 생리학 전공자인 사람이 쓴 서평은 단 한 개도 찾을 수 없었다. 아보 도오루가 말하는 면도 일리는 있다거나, 이 사람 쌩 사기꾼이라거나 가타부타 뭐라고 말하는 의사가 하나도 없다.

책은 얇고 가볍고 쉽다. 게다가 그 얇은 와중에 같은 내용이 반복된다. (여러 권의 다른 책들도 상황은 마찬가지. 책 쓰기 참 쉽다. 재탕 삼탕… 그걸 한국에서 번역해서 잘 팔아주고 있다. 전공자들도 낚여 학회에 초대까지 해주었다!) 본격적으로 아보 도오루를 파헤쳐보자.

1. 펍메드에서 아보 도오루로 검색하니 면역학 분야의 논문이 주루룩 나온다. 일단 소속이 있고 논문이 있는 연구자인 것은 맞는 셈이다.

2. 그가 면역학자인 것까지는 맞다. 그런데 그의 기초면역학적인 지식에서 환자를 눈앞에서 보고 진료하는 임상으로 건너뛰는 것은 그 사이 연결 고리가 너무 빈약하다. ‘병의 원인이 이것이다!’하고 머리 속으로 상상의 나래를 편 다음에 그것을 직접 시험하겠다고 임상에 들이댄 셈이다. 임상으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치료기전이야 나중에 밝힌다 해도- 일단 부작용이 없는지도 확인되어야 하고, 통계적으로 유의한 치료효과가 검증되어야 한다. (아보 도오루의 치료법은 별다른 부작용은 없어 보이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아보 도오루의 치료만 받겠다고 맹신하여, 치료효과가 있는 다른 치료법을 저버리게 될 위험이 여전히 존재한다.) 이건 마치 입 안의 세균을 연구하는 세균학자가 직접 환자에게 임플란트 시술을 해주겠다고 나서는 꼴이다.

3. 아보 도오루가 ‘비판적인 사고’가 가능한 사람인지 의심스러운 몇 가지 대목들. 예를 들어 ‘파킨슨병의 진전은 근육이 스스로 떨어서 체온을 높이기 위한 인체의 적응 기전이 아닐까?’하는 공상을 동료와 공유하는 대목이 나온다. 공상 자체는 장려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공상을 실제와 연결시키려면 서릿발처럼 매서운 검증이 뒤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뇌내망상일 뿐이다. 자기 머리로 생각하는 의학자라면 마땅히 ‘진전이 체온을 높이려는 적응 기전이라는 증거 없지? 소설쓰고 앉았네…. 그래서 뭐?’라고 답해야 마땅할 텐데, 아보 도오루와 동료는 이것 참 훌륭한 생각이라며 서로 칭찬해마지 않는다. 마돈나의 표현대로, 어쩌라구? (So what?)

4.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 논리가 빈약해도 환자를 낫게 했다는 증거만 있으면 당연히 귀담아 들어야 한다. 탁월한 치료법이 초기에는 멸시되고 배척되었던 의학의 역사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책 전체에 나오는 치료 사례는 9례다. 9례! 9례! 그것도 아보 도오루가 고친 환자만 9명인 게 아니다. 아보 도오루의 동료와 제자가 고친 환자까지 모아모아 9명이다.

사례를 발표하는 것이 무의미한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책에서 겨우 9개의 사례(아마도 베스트 케이스겠지)를 가지고 전반적인 질병에 대한 만병통치 치료를 거론하는 것은 무리다. 전국의 아무 대학병원이나 가서, 아무 레지던트나 잡고 물어보자. 수련의 기간 동안 내가 맡은 환자들 중 극적으로 호전된 환자 9명을 꼽을 수 있겠냐고. 아마 대부분의 레지던트들은 9명 정도는 꼽을 것이다(아툴 가완디가 그의 책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 중 ‘모든 의사에게는 그만의 엘리노어가 있다’에서 이런 이야기를 쓴 바 있다). 이런 턱도 없는 근거를 대는 것만 봐도 아보 도오루가 제대로 된 과학적 훈련을 거쳤는지 의심스럽다.

5. 앞서 아보 도오루의 논문이 많이 검색된다고 했다. 하지만 여기서 업계의 사정을 아는 사람이라면 ‘응?’하게 되는 점이 있다. 그 논문들 중 1저자인 것이 없다. 최근 직접 연구하고 직접 쓴 논문이 없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일본의 권위주의적인 의대 분위기, 층층시하의 대학원에서, 젊은 교수나 대학원생이 논문을 쓰면 종신교수 이름은 그냥 끼워넣어준다는 점(‘선물 저자’)을 생각해볼 수 있다. 현재 연구활동에 참여하지 않고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럴 때 자신이 이름이 들어간 논문의 연구설계에 대해서도 이해를 못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6. 서양의학의 관행에 대해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되긴 했다. 지금 하는 치료가 원인 치료인지 대증 치료인지 꼭 인식하면서 해야 할 것이다. 대증 치료일 경우에는 일시적으로 증상을 좋게 하면서 장기적으로도 치유과정을 방해하지 않는 것인지, 일시적으로 증상만 좋게 하고 실제 치유는 억제하는 것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겠다. 하지만 그건 질병, 증상, 구체적인 약의 성분을 따져서 섬세하게 해야 하는 작업이지, 아보 도오루처럼 거칠고 투박하게 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7. 34권의 번역서가 나오는 동안 의사들은 이 책의 내용을 비판하는 서평 하나 쓰지 않았다. 서평 쓸 가치도 없다고 생각해서 무시하는 것인가. 비판해봐야 속을 사람은 어차피 속는다고 생각하는 걸까. 속을 사람은 어떻게 해도 속는다 해도, 이렇게까지 무대응인 건 좀 너무하지 않나 싶다. 직무유기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고 보면 비타민 메가도즈 요법이나 각종 호르몬 요법, 줄기세포 치료 같은 사기극에 대해서도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말리는 의사를 거의 못 봤다. (없는 건 아니다. 서울대 가정의학과 박진호 교수 같은 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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