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 607 「經驗類聚」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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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 607 「經驗類聚」 ①
  • 승인 2013.10.29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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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mjmedi@http://


기이하고 독특한 치료 經驗

화려한 겉표지도 없이 그저 위아래 2군데 종이 노끈을 꼬아 질끈 동여맨 소박한 모습의 경험방이다. 표지 상단 한 구석에는 수줍어 보이는 단아한 필치로 ‘經驗方’이라고 적은 표제가 다소곳하게 적혀있다. 표지를 넘기자마자 단 몇 줄의 서발도 없이 첫 장부터 ‘經驗類聚’란 제목 다음에 곧바로 본문이 펼쳐진다.

◇「경험유취」


胎毒, 急驚, 丹毒, 母痣, 痔疾 … 서로 아무런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질병들이 구분 없이 나열되어 있어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채록한 듯한 기분이 든다. 그래도 단정하게 적어 내려간 필체를 보아서는 무척 공을 들여 수집해 기록한 것임을 직감할 수 있다. 또 대부분 一味單方으로 이루어진 치료법을 보니 陰地上靑衣(푸른 이끼), 島馬蛇(도마뱀), 靑頭鴨(청둥오리), 女瓦(암키와), 雄瓦(숫키와), 岩衣(바위옷) 등 작자가 임의로 俗名을 한자표기로 채록해 놓은 용어가 다수 보인다. 아마 이런 점도 이 기록물이 가지고 있는 현장성을 보여 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러는 한문으로 기재하기 어렵고 다급한 나머지 아예 한글로 기재한 경우도 보인다. 齒痛조에 “간수을물어만이면즉차”라든지, 아마도 잇몸이 아픈 증상을 표현한 것으로 보이는 ‘齒本傷’에 “松담장이을煎水含口十日”, 또 감을 많이 먹고 체한 枾滯에 “메기션몸의잇는침갓틈것슬먹으면즉”라고 적은 경우이다.

간혹 새로 창안한 복합방제도 보이는데, 각기병에 쓰이는 瓜膝正氣散 같은 것이다. 藿香正氣散에 우슬과 모과 각 3돈을 가미한 것인데 상한음증으로 인한 각기증이나 요각통에 좋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産後陰脫에 쓰는 방법도 특이하다. 피마자 1냥을 찧어 이마위에 붙이고 보중익기탕 10제를 들게 하면 저절로 올라붙는 공효를 볼 수 있다고 하였다. 이것은 피마자와 보중익기탕이 모두 升補하는 약이기 때문이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곁들여 놓고 있다. 피마자 무슨 승보하는 효과가 있을까 싶어 책을 찾아보니 약성가에 ‘塗頂收肚足下胎’라고 하였고 「동의보감」에서는 難産이나 胞衣不下에 이용하고 있어 새삼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탈음증에 대해서는 앞의 이야기보다 더욱 놀라운 내용의 의안이 실려 있다. 한 부인이 陰脫로 고생한지 3∼4년에 아무런 대처법도 찾지 못한 채 廢人되어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 한 노파가 부인을 보고 나서 쉽게 고칠 수 있다고 말하였다. 곧바로 불가마처럼 온돌방[熏突房]을 덥히고 방안에 환자를 앉힌 다음 품질 좋은 指南石 1개를 입에 물게 하고 음부에 쇳덩어리 하나를 깔고 앉게 하였다. 음호와 자궁이 모두 빠져나와 있어 차마 보기 힘들 정도여서 그 노파가 손으로 문질러 넣었더니 점차 올라붙기 시작하여 힘껏 밀어 넣으니 과연 말려 들어가 평소처럼 회복할 수 있었다. 기발하고 독특한 치료법이 아닐 수 없다.

지난 여름 「鍼灸治療의 實地」(592회, 7월 4일자)라는 책을 소개한 이후, 김병운 교수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서문에 나타난 雲溪라는 아호를 쓴 저자는 경희대병원장을 지내신 金定濟 선생임을 알려주고 여러 가지 미처 몰랐던 한의계의 지난 역사를 되짚어 주셨다. 이 자료는 김병운 교수님이 필자에게 제공해 주신 것 가운데 하나이며, 앞글을 補正하고 도움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소개하는 바이다.

 

 

 

 

안 상 우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기념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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