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 탕약은 탕약답게, 제제는 제제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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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 탕약은 탕약답게, 제제는 제제답게
  • 승인 2013.05.16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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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경

김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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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한의사라면 탕약과 제제를 두 가지 다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약의 특성을 극대화 할 수 있는 환자의 개개인의 특수성에 대한 맞춤약인 탕약을 사용하는 것은 물론이며 국가 보험체계에서 인정해주는 보편성을 갖춘 보험급여 한약제제과 함께 환자가 적은 부담으로 한약 복용을 할 수 있다면 보험적용이 안 되더라도 일반 비급여 한약제제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탕약은 탕약의 장점을, 제제는 제제의 장점을 살릴 수 있도록 두 가지의 특성을 극대화해 써야 환자의 상황에 맞춰 적재적소에 다양하게 한약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의 탕약과 제제 시스템은 제제가 탕약이 되어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탕약과 같은 효과를 내 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제제는 탕약이 될 수 없으며 되어서도 안 된다. 제제가 탕약과 같은 효과를 낸다면 탕약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제제는 제제의 장점을 살려 제대로 만들어 효과를 내주기만 하면 된다. 제제는 제제이지 짝퉁 탕약이 아니다.

무슨 이야기인가.
지금 한의사가 보험적용을 받아서 사용하는 보험한약들을 보면 하루 2첩이라는 탕약의 사용량기준으로 설정되어 있다. 하루 원약재 용량이 갈근탕은 62.64g, 가미소요산은 94g이 된다. 이는 한의사들이 품질 좋은 약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일본의 전문의약품 제제들의 갈근탕 원약재용량 18g과 가미소요산 22g에 비하면 3~5배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용량이다. 원약재 용량으로만 따지면 우리의 보험제제는 일본 전문의약품 제제의 3~5배에 이르는 높은 성분함량을 보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러니 양이 적다고 성분함량이 낮은 것은 아니다. 품질관리로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다.

더 심한 처방들도 있다. 구미강활탕은 하루 복용해야 하는 원약재 용량이 106g, 대청룡탕은 140g, 팔물탕은 160g이 된다. 용매로 추출하여 사용하는 탕약의 경우에는 원약재 용량이 많아도 전탕액의 복용량을 조절할 수 있으므로 농도가 변화할 뿐 복용에 큰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제제일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원약재 용량이 이렇게 많기 때문에 이를 추출하여 수율에 따라 건조하면 엑스제의 복용량도 많아지게 된다. 갈근탕은 62g의 생약이 엑스산이 되면 24g을 하루에 복용해야 한다. 반면 일본의 전문의약품은 18g의 생약이 3.75g의 엑스제가 된다. 3.75g의 엑스제를 복용하는 것이 편리하겠는가, 24g을 복용하는 것이 편리하겠는가. 소요산 엑스제도 일본은 4.1g이면 되는데 우리는 35g을 복용해야 한다. 160g의 팔물탕은 엑스제로 만들면 심지어 하루에 72g을 복용해야 한다. 3g씩 복용하면 24번을 퍼먹어야 한다. 약 먹다가 배불러 밥을 못 먹을 지경이다.

보험약이 도입될 무렵 한의사들은 탕제나 환산제를 사용했을 뿐 엑스제에 대해서 잘 몰랐고 써본 경험이 거의 없었으며, 보험엑스제를 탕약에 준해서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으로 생각된다. 하루 2첩의 탕약 용량을 가지고는 제대로 된 제제를 만들 수 없다. 물에 타먹는 엑스제가 그나마 최선이며 현대에 걸맞은 정제나 캡슐제 등의 제형개변을 이루기도 어렵다. 하루 72g이면 엑스제만으로도 500mg캡슐로 144개가 된다. 약 먹다가 하루해가 갈 지경이다.

하루 2첩의 용량을 설정하더라도 제제는 탕약과 동등할 수 없다. 일본에서 1985년부터 전문의약품에 대해 진행해온 표준탕제와의 비교시험은 2개 이상의 지표성분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표준탕제의 70% 이상의 성분함량을 보이면 ‘동등’하다고 인정받는다. 100%도 90%도 아니다. 70% 이상의 함량만 보이면 되었다. 이때의 동등성 비교는 표준탕제와의 같은 성분이 나오는가를 보기 위한 것이지 성분함량이 탕약과 동등한 양이냐를 보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다성분 프로파일도 마찬가지이다. 함유성분의 주요 피크가 모두 제 위치에 검출되면 동등하다고 본다. 비교하는 시료와 오리지널의 성분조성이 같은 패턴으로 기성한약서에 의한 같은 물질이냐를 보기 위한 것이지 같은 함량이냐는 동등성을 보는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제제가 탕약보다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제의 장점, 품질의 안정성, 균질성이나 복용과 휴대의 편리성 등이 있기 때문에 사용되는 것이다.

현재의 보험한약이 먹기 불편한 이유는 부형제 때문도 아니요, 단미혼합엑스제이기 때문도 아니다. 원약재 용량 자체가 많은 것이다. 관행적인 탕약의 복용량 하루 2첩을 보험 한약제제에 적용했기 때문이다. 제제가 탕약과 같기를 요구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제제다울 수 없는 이상한 약이 된 것이다. 제제가 제제답지 못하므로 국가에서 급여해주는 보험한약제제임에도 불구하고 20년 넘는 시간 동안 계속 외면당해 온 것이다. 문제는 이 용량이 20년이 넘게 계속 유지되어 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이라도 처방구성을 현실화하고 복용량을 하루 1첩으로 줄이면 해결될 수 있다. 제제를 제제답게 사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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