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인류학 통해 티벳 의학의 다양성 드러내”
상태바
“의료인류학 통해 티벳 의학의 다양성 드러내”
  • 승인 2013.08.15 13: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태우

김태우

mjmedi@http://


▶9월 국제아시아전통의학대회(ICTAM) 빛내는 석학들(10) 미국 다트머스(Dartmouth) 대학의 의료인류학자 시에나 크레이그 (Sienna Craig)

2012년「Healing Elements」출간 네팔-부탄-중국 등 다양한 지역의 티벳 의학 연구

근대화 이후 서로 다른 길 걸은 네팔-중국 ‘두 티벳 의학’ 변모 ‘소셜 에콜로지즈’ 개념으로 설명

내달 산청 전통의학대회 기조발표 ‘티벳 의학들’ 현란한 스토리 기대

인문사회과학자들에게 근대는, 전근대 이후에 도래한 시대라는 시간적 의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근대는 근대적인 사유의 틀이 투과된 시대이다.

근대적 사유 틀이 만들어 내는 근대성 중에서 ‘대상화(objectification)’는 근대적 현상의 대표라고 할 만하다. 대상화는 분리를 전제로 한다. 복잡다기한 현상에서 대상화할 수 있는 대상을 분리시키는 실천을 수반한다. 근대서양의학은 대상화의 의학이다. 병변이 발생한 장기를, 정상범위에서 벗어난 혈당을 복잡다양한 인간의 생명 현상으로부터 ‘분리시켜 드러내는’(대상화) 경향성이 뚜렷한 의학이다. 대상화에는 통제하려는 의지가 내재해 있다. 복잡다양한 현상 속의 존재들은 통제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한 다중에서 특정 대상을 분리해서 대상화 시킬 때 통제 가능성이 열린다. 미셀 푸코가 근대라는 시대 자체를 권력의 개념과 연결시키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Healing Elements」


통제의 의지를 가진 근대는 다양성을 회피하고자 한다. 다양성이 의미하는 통제의 어려움을 저어한다.
하지만 의학은, 특히 전통의학은, 다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의학을 연구하는 인문사회과학자들의 일관된 주장이다. 몇 주 전에 필자는 이 지면을 통해 중의학을 동아시아의학의 표준으로 명명하려는 중국 측 주장의 어불성설과 함께 마타 한슨의 연구를 소개한 바 있다. 마타 한슨의 연구가 의사학을 통해 동아시아 의학의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다면, 시에나 크레이그(Sienna Craig)는 의료인류학을 통해 티벳 의학의 다양성을 드러내 보인다. 크레이그는 미국 다트머스 대학의 인류학과 교수이다. 그녀는 9월 산청에서 열리는 제8회 국제아시아전통의학대회(ICTAM VIII)에서 기조 발표를 하기로 되어 있다. 약 20년 동안 티벳 의학을 고찰하고 있는 크레이그 연구 방법론의 특징은 다양한 지역의 티벳 의학을 함께 연구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네팔의 티벳 의학, 부탄의 티벳 의학, 중국의 티벳 의학 등이 포함된다. 그녀가 2012년에 발간한 「힐링 엘리먼츠 (Healing Elements: Efficacy and the Social Ecologies of Tibetan Medicine)」는 하나의 이름을 가진 티벳 의학이 근대 이후에 각각의 지역에서 어떻게 변모, 재탄생하는지를 구체적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특히, 네팔의 티벳 의학과 중국의 티벳 의학이 보여주는 상이한 현존은 근대화 이후 서로 다른 길을 간 두 티벳 의학을 예시한다. 위 제목의 부제에서 크레이그가 사용하고 있는 소셜 에콜로지즈 (Social Ecologies)라는 개념은 사회적인, 자연적 환경의 조건 속에서 상이한 의학이 형성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개념이다.

네팔의 티벳 의학은 국가로부터 공식적 인정을 받고 있지 못한 반면, 중국의 티벳 의학은 주요 소수민족의학으로서 국가로부터 인정과 지지를 받고 있다. 공식적인 체계를 가지지 못한 네팔의 티벳 의학은 의학 지식의 전수와 의료의 실천에 있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의 티벳 의학은 중국 정부의 많은 지지와 함께, 또한, 많은 지시를 받고 있다. 사회주의 중국이 성립된 1949년 이후 당대의 중의학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부문이 중국정부이듯이, 중국 영토 안에 존재하는 티벳 의학은 중국 사회주의 정부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중의학이 경험한 국가주도의 표준화, 과학화의 광풍이 티벳 의학에도 몰아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티벳 불교와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티벳 의학은 더 격심한 부침을 경험하고 있다. 중국정부가 요구하는 티벳 의학의 근대화 요구에 부흥하기 위해서는 그 중심 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 종교적인 부분을 도려내야하기 때문이다.

크레이그의 「Healing Elements」에서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근대 국민국가의 탄생이후 당대 전통의학이 경험하는 극심한 변화이다. 티벳 문화권에 광범위하게 분포 되어 있던 티벳 의학이 근대국가의 출현과 함께 각각의 국민국가 경계 안에서 (네팔, 중국, 부탄 그리고 러시아까지) 다르게 변모하는 전통의학의 현실을 직시하게 해 준다. 그래서 크레이그는 티벳 의학(Tibetan Medicine)이 아니라 티벳 의학‘들’(Tibetan Medi cines)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녀의 책이 예시하는 전통의학의 다양성을 고려한다면 동아시아의학도 동아시아의학‘들’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다양성을 강조하는 크레이그의 의료인류학적 연구에 의해 중국의 중의학 표준화 주장은 다시 한번 부정된다.

티벳 의학 연구자들이 조명하고 있는 티벳 의학의 다양성은, 중의학을 동아시아의학의 표준으로 하려는 중국의 주장에 대한 강력한 반론의 증거가 될 수 있다. 각 국가의 사회정치적 배경 속에서 다양하게 발현되고 있는 티벳 의학을 목격하려면 멀리 갈 필요 없이 경상남도 산청으로 가면 된다.

9월에 열리는 제8회 국제아시아전통의학대회(ICTAM VIII)에는 각 지역의 티벳 의학에 대한 다양한 발표가 예정되어 있다. 독일의 의료체계 속에서 수용된 티벳 의학, 유럽연합(EU)의 법률 규제 속에서 존재하는 유럽의 티벳 의학, 티벳 망명정부가 있는 인도 다람살라의 “망명 중인 티벳 의학”[따옴표 속의 표현은 이 주제로 산청에서 발표할 오스트리아의 인류학자 스테판 크루스의 논문 제목을 인용한 것이다: “Tibetan Medicine in Exile”], 중국영토 내의 티벳 의학, 부탄의 티벳 의학, 네팔의 티벳 의학, 심지어 러시아의 티벳 의학까지, 티벳 의학이라는 이름 아래 다양하게 전개되는 티벳 의학‘들’의 현란한 스토리가 선보일 예정이다.

크레이그의 「Healing Elements」가, 산청 학회를 준비하는 우리의 입장에서 흥미로운 또 다른 이유는, 그녀가 그 책에서 2009년 부탄에서 열린 제7회 국제아시아전통의학대회(ICTAM VII)를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여섯 페이지(p.200~205)에 걸친 [학술서적에서 하나의 학회에 여섯 페이지를 할애 한다는 것은 특별한 예우가 아닐 수 없다] 크레이그의 참가기와 전 세계의 학자들의 교류에 대한 기록은 이 대회 자체가 학술적, 역사적 의미를 가진 중요한 학회라는 것을 말해 준다.

2013년 9월 산청의 학회가 끝나고 나면 또 누군가가 한국에서의 ICTAM VIII에 대한 기억을 책에, 학술지에, 신문에 기록으로 남길 것이다. “훌륭한 학회였다” “의미심장한 토론의 장이었다” “한의학의 현재 모습에 놀랐다” 등의 좋은 기억으로 기록되길 바라마지 않는다.

김태우
경희대 한의대 교수·의료인류학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