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국제아시아전통의학대회(ICTAM) 참가하는 석학들 (1) 미국 시카고대학 인류학자 주디스 파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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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국제아시아전통의학대회(ICTAM) 참가하는 석학들 (1) 미국 시카고대학 인류학자 주디스 파쿼
  • 승인 2013.06.06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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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우

김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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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증론치? 동서의 언어, 문화적 차이 넘어 성공적 의미 전달

동아시아문화와 전혀 상관없는 서양사람에게 변증론치(辨證論治)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변증론치를 제대로 이해시키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전제되어야 할 기(氣), 음양(陰陽), 오행(五行) 등의 동아시아문화에 기반한 개념들을, 어떻게 서구의 문외한에게, 그것도 영어라는 외국어를 통해서, 전달할 수 있을까?

더욱이 그 사람이 동아시아 의학을 배우는, 유럽과 미주의 전통의학대학 학생이 아닌 경우, 그러한 설명은 어떻게 가능할까? 놀랍게도 미국의 인류학자 주디스 파쿼(Judith Farquhar)는 1994년에 발표한 그녀의 책 「노잉 프렉티스」(「Knowing Practice: The Clinical Encounter of Chinese Medicine」)에서 동서의 언어, 문화적 차이를 넘어서 이러한 지난(至難)한 작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주디스 파쿼는 미국 시카고대학에 재직 중인 의료인류학자이다. 이번 9월 방한하여 산청에서 열리는 제8회 국제아시아전통의학대회(ICTAM)에서 기조발표를 하기로 되어 있다.

◇Knowing Practice
파쿼의 연구는 그 자체로 역사적인 의미를 가진다. 냉전이후 중국과 미국의 교류가 시작된 이후 중의학에 대한 본격적인 인류학적 현지조사가 그녀에 의해 최초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초반, 파쿼는 광저우 중의학대학에서 18개월 동안의 인류학적 현지조사를 진행한다. 그때의 심층연구와 이후 후속연구의 결과물이 앞에서 언급한 「Knowing Practice」 이다.

「Knowing Practice」는 서구문화가 당연히 받아들이는 서양의학과 동아시아문화에 바탕을 둔 동아시아의학을 병치시키는 비교문화의 관점을 중심에 두고 있다. 제목에서 지식(knowledge) 대신에 사용된 앎(knowing)이라는 단어 자체가 그 책의 비교문화적 관점을 천명하고 있다. 대상화된 지식이 강조되는 서양의학과 달리 동아시아 의학에서는 한의사의 몸의 경험을 통한 앎(knowing)이 중요하다는 것을, 지식에 대비되는 앎이라는 단어를 통해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Knowing Practice」의 비교문화의 관점은 철저하다. 영어로 씌여진 중의학에 관한 그 책이, 영어권 독자들에게 받아들여 질 때 야기될 수 있는 문화적 충돌을 단어 하나하나의 번역에까지 염두해 둔다. 예를 들면, 동아시아 의학에서 강조되는 ‘경험’을 영어의 experience로 번역하면서도 직역이 간과할 수 있는 동서 문화의 차이를 놓치지 않는다.

“경험은 (영어)단어 experience가 함의하는 삶에 대한 개인주의적인 네러티브보다 훨씬 역사적이고 집단적이며 담론적이다. Jingyan(經驗) is a good deal more historical, collective, and discursive than the individualistic life narratives that the word experience connotes” (p. 2).

이러한 철저한 비교문화의 관점을 통해서 쉽게 와 닿지 않을 수 있는 동아시아의학의 개념들이 서구사람들에게 성공적으로 전달되고 있다.

파쿼가 「Knowing Practice」에서 다루고 있는 개념은 기, 음양, 오행 등 동아시아의학의 기본 전제를 넘어서, 사진(四診), 팔강(八綱), 장부(臟腑), 위기영혈(衛氣營血), 육경(六經) 등의 개념들에 대한 비교문화적 해석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실제 진료 케이스들을 통해서 이러한 개념들이 어떻게 변증논치라는 체계 안에서 사용되고 있는지를 예시하고 있다. 「Knowing Practice」가 의미 있는 작업인 것은, 그 책이 동아시아의학을 공부하는 임상가만을 독자로 상정하지 않고, 서구 문화에 속한 보다 폭넓은 일반인을 독자로 상정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동아시아문화와 생면부지의 관계에 있는 서구의 문외한에게도 이 책의 접근성은 열려 있다. 또한, 파쿼의 충실한 비교문화관점 덕분으로, 책의 마지막 부분을 읽을 쯤에는, 동아시아의학의 문외한도, 동아시아의학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게 된다. 서구와 동아시아 사이에 인류학자로서의 포지션을 정하고 두 문화사이의 든든한 가교역할을 하고 있는 파쿼의 작업은, ‘세계화’가 중요한 화두로 떠오른 당대의 동아시아의학에게 중요한 작업이 아닐 수 없다.

파쿼의 책이 서구인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은, 인류학적 현지조사를 통해서 중의학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수반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지조사의 장점을 십분 활용하여 파쿼는, 동아시아의학과 서구문화를 연결시키려는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Ten Thousand Things: Nurturing Life in Contemporary Beijing
최근에는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북경중의약대학의 張其成 교수와 함께 인류학적이면서도 철학적인 공동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 張其成과 함께 발표한 「텐 다우즌 딩즈」(「Ten Thousand Things: Nurturing Life in Contemporary Beijing」(2012))에서 파쿼는 동아시아의 의학/철학 전통 위에서 당대 중국인들에 의해 다양하게 실천되고 있는 양생(養生)이라는 전통을 조명하고 있다. 베이징 사람들의 양생을 위한 몸짓 하나하나에 깃들어 있는 수천년의 전통과 의학적/철학적 바탕을 조명하면서 「Ten Thousand Things」가 펼쳐보이는 핵심 주장 중의 하나는, 전통이라는 것은 결코 과거에 고화된 형태로 존재하는 잔재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적극적으로 만들어 지고 있는 ‘살아있는 전통(living tradition)’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전통과 그 전통 속에 내재한 사유의 방식을 끊임없이 일상 속에서 소환하는 우리의 삶(生, life) 자체가 그 살아있는 전통의 증명이라는 것이다.

동아시아 전통의 생명력을 목격한 벽안의 인류학자가 산청 국제아시아전통의학대회에서 어떤 내용의 발표를 할지 궁금하다. 또한, 세계적 명성을 가진 인류학자 파쿼가, 한국 방문기간 동안 진행될 한의학 관련 발표와 임상시연, 그리고 산청엑스포 참관을 통해서 한의학에 대해서 어떤 인상을 가지고 미국으로 돌아갈지 자못 궁금하다.

김태우 / 경희대 한의대 교수·의료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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