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1만 시간의 법칙과 한의대의 한문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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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1만 시간의 법칙과 한의대의 한문 교육
  • 승인 2013.07.11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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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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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기 왕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
국내에도 번역된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의 저서 「아웃라이어」에는 소위 ‘1만 시간의 법칙’이란 것이 등장한다. 이는 어떤 분야에서 달인이 되려면 1만 시간을 그 분야에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1만 시간이란 것은 매일 3시간씩 10년 간을 계속해야 충족되는 상당한 시간이다. 그의 주장은 대다수 독자의 긍정적 호응을 불러일으킨 듯하지만, 나는 그의 주장을 믿지 않는다. 다각도로 관찰된 실증적 사례 연구에서 이미 그렇지 않다는 것이 밝혀졌고, 노력을 강조하는 것이 가지는 부정적 가치가 적지 않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음악 분야의 경우 약 30% 정도의 음악가만이 이 법칙이 들어맞는 사례라고 하며, 설사 많은 분야에서 그의 주장이 맞다 하더라도 학습자의 노력을 강조하는 것은 자칫 교육 현장에서 학습자-교육자간의 노동 비대칭을 심화할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물론 어떤 분야에서 만족할 만한 숙련도나 능력을 보이려면 그에 도달하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 시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시간은, 그 분야가 무엇이냐에 따라 큰 차이가 나는 것 같다. 창의성이 중요한 오늘날의 교육에서 그의 주장은 그저 한 가지 참고사항으로만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학 능력 습득에는 분명 일종의 ‘임계시간’이 있는 것 같다. 내가 알고 있는 외국어 선생님 한 분은, 성인이 어떤 외국어를 배우려면 그 나라 현지에서 최소 8년간 생활해야 한다고 했다. 이렇게 지낸다면 아마 1만 시간 이상 외국어에 노출될 것이다. 재미있는 사례는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다.

오늘날 우리나라 사람들은 초중고 과정을 거치면서 보통 2500시간 정도의 영어 공부를 한다고 한다. 상당히 많은 시간이지만, 그래도 1만 시간에는 못 미치는 시간이다. 그 결과는 어떠한가? 아…, 가슴이 아파온다. 굳이 그 아픈 심정을 따로 적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어떤 사람은 ‘그래도 다들 어느 정도 영어를 하지 않는가’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런 얘기는 그저 자기위안적인 변명이거나 스스로를 속이는 위선적인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전국민이 2500시간 동안 ‘삽질’하며 청춘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필자가 굳이 시간의 절대량을 따지며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한의대의 교육에서 한문 교육을 특별히 고려해야 할 이유가 있음을 말하고자 함이다. 과거보다 조금 덜 하긴 하지만 여전히 한의대에는 매우 성적이 좋은 학생들이 입학한다. 이들 가운데는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이들도 있고 중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이들도 있다. 조금 다른 분야지만, 컴퓨터 활용 능력이 출중한 학생도 적지 않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원하면 얼마든지 이 분야의 사교육을 받을 수 있고, 아예 외국에 있다가 온 학생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분야의 학습에 대해 학교 교육에서 그 ‘임계시간’을 고려하여 교육과정을 만들 필요는 없다. 하지만 한문 교육은 다르다. 주위에서 장기간 집중적인 교육을 해 주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의대의 교육, 그러니까 공교육이 그 대책을 찾아야만 한다.

모든 한의대생이 한문 습득을 위한 임계시간의 교육을 받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 임계시간의 교육을 받은 학생이 한 명도 없다면 어찌 될 것인가. 한의학의 미래는 정말로 암담하다. 지금껏 이런 장시간의 한문 학습은 한의대의 공교육에서 거의 ‘방임’되어 있었고 관심 있는 학생 몇몇이 스스로 학습장소를 찾아다니며 부족한 부분을 채워왔다. 모두가 동일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하는 한 이 문제는 공교육에서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다시 말하지만, 모두가 한문을 잘 할 필요는 없다. 매 학년에 1명 정도, 아니 한 3개 학년에 1명 정도만 뽑아 학교에서 집중적인 한학 연수 기회를 제공할 수는 없을까. 별 교육적 효과도 없이 학기당 수 천 만원씩 집행되는 한의대의 실험실습비를 생각하면 극소수 학생에게 이 정도의 배려를 하는 것은 학교에 그렇게 큰 부담이 아닐 것이다.

전원을 대상으로 한 한문 교육시간을 줄여서라도 소수의 학생에게 제대로 된 한문 교육, 즉 ‘임계시간’을 뛰어넘는 한문 교육을 학교가 제공할 것을 제안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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