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 입자물리학에 길을 묻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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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입자물리학에 길을 묻다 (1)
  • 승인 2013.05.23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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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선재

배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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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눈에 보는 원자론의 변천사
중국에서 황제내경과 상한론이 쓰여지던 그 시절에 조금 앞서, 지구 반대편에서는 물질의 기초가 무엇인지에 대한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탈레스는 물질의 근원은 물이라고 주장하였으며, 아낙시메네스는 공기가 응축되어 만물이 생겨났다고 믿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흙, 물, 불, 공기의 네 가지 원소가 결합하여 만물을 이루고 있다는 엠페도클레스의 4원소설을 계승발전하였으며 이 이론은 근대 이전까지 유럽인들 물질관의 근간을 이루었다. 한편 현대의 물질관과 가장 유사한 것은 데모크리토스의 원자설인데, 이 이론은 지나치게 진보적이며 관념적이었던 관계로 널리 수용되지 못하였다.

이후 원자설은 약 2000년간 부유하다가 19세기 초에야 존 달턴에 의해 구체화 된다. 모든 물질은 변하지 않고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 달턴의 원자론이었고, 이 이론으로 당시 미스터리로 남아있던 많은 화학적 현상들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달턴의 원자모형은 1897년 조셉 존 톰슨이 전자를 발견하면서 위기에 봉착한다.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물질의 최소 단위로 이해되던 원자에서 다시 전자를 분리해낼 수 있다면, 원자 내부에서 전자가 어떤 모양으로 존재하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에 톰슨은 ‘푸딩 모형’을 고안해내게 된다. 푸딩에 건포도들이 쏙쏙 박혀있듯이 원자 안에 전자들이 쏙쏙 박혀있다는 것이다. 이는 기존의 원자모형에 최소한의 수정을 가해 새롭게 밝혀진 사실을 설명하기 위한 시도였다.

톰슨의 푸딩 모형은 불과 12년만인 1909년, 그의 제자였던 어니스트 러더포드의 실험에 의해 뒤집히게 된다. 러더포드는 알파 입자를 얇은 금박에 쏠 때 소수의 알파 입자가 큰 각도를 그리며 산란되는 것을 발견하였는데, 이는 ‘원자는 균일한 밀도로 속이 가득 차있는 푸딩과 같다’는 톰슨의 모형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에 러더포드는 원자의 질량은 매우 작은 크기의 원자핵에 집중되어 있고, 전자는 마치 행성처럼 그 주위를 돌고 있다는 ‘행성 모형’을 고안해내게 된다. 그러나 이 모델 역시 그리 오래가지 못하였다. 1913년 닐스 보어는 수소가 특정한 파장의 빛만을 방출하는 것을 관찰하였고, 이에 따라 전자는 특정한 에너지 준위의 궤도만을 돌 수 있다는 ‘보어 모형’을 고안하였다.

하지만 보어의 모형 역시 다전자 원자의 스펙트럼을 설명할 수 없었고, 양자 역학이 발달하면서 현대적 원자 모형인 ‘오비탈 모형’이 고안된다.

 

현대적 원자 모형인 오비탈 모형의 개념도. ‘푸딩’이 여기에 이르기까지는 새로운 원자 모형이 제창되고 파기되는 과정의 반복이었다. 아마도 그 과정은 현재진행형일 것이다.
By haade [GFDL (http://www.gnu.org/copyleft/fdl.html) or CC-BY-SA-3.0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sa/3.0/)], via Wikimedia Commons

 

한의학, 입자물리학에 길을 묻다
달턴의 원자모형이 소개된 이래로 원자모형이 변화해 온 과정을 통찰해보면 지금까지 한의학 이론이 발전해 온 과정과 닮아있는 부분이 많으며, 또한 앞으로 한의학의 과학적 발전을 어떤 방향으로 추진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많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모든 과학이 그러하지만, 특히 입자물리학의 역사는 모델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주어진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모델을 고안하고 그에 대한 반례가 관찰될 경우 새로운 모델을 고안해 내는 작업이 역사적으로 대단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한의학 역시 마찬가지다. (적어도 아직까지) 한의학은 환자의 자각적 증상이나 임상의의 주관적 관찰을 통해 수집된 자료를 패턴화하여 얻은 모델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이와 같은 모델들을 통해 주어진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노력들은 고전 한의학 그 자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한 예로, 원자에서 전자가 분리되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톰슨이 푸딩 모형을 고안해 내었듯, 합곡에 자침하면 소화불량이 완화되는 현상 등을 설명하기 위해 어느 선학자가 오수혈이라는 설명 도구를 고안해 내었을 것이다. 현상은 현상이고 이론은 이론이다.

일각의 주장처럼 오수혈이라는 형이상학적 법칙이 합곡혈의 효과를 통해 현상으로 발현되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설사 오수혈 이론이 폐기되더라도 여전히 합곡에 침을 맞은 환자들은 소화불량이 개선됨을 경험할 것이며, 반대로 합곡에 자침했더니 소화불량이 줄어들었다고 해서 오수혈 이론이 한의학의 본질이나 반증 불가한 진리가 되는 것도 아니다. 여전히 오수혈 이론은 침의 효능을 설명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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