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국제아시아전통의학대회(ICTAM) 빛내는 석학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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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국제아시아전통의학대회(ICTAM) 빛내는 석학들(7)
  • 승인 2013.07.18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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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우

김태우

mjmedi@http://


미국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 역사학과 샤롯 펄스(Charlotte Furth) 교수

의서는 의학적 내용 이상의 것을 담고 있다”


「A Flourishing Yin 」저서 통해
의서읽기의 다양한 가능성 보여줘

‘융합’이라는 화두에
한의학 기여 가능성 드러내


융합이 화두인 시대다. 융합은 분화, 분리만을 강조해 왔던 근대 이후의 학문경향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제기 되었다. 분화와 분리의 근/현대는 세부 분야의 전문가들을 양산했지만, 학제 간에 형성된 칸막이는 학문 간의 대화를 가로막았다. 같은 과에 있는 교수들조차 조금만 전공이 다르면 옆 연구실의 교수가 뭘 연구하는지 잘 모르는 상황은 그 칸막이의 견고함을 실감케 한다. 세분화를 통해 한 분야에서의 깊이는 갖췄지만 그 깊이가 전체 학문 분야의 맥락에서 어떤 함의를 가지는지는 놓치는 경우가 많다. 융합은 이러한 구분, 분리에의 경도를 넘어서야한다는 시대적 요구이다.

 

의사학자 샤롯 펄스(Charlotte Furth)의 연구는 융합이라는 화두를 떠올리게 한다. 미국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역사학과 교수인 펄스는 중국 의학에 관한 세계적 학자이다. 펄스의 학문적 작업은 의서 읽기의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 준다. 의서는 의학적인 내용 이상의 것을 담고 있다는 것을 펄스의 연구는 예시한다. 그녀의 책, 「어 플로리싱 인(A Flourishing Yin)」은 고전의서를 통해 읽을 수 있는 것이 의학, 역사는 말할 것도 없고 당대 인문사회과학의 주요 주제들도 가능함을 보여주고 있다.
「젠더 인 차이나스 메디칼 히스토리 960-1665 (Gender in China’s Medical History, 960-1665)」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책에서 펄스는 중국 송대에서부터 명대까지의 부인과의학의 역사에 대해 다루고 있다. 먼저 1장에서 황제내경의 부인과 관련 서술을 검토한 뒤 2장부터 그러한 논의가 역사 속에서 어떻게 재형성 되는지를 보이고 있다. 「A Flourishing Yin」은 송대에서 명대 사이의 부인과의학에 대한 의사학 교과서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많은 의서들을 다루고 있다.

여기에 더해서 ‘젠더’라는 인문사회과학적 이슈에 주목하면서, 그러한 의학적 기록에 내재해 있는 여성을 바라보는 동아시아문화의 관점에 대해 논하고 있다.

 

또한 인간의 몸에 대한 동아시아의학의 시선을 짚어 가면서 어떻게 고전의서가 ‘몸’이라는 당대 인문사회과학의 중요 논의과제에 기여할 수 있는지를 보이고 있다. 책의 본문에서 문화역사학(Cultural History) 연구자라고 스스로를 칭하고 있는 펄스가 펼쳐 보이는 의학적인 내용과 인문사회과학적 내용의 결합은, 지금 한국사회에서 뜨겁게 논의되고 있는 ‘융합’이라는 화두를 위해 한의학이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드러내 보인다.

 

사실 융합은 멀리 있지 않다. 그리고 먼 미래에 있는 것도 아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융합은 과거에서부터 있어 왔던 학문하는 자세이다. 하지만 근대이후의 분리, 분화에 대한 경도가 그런 자세를 다시 불러냈을 뿐이다. 특히 한의학은 융합의 전범이라고 할 수 있다. 펄스의 「A Flourishing Yin」이 예시하듯이 한의학의 내용에는 몸을 바라보는 관점은 말할 것도 없고, 동아시아인들의 인간관 세계관이 살아 숨쉬고 있으며, 그것이 한의학을 한의학이게 하는 핵심적 내용이다.

한의학 의서의 내용들은 그 자체가 융합의 산물임을 웅변한다. 그동안 접해 본 여러 문화의 의서들 중에서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 만큼 완벽하게 의학과 인문학을 결합한 책을 아직 필자는 발견하지 못했다. 성정과 장부가 조응하고, 윤리와 의학이 흠절없이 만나는 「동의수세보원」은 의학과 인문학의 완전한 만남이라고 할 만 한하다.

이러한 이제마의 융합정신은, 의학과 인문학, 과학과 인문학의 융합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한국사회에게 던지는, 이미 백여 년 전에 이루어낸 완벽한 예시이다. 「동의보감(東醫寶鑑)」의 내용 또한 융합 정신의 산물이다. 필자가 전공하는 인류학은 인간이해를 추구하는 학문이다.

「동의보감」을 읽기 시작하면서 한의학 또한 인간이해를 추구하는 학문이라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인간이해를 위한 동아시아인들의 수천 년의 각고가 「동의보감」에는 새겨져 있었다. 정기신(精氣神)을 전면에 배치하여 인간이해를 위해 비물질적 측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초반부는 인간의 물질적 측면을 강조하는 서양의학과 차별화되는 한의학의 인간관을 선언하고 있다. 「동의보감」에서 언어에 대한 부분이 따로 설정되어 있는 것은, 「동의보감」을 다른 의서와 차별화 시키는 중요한 내용이라고 알고 있다. 인간 이해를 위한 언어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언어학적 인류학’을 중요한 세부분야로 설정하고 있는 인류학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 별도의 문에서 언어를 논하고 있는 「동의보감」은 놀라운 의서가 아닐 수 없다. 「동의보감」과 「동의수세보원」의 예들이 보여주듯이 한의학은 의학과 인문사회과학의 융합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할 내용이 수없이 산재해 있다.

펄스가 편집 발간한 「띵킹 위드 케이시스(Thinking with Cases)」 또한 융합이라는 화두가 강조되고 있다. 안(案, case)[예를 들면 의안(醫案)]이라는 동아시아 지식체계의 주요 방법론을 중심으로 동아시아 문화사를 재구성하고 있는 이 책은, 의학뿐만 아니라 법률, 법의학, 종교, 그리고 철학 분야를 함께 다루고 있다. 공히 안(案)을 사용하고 있는 이들 분야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맥락적 연관을 가지며 발전해 왔다는 것을 이 책은 보이고 있다. 16세기에서 19세기 사이의 의안을 조사하고 있는 펄스의 쳅터 또한 의안이 다른 분야의 안(案)들과 주고받은 영향의 관점에서 서술되고 있다.

「Thinking with Cases」에 포함된 논문들이 예시하는 “안(案)”을 끈으로 한 동아시아의 지식 전통들의 밀접한 관계들은, 한의학과 원래 융합의 관계에 있던 타학제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 문학, 철학, 역사, 종교, 법률 등은 원래 한의학과 밀접한 관계에 있었으나 지금은 조금 소원한 관계에 있다.

하지만 유의(儒醫)들이 이러한 학제들을 섭렵했다는 사실은 한의학과 이들 학제들 간의 융합 가능성을 증명한다. 「동의보감」, 「동의수세보원」 등의 의서에 이미 담지되어 있는 융합의 내용들, 그리고 인접 학문과의 융합 가능성을 살려 낼 때 한의학은, 융합이 화두로 떠오른 한국사회에서 더욱 굳건히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융합의 관점에서 바라 볼 때 한의학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함을 샤롯 펄스의 연구들은 공언하고 있다.

김태우
경희대 한의대 교수·의료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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