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 의학외적 경계 없는 동아시아 초기의학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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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과 의학외적 경계 없는 동아시아 초기의학 관심”
  • 승인 2013.08.01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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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우

김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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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국제아시아전통의학대회(ICTAM) 빛내는 석학들(9) 유니버스티 컬리지 런던(University College London (UCL))의 비비안 로 (Vivienne Lo)

대회 주최 학회 IASTAM 학술저널 「Asian Medicine」 편집장 맡아

9월, 국제아시아전통의학대회(ICTAM)를 주최하는 학회인 국제아시아전통의학회(IASTAM)는 학술지를 발간한다. 「아시안 메디슨: 트래디션 앤 모더니티 (Asian Medicine: Traditiona and Modernity)」가 그 저널의 이름이다.

쿨렌과 함께 편집한 「Medieval Chinese Medicine」 중국 둔황서 발굴 된 문서 연구 소개

영국의 유니버스티 컬리지 런던(UCL)에 재직 중인 비비안 로(Vivienne Lo)는 「Asian Medicine」의 편집장이라는 중책을 맡아왔다. 로는 고대 동아시아의학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학자이다. 로가 쿨렌(Cullen)과 함께 편집한 「메디이블 차이니즈 메디슨 (Medieval Chinese Medicine: The Dun huang Medical Manuscripts)」이라는 책은 중국 둔황에서 발굴 된 문서에 대한 연구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 책에서와 같이 로는 동아시아 초기의 문서에 관심이 많은 학자이다. 물론 고문을 읽어 낼 수 있는 독해능력을 갖추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문헌학-양생-호흡법에서 방중술까지 학문적 섭렵

로의 관심사는 실로 다양하다. 동아시아의학은 말할 것도 없고, 문헌학, 양생, 호흡법, 그리고 방중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들을 학문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로가 가진 의학 뿐만 아니라, 의학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분야에 대한 관심은 그녀가 학문적 자료로 사용하는 고대의 문헌과 깊은 연관이 있다. 주시하다시피, 동아시아의학은 의학외적인 부분과의 깊은 연관 속에서 발전하였다.

여기서 ‘의학외적’이라고 표현한 것은 어쩌면 잘못된 표현인지 모른다. 인간의 물질적인 측면을 강조하면서, 의학의 인문사회과학적인 측면과의 결별을 통해서 발전한 서양의학에 영향을 받은 사유의 표현이라는 혐의가 짙다. 동아시아의학에서 의학은, 의학과 ‘의학외적’인 부분의 적극적 연관을 통해서 발전해 온 광의의 의미인데도 근현대를 사는 우리가 근현대의 사유방식으로 동아시아의학의 폭넓음을 재단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사실 의학적인 것과 의학외적인 것에 대한 서양의학에서의 논의는 한의학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근대서양의학은 18세기말에서 19세기로의 이행과정에서 프랑스를 중심으로, 인간의 몸과 질병을 바라보는 새로운 인식론을 통해서 성립된 의학이다. 계몽주의에 깊이 영향을 받은 당시의 근대의학 운동은 확실한 의학적 대상을 구축하기 위한 몸부림 속에서, 몸의 물질적인 부분(확실성을 담보할 수 있는 인간의 부분)을 의학적인 것의 근간으로 규정하고 ‘의학외적인’ 것(확실성을 담보할 수 없는 부분)을 철저히 배제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몸의 물질적인 토대를 ‘의학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근대서양의학은, 또한 물질적인 부분을 강조하는 과학기술과 만나면서 전대미문의 발전을 거듭한다.

하지만 20세기에 이르러 서양의학 관계자들은 본인들이 뭔가 빼먹고 있다는 회의를 하게 된다. 물질적 측면을 강조하여 비약적 발전을 이루었지만, 의료의 진정한 대상인 사람을 놓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것이다. 이후 사람을 담아내기 위해 인접학문들에 도움을 청한다. 이러한 배경에서 의료사회학, 의철학, 의료인류학, 역학(epide miology), 간호학 등이 원군으로 대두된다.

하지만 서양의학의 ‘의학외적’인 부분에 대한 관심은 생각보다는 많은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그것의 근본 이유는 물질을 강조한 근대서양의학의 역사가 도하하기 어려운 깊은 강을 형성한 상태이기 때문이고, 서양학문 자체가 너무 세분화되어 융합을 끌어내기가 용이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필자가 전공하는 의료인류학에서도 의사/환자 관계의 이슈를 문화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위한 연구들이 다수 전개되고 있지만, 그러한 논의가 의료계로 가면 의학과 인류학의 형식적 결합에 머무는 결과가 나타나곤 한다. 의료와 문화가 느슨하게 결합되어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서양의학의 상황은 한의학을 돌아보게 한다. 의학적인 것과 ‘의학외적’인 것의 긴밀한 관계가 아직도 가시적인 한의학의 범주를 이 근/현대라는 시대에 어떻게 규정해야 할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원래 광의의 의미를 가진 한의학에서 의학의 범위를 어떻게 정해나가야 할지를 고민 해보라고 촉구하고 있다.

서양의학과 달리, 한의학은 의학적인 것과 ‘의학외적’인 것을 잘라내려는 근대적 경험이 부재한 의학이다. ‘의학외적’인 것을 배제하고 그것을 복구하기 위해 고민하는 당대의 서양의학을 반면교사로 삼는다면, 한의학이 가진 포괄적인 의학의 범주를 한의학의 장점으로 다듬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한의학 고전에서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는 호흡, 양생 등의 주제를 당대로 가져와 한의학의 문화자본으로, 그리고 나아가 한의학의 효능을 배가시키는 의료자본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호흡하는 신형장부도와 양성/양생에 대한 논의가 「동의보감」의 첫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의학외적’인 부분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보라는 허준 선생의 예지가 담긴 편집이라는 생각이 든다.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한의학이 어려울 때 한의학의 바깥뿐만 아니라 한의학 내부에 들어 있는 내용들을 활용해 보려는 노력이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비비안 로의 학문적 작업은 이러한 노력을 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동아시아의학과 그와 관련된 다양한 주제에 대한 그녀의 연구는 동아시아의학 초기의 모습에 의학과 ‘의학외적’인 부분이 경계 없이 결합하고 있는 모습을 조명할 수 있는 의사학적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김태우
경희대 한의대 교수·의료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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