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 (600) 「醫門須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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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 (600) 「醫門須知」
  • 승인 2013.09.05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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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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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醫生大會와 지켜야 할 가치

지금으로부터 약 1세기 전인 1915년(大正 4년)에 발행된 작은 책자가 하나 있다. 일본이 조선을 강제 병합한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나라가 망하고 의원의 신분이 의생으로 격하되면서 방향을 잃고 고뇌하던 한의계 주축들은 ‘全鮮醫生大會’라는 전국규모행사를 개최하면서 이를 계기로 한의계의 결집을 기약한다.

◇「의문수지」


이때 崔東燮이 자비를 털어 조선총독부에서 공포한 醫師規則과 醫生規則을 비롯하여 按摩術鍼術灸術營業取締規則 등 관계법령과 이와 관련한 진단서식, 증명서식, 이력서식, 개업신고서, 의생개업장소이전계 등 각종 서식류들을 수록해 당시 의업을 수행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내용을 담아 조그만 책자로 발행한다. 그는 당시 의생대회 현장에서 이 책자를 무료로 배포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정식 출판되지 않아서인지 오늘날 남아있는 실물은 흔치 않다.

저자인 최동섭에 대해서는 김남일 교수가 근현대 한의학 인물사에서 연2회(138~139)에 걸쳐 소개한 바 있다. 당시 최동섭은 1915년 全鮮醫生大會를 개최하는 發起人으로 참여하였으며, 全鮮醫會에서 副會長과 評議長으로서 역할을 맡아 회무에서 활약이 대단하였다. 또한 그는 四象醫學에 능하였으며, 1916년 학술잡지 「東醫報鑑」의 편집부장으로 활약하면서 ‘診法의 最要’라는 제하의 의론을 통해 동서의학을 비교 검토하는 등 한의학술 진흥에도 많은 노력을 경주하였다고 한다. 그의 이런 적극적인 대외활동 탓인지 1916년 총독부에서 제정한 보안법에 의해 日警의 감시를 받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한의학의 수호를 위해 노력하였다고 전한다.

저자는 이 책의 서문에서 “… 醫學界所關 新布規定 若干則하여 汰濫收精하고 祛繁就簡하여 裒成一編하고 命名曰 「醫門須知」라하여, 迨玆全鮮醫生大會之時期하여 庸表紀念麤品하니 庶可以作肘後龜鑑也夫인저”라고 하면서 책을 펴내는 소회를 밝혔다.

요즘 말로 풀어쓰면 “의학계와 관계되는 몇 가지 새로 공포된 규정들을 수집하여 방만한 것을 정련하고 번잡한 것을 버리고 간결하게 하나로 모아서 편집하고 「醫門須知」라고 이름 붙여, 전선의생대회가 열리는 시기에 맞추어 기념품으로 쓰고자 하니 휴대하고 다니면서 항상 살펴볼 귀감으로 삼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그의 애절한 바람이 통해서였는지 전통의학은 일제치하 암흑기를 벗어나 광복 이후 다시 정규의학으로서의 지위를 회복하게 되었다.

이외에도 사망진단서, 死産證書(死胎檢案書), 건강진단서, 요양진단서, 난치병진단서, 진단서 등 각종 서식류, 전염성질환 및 방역과 관련하여 傳染病豫防令, 傳染病發生報告, 傳染病轉歸屆, 種痘施術目次가 들어 있다. 또 藥品營業取締令과 약품영업취체령 시행규칙, 약품순시규칙 등 한약재 유통 관련법규와 藥種商願, 賣藥檢査願, 賣藥請賣願, 賣藥行商鑑札願, 毒劇藥의 분류, 有毒藥種不許可品, 소독법 등 다양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또 권미에는 內鮮病名對照表, 內鮮年代考, 全道醫療機關 등의 관련 참고 항목이 곁들여져 있는데, 의료분야에서도 날이 갈수록 일제의 강압에 의한 통치가 자리잡아가면서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 강요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은 오래 전에 이미 고의서산책 코너에서 소개(208회, 조선총독부 시행 醫生守則, 2004년 7월 2일)한 바 있지만 미처 다 밝히지 못한 것도 있을 뿐만 아니라 비록 근 100년 전 일이지만 지금의 한의계 현실에 귀감으로 삼을 만한 점이 있어 보여 한의학도들의 대오각성을 바라는 심정에서 새삼 다시 들추어보았다. 수록 내용에 관해서는 기발표문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안상우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기념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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