朱丹溪, 張介賓 등 수많은 명의 배출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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朱丹溪, 張介賓 등 수많은 명의 배출 지역
  • 승인 2013.05.30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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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민

김윤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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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형상의학회 원행 동행 취재기 항저우, 샤오싱, 이우 ①
대한형상의학회(회장 최진용)는 지산 박인규 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학회 선후배들과 함께 원행을 이어가고 있다. 원행의 참 뜻은 바로 이렇다. 천지가 자연을 낳고 자연이 인간을 낳고 인간이 풍속을 만드는 과정을 살피는 일을 통해 한의학과 삶의 이치도 함께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형상의학회는 이 뜻을 되새기며 2월 23일부터 26일까지 중국 항저우, 샤오싱, 이우 등 유적지를 탐방하는 원행길에 올랐다. <편집자주>


대한형상의학회, 한의학의 뿌리를 찾아 떠난 원행
항저우(杭州), 샤오싱(紹興), 이우(義烏) 지역은 수많은 명의를 배출한 곳이다.
항저우에는 「준생팔전(遵生八箋)」을 지은 고렴(高濂), 「황제내경소문주증발미(黃帝內經素問注證發
◇탐방에 앞서 일행의 기념 촬영.
微)」와 「황제내경영추주증발미(黃帝內經靈樞注證發微)」를 지은 마시(馬蒔), 「장경자상한론(張卿子傷寒論)」으로 유명한 장수진(張遂辰), 「황제내경소문영추집주(黃帝內經素問靈樞集注)」를 지은 장지총(張志聰), 「소문직해(素問直解)」를 지은 고세식(高世??), 「상한론직해(傷寒論直解)」를 지은 장석구(張錫駒), 「관아(串雅)」와 「본초강목습유(本草綱目拾遺)」를 지은 조학민(趙學敏), 「속명의류안(續名醫類案)」을 지은 위지수(魏之琇) 등이 있었다.
샤오싱에서는 「편작심서(扁鵲心書)」를 지은 두재(竇材), 「본초발휘(本草發揮)」를 지은 서언순(徐彦純), 임진왜란 때 명의 원군으로 우리나라 땅을 밟았던 장개빈(張介賓), 「석실비록(石室秘錄)」을 지은 진사탁(陳士鐸), 「의문봉갈(醫門棒喝)」을 지은 장남(章楠) 등이 활약했었다.
그 밖에 샤오싱 밑쪽의 이우는 금원사대가로 유명한 주단계(朱丹溪) 선생이 태어난 곳이다.
이렇게 수많은 의가들이 태어나고 활약한 지역이 항저우, 샤오싱, 이우이기에 한의학의 뿌리를 찾아 옛 것의 의미를 되새기고 또 앞으로의 새로운 것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대한형상의학회의 원행 취지에 매우 부합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항저우에서의 일정이 시작되다
대한형상의학회 회원들과 항저우, 샤오싱, 이우 유적지에 대한 해설을 돕기 위해 동행한 대전대 한의대 윤창열 교수 일행은 2월 23일 낮 12시 50분 아시아나 항공 편에 몸을 싣고 약 2시간의 비행 후 항저우에 도착했다. 한국에서의 맹추위와는 달리 공항에서 나오는 순간 느끼는 따뜻하면서도 약간 더운 느낌은 우리가 남방의 타국에 도착했다는 것을 직접 몸으로 실감하게 했다.
항저우(杭州)란 도시는 저장(浙江)성의 성도로서 ‘비단의 도시’, ‘강남의 곡창’, ‘차의 고향’으로 불리고 있는데 중국의 유명한 녹차인 용정차가 바로 이곳에서 난다.
예로부터 “하늘에 천국이 있다면 땅에는 소주와 항주가 있다”라는 말이 있다. 항저우는 18세기까지만 하여도 장강 하구에서 제일 번창했던 도시이다. 이탈리아 여행가 마르코 폴로는 동방견문록에서 “항저우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반의 도시”라고 하였다. 물의 도시 쑤저우와 함께 뛰어난 절경 때문에 예로부터 ‘지상낙원’이라 불리고 있는 항저우는 좁다란 골목을 헐어버리고 현대적인 고층건물들을 즐비하게 건설했다. 지금은 공원 안에 도시가 있고 도시 안에 공원이 있는 셈이다. 현지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항저우는 중국에서 상하이, 베이징 다음으로 세 번째로 잘 사는 도시로 중국의 부자들이 많이 사는 동네라고 한다. 항저우는 5대 오월국과 남송 왕조의 도읍으로 번영한 중국의 7대 고도의 하나이며 중국문명 발상지의 하나이다.

항저우 전당강과 용정차밭
공항에서 내린 일행은 첫 번째 일정으로 ‘영은사(靈隱寺)’라는 절을 관람하기 위해 출발했다. 영은사로 가기 위해선 항저우 시내에서 벗어나 ‘전당강(錢塘江)’이라는 강을 건너가야 했다. ‘전당강’이란 이 생소한
◇杭州 공항(위), 영은사 현판.
이름의 강은 바닷물의 역류 현상으로 유명하다. 강에서 마치 바다처럼 높은 파도가 생긴다는데 어떤 때는 파도 높이가 10m가 될 때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해마다 이 지역에선 이러한 역류현상으로 인한 파도에 쓸려서 목숨을 잃는 수해 사고가 빈번하다고 하니 그 심각성을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바닷물의 역류현상이 심한 강은 세계에서 브라질의 아마존강과 전당강 이렇게 2개 밖에 없다고 하니, 한국에서는 생소하지만 세계적으로 희귀하고 유명한 강이라고 할 수 있다.
전당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지나니 번화한 항저우 시내와는 대비되는 한가로운 전원이 펼쳐졌다. 중국이 아니라 마치 우리나라 하동의 쌍계사 가는 녹차밭을 연상케 하는 풍경이었다. 가이드의 말을 들어보니 여기가 그 유명한 ‘용정차’ 재배지라고 한다. 항저우 시민들은 주말이 되면 전당강 다리건너 용정차 재배지로 차를 몰고 와서 차를 마시며 쉬었다 가는 것을 여가생활로 즐긴다고 한다. 항저우에서는 사업하는 사람들이 비지니스적인 얘기를 할 때도 이곳 용정차 재배지의 찻집에서 차를 마시면서 진행한다고 하니 지역적, 문화적 풍토가 다른점을 여기서도 느낄 수 있었다.

영은사(靈隱寺)와 비래봉(飛來峰)
용정차 재배지를 지나 얼마 안 있어 일행들은 첫 목적지인 영은사(靈隱寺)에 도착했다. 영은사는 중국불교의 선종십찰(禪宗十刹) 가운데 하나이다. 중국에서 세 번째로 큰 절이다. 역사 순으로는 두 번째로 만들어진 절이라고 한다.
윤창열 교수의 말에 따르면 동진(東晋) 326년에 인도의 승려 혜리(慧理)가 항주에 왔다가 이곳의 비래봉(飛來峰)을 보고 찬탄하기를 “此乃天竺國靈鷲山之小嶺이어늘 不知何以飛來라 佛在世日에 多爲仙靈所隱이라”(“이것은 바로 天竺國 靈鷲山의 작은 嶺(小嶺)인데 어찌 이리로 날아왔는지 모를 일이로다. 부처님이 세상에 나와 있을 때 仙靈들이 많이 隱居했다”)라고 했다는데 그 후 여기에 절을 세우고 ‘선령이 숨어 있는 곳’(仙靈所隱)이라 하여 ‘靈隱’이라고 이름 하였다고 한다.
이어 윤 교수는 영은사 이름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청대 강희제는 항저우의 아름다움에 취해 자주 항저우에 들렸다고 하는데 이곳 영은사로 사찰을 왔다가 주지 스님이 강희제에게 현판 글씨를 부탁했다고 한다. 강희제는 간 밤에 과음을 했던지 첫 글자인 영(靈)을 써야하는데 위에 비우(雨)자를 너무 크게 써서 어떻게야 할지 난감해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때 옆에 있던 신하가 황제에게 넌지시 운(云)자를 말하였고 이에 강희제도 임기응변을 발휘해 ‘구름과 숲이 훌륭하더라’ 하며 운림선사(雲林仙士)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한다.
영은사로 들어가는 입구는 한국 관광객뿐만 아니라 중국 곳곳에서 온 관광객들로 붐볐다. 절 입구를 지나 사찰로 들어가는 길 좌측으로 보이는 봉우리는 비래봉(飛來峰)이라 했다. 비래봉은 인도 승려 혜리가 왔다갔다는 데서 유래돼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비래봉에는 10~14세기경 동진시대에 만들어진 석굴조각품 330여 개가 산을 따라 조각돼 있다고 하는데 이렇게 산을 따라 불상을 조각한 이유는 비래봉은 천축에서 날아온 산이기에 또 다시 날아갈 수 있다고 보고 이를 못하게 하기 위한 기원에서 였다고 한다.
<계속>

글=김윤민 한의사
사진제공=대한형상의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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