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4주년 기념특집] 한약분쟁! 그후 10년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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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14주년 기념특집] 한약분쟁! 그후 10년③
  • 승인 2003.08.04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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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의 정확성이 새로운 話頭
정부, 한의사의 창의적 제약활동 뒷받침해야
한의학 전문가로서 위상 재정립 서둘러야
이제라도 ‘한약분쟁 백서’ 만들자


□ 싣는 순서 □
① 한약분쟁의 배경
② 한약분쟁의 성과와 한계
③ 바람직한 계승을 위하여


바람직한 계승을 위하여

한약분쟁을 치르면서 한의계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뚜렷하고 분명한 변화의 흐름이 이어졌다. 의료영역간의 경계가 모호해진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전에도 상대방의 의료영역에 눈길을 던지는 현상이 종종 있었지만 한약분쟁을 거치면서 이런 현상은 보다 분명해졌다.

양약사가 한약과 한약제제를 사용한 것이야 오래전부터 있어온 터이지만 한약분쟁 이후로도 단속규정이 사문화되는 듯한 상황이 돼버렸고, 어느 순간부터는 양의사도 한약제제와 침, 부항 사용빈도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1995년경 미국 국립보건원(NIH)에서 침의 효능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대한의사협회측은 밝혔다.

▶ 침식되는 한의학의 영역

양방의료의 선진국이 침의 효능을 공인하자 양방의료기술의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의 양의사는 곧바로 침을 양방의료의 일부로서 수용한 것이다. 양의사측은 한약제제는 일반의약품이라는 약사법 규정에 따라 양의사가 처방할 수 있게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오히려 한의사는 보험약으로 등재된 한약제제 이외의 한약제제를 쓸 수 있는 확실한 근거가 없는 상태에 처해 있다.

그밖에 침은 침구사, 수지요법사, 대체요법사가, 부항은 물리치료사가, 기공은 기공치료사가 시술하고 있다.

한의사는 과거 마이너리그에 속하던 유사의료업자와 무면허업자의 한방의료행위를 막지도 못했고, 메이저리그에 속하는 양의·약사의 한약과 침의 취급도 저지하지 못했다.

반면 한의사는 취약분야인 진단의 정확성을 기하고자 현대적인 진단기기를 사용하려고 했으나 양의계의 반대에 밀려 뚜렷한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한의사가 진단기기를 사용할 수 있기 위해서는 한방병원 부설 양방의원을 설립하거나 양방의료기관(가령, 진단방사선과)에 의뢰하는 방법, 혹은 한양방 협진을 통해 진단결과를 공유하는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여기에다 제약산업과 건강식품시장도 급성장해 전통적 강세분야였던 자양강장제, 보약, 그리고 일부의 치료제 등이 범람해 한의학의 영역이 위축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분쟁 이후로 몇 가지 법이 제정되거나 개정되어 한의약법을 제정할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되었다고 볼 수 있지만 일선 한의사에게 있어 법과 제도는 여전히 철옹성이다.

▶ “학문적 근거 마련하라” 여론 점증

교육현실도 열악하기 그지 없다. 사학으로만 구성된 한의대는 한의학 교육을 주체적으로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열악한 사학의 재정을 보충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지는 않는지 하는 의문이 적지 않다. 최근 들어 일부 한의대에서 한의학 육성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정체성 있는 한의학인지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양의계와 양약계는 수십개의 국립대에서 국가의 지원을 받아 안정적으로 교육과 연구를 하면서 국가기관과 기업체에서 발주하는 각종 용역사업에 참가, 막대한 수입을 거두고 연구인력을 양성하고 있는데 국립대가 없는 한의계는 한의사 돈으로만 연구를 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대외적으로도 양의계는 전세계 연구진의 연구성과를 공유하는 데 비해 한의계는 한의계 자체의 연구력에 의존해야 하는 처지에 있다.

외부의 공격과 침식을 막아내지 못한 한의계는 여러 갈등요인을 안고 있다. 현대적 진단기기 사용권과 의료기사지도권을 보유하지 못한 한의사는 진단의 정확도에 의심을 받아 진료의욕이 꺾이거나 오진과 부정확한 처방으로 인한 의료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침치료와 약물치료의 부작용 기전을 밝히지 못하는 사이 빈발하는 배상위협과 소송제기 위협에 속수무책인 경우도 간혹 목격된다. 치료기전과 부작용의 원인이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으면 한의사는 방어진료를 할 수밖에 없고, 궁극적으로 학문에 대한 자신감을 잃어버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진료의 객관화라는 이유로 한양방 협진이나 의료일원화론에 빠져들 위험성이 늘 상존하고 있다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 다가오고 있다.

▶ 한방식약청, 한의약법, 서울대 한의대가 관건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한의계의 현실을 감안할 때 최대의 정책과제는 한방식약청 설립, 서울대한의대 설립, 한의약법 제정에 모아진다.

한의약을 가르치고, 법으로 보호하며, 행정적으로 관리해야 비로소 발전할 토대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국립 의대와 약대, 의료법과 약사법, 식의약청 등이 양방 의약을 보호, 발전시키는 장치라는 사실에서 확인된다.

이중 한의약법의 제정과 관리조직인 한방식약청의 설립이 시급하게 요구되고 있다. 분쟁 이후 한의사들은 기존의 첩약에 안주하던 자세를 버리고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노하우를 이용하여 치료효과가 높은 한약제제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들 약들은 다수 한의사를 상대로 판매할 수 없어 대부분 제약회사와 제휴하여 생산·판매·유통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한의사들은 일반의약품으로 등재되어 사용이 불허되고 있다.

전 한의사가 하나 이상의 한약제제를 만들어 판매할 수 있는데도 국내에서는 이들의 창의적인 제약활동을 뒷받침해 주지 못하고 있다. 국내 사정이 이러다보니 고급기술은 해외로 유출되고 있다. 어느 한의사는 자신이 개발한 당뇨병 치료기술을 미국 회사에 300만달러를 받고 판매한 바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의사들은 국내 법의 장벽에 막혀 좌절하거나 개발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의사의 권익이 침해되면 자연스럽게 학문발전이 더디게 된다. 일반 기업체에서도 기업활동을 규제하면 신기술 개발이나 투자활동이 위축되듯이 한의계에서도 한의사의 제형변경, 신처방과 신치료기술의 개발을 법과 제도로 보호해주지 못하면 의욕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

교육을 통한 인재양성도 매우 중요한 요소다. 국립대에 한의대가 있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한의학이 발전하는 것은 아니지만 국가가 한의학에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는지 상징적으로 나타내 준다는 점에서 국립대 한의대 설립은 중요하다. 한의계는 이왕이면 서울대에서 설치해 주기를 희망하고 있다.

한의학이 아무리 뛰어나도 제대로 계승, 발전시키지 못하면 세계무대에서 뒤쳐지게 된다. 비록 최근 정부의 한의학에 대한 관심은 높지만 외국의 관심과 육성정책에 비하면 여전히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다. 미국의 한의학연구비는 연 10억달러에 육박하고 있고, 중국과 일본, 유럽 등의 나라도 한의학에 집중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 한의학 행정 변화 요구돼

한의학의 육성은 정부의 관심 못지 않게 한의계의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그러나 한의계의 노력은 취약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만여 한의사가 있다고 하지만 개별 한의원의 테두리내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응집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때론 분쟁당시와 같이 법적 소외, 한의원급의 의료기관 운영 등 동일한 처지에 있어 누적되면 힘이 폭발적으로 분출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정서적 유대감에 기인해 지속되지 못한다는 단점을 안고 있다.

한의사의 대표조직인 한의협은 보건복지부와 한의사를 행정적으로 뒷받침하는 기구정도이지 정책을 연구·입안·추진하는 명실상부한 대표주체가 되기에는 문제점이 많다는 지적은 새겨들을 만하다. 분쟁 때에도 한의협은 우여곡절 끝에 약사법을 개정하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뒷심부족으로 하위법을 만족할 만하게 개정하지 못해 급기야는 모법의 개정 취지를 살리지 못했다. 한 가지 분야에서 뛴 사람들이 에너지를 비축하도록 놔뒀어야 하는데도 새로운 일에 투입해서 여력을 소진시키는 방향으로 인력을 운용한 면이 없지 않다. 물론 한의협지도부가 사람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여유인력을 쉴 사이 없이 투입시켰을 것이라는 사정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지금은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게 지각있는 한의사들의 생각이다. 한의협은 행정전문가들로 충원시키고 한의사는 한방의료의 전문가로서 걸맞는 일을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약분쟁이 끝나면서 이런 역할분담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큰 실책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러므로 한의사들이 자신을 훈련시킬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모색해야 한다는 견해도 많다. 한의학 행정과 경제성 평가를 담당할 인력을 양성하는 기관으로 한의대에 보건학교실을 만든다거나 기존의 보건대학원에 위탁교육을 시켜 한의학 법·제도·행정 전문가를 양성해야 한다는 지적은 곰곰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훈련된 한의학 전문가들을 의협의 의료경영연구소와 같은 한의협 산하 연구소에 배치한다면 한의협 회무의 생산성은 훨씬 향상될 것이다.

한의학 회무는 한의협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오래 전부터 한의계 회무는 한의대-한의협-한의학연구소의 네크워크를 형성하여 유기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이들 기관간의 긴밀한 유대는 매우 시급하다. 한의사 회원들은 한의협이 예산을 바탕으로 한의대와 연구소 등을 연결시키는 일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 개개 한의사의 역할도 중요

우스갯소리로 양약사는 약사공무원이 지켜주고, 양의사는 전공의가 지켜주고, 한의사는 국민이 지켜준다는 말이 있듯이 한의사는 국민과 밀접한 연계를 가질 때 그나마 한의학을 지켜갈 수 있는 게 현실이다. 분쟁이 끝나면서 나온 이야기도 ‘내려가는 한의학’이 되라는 것이었다.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자는 것 그것이 바로 한약분쟁에서 얻은 소중한 교훈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여의도에서 삭발하고, 한강대교 아치에서 시위하던 그 정신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국민이 요구하는 것은 치료능력이 있는 한의학, 치료하기 전에 병을 예방할 수 있는 한의학, 경제적으로 저렴한 한의학, 국민의 아픔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한의사일 것이다. 다시 분쟁이 일어나도 ‘밥그릇싸움’이라는 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국민의 인식을 바로잡아주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이를 위해서는 한의사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한의사는 국민의 건강증진을 위해 봉사한다는 인식이 국민 속에 스며들게 일상을 점검해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사회단체와 국회에도 진출할 수 있다.

한의계는 그야말로 한의사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세계다. 한의사 개개인이 없는 한의협이 있을 수 없고, 한의협 없는 한의사도 없다. 한의협은 한의대, 연구소, 공공조직 등과의 연대 없이 개원의만으로 존재할 수 없다. 또 머리 없이 몸만 갖고 거대한 세계를 이끌어나갈 수 없다. 지혜를 모아 효율적으로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앞만 보지 말고 과거를 뒤돌아보면서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변별하여 한발 한발 신중하게 내딛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점에서 보면 적어도 이 시점에서 한약분쟁 백서를 제작해 역사의 사표로 삼는 방안을 모색해 봄직하다. <끝>

김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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