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기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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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가 사라진다?
  • 승인 2013.03.21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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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업

김창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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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위키칼럼 & 메타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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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인, 예비 의료인이라면 반드시 한번은 읽어보았으면 하는 책을 한 권 소개하고자 한다.

‘청진기가 사라진다’ (에릭 토플/청년의사/2012)라는 제목의 책으로 곧 우리에게 다가올 의학의 미래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

한의대에 재학중인 학생, 혹은 졸업이 그리 오래되지 않은 젊은 한의사라 가정한다면 향후 의료인으로 활동할 기간이 적게 잡아도 대략 40년은 될 것이다. 40년간 의료 환경은 얼마나 많이 어떤 모양으로 변할까?

우리는 보통 지금까지 늘 그래왔던 환경이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믿곤 한다. 전례 없는 속도로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최근 수십 년 간을 제외한다면, 인류가 겪어온 주변환경의 변화속도를 고려할 때 이런 판단은 우리 뇌 입장에선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지금의 세상은 뇌가 진화과정에서 형성해온 이런 판단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다.

지수함수적으로 전개되는 기술발전은 사회, 경제, 문화 모든 면에서 우리 삶을 빠른 속도로 변화시키고 있다. 그 중에서 의료, 의학 분야는 비교적 최근까지 급진적인 변화와 거리를 두어왔지만 조만간 큰 변화가 불어닥칠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이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들인 U-healthcare의 도래, 가부장적 의사 권위의 붕괴, 개인맞춤의학의 도래, 의사-소비자(환자) 관계의 변화 등은 사실 이미 예견되어 왔던 내용들이지만, 놀랍게도 정작 실제 의료인과 의료인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거의 자각하고 있지 못하는 이야기들이다. 사실 그닥 반갑지 않은 내용들일 게다. 기존에 누려온 낭만 가득한 기득권의 붕괴에 대한 이야기니까.

근대과학에 기반한 의학의 성공 이후 의사집단이 누려왔고, 소비자 모두가 인정해왔던 성직자와 같은 의사의 권위는 지속적으로 붕괴되어 갈 것이다. 증권가의 주식중개인이 컴퓨터로 대체되고 은행창구직원이 ATM으로 대체되었듯, 기술의 발전은 순식간에 수많은 기술자를 해체시켜버린다. 의학만은 워낙 어려워서 다를까? 의료권력을 놓치기 싫은 의사들의 바람일 뿐, IT의 발전은 모든 전문가의 권위를 무너뜨리고 민주화를 촉진한다.

의료 전문가 역시 예외일 수 없다. 특히나 지금처럼 방대한 지식더미를 머리에 구겨 넣고 배타적 정보독점과 규제의 성벽을 둘러쌓아 지켜온 이런 형태의 권위는 정보화혁명이 대체하기 좋은 대상 중 하나이다. (현재 한의사들은 기존의 양의사를 롤 모델로 삼아 배타적 독점영역 확보에 주력하며 의사권위를 높이고자 고군분투하고 있다. 물론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일이고 필요한 일이지만, 더 큰 흐름을 생각할 때 이게 궁극적인 지향점이 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선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Biomedical informatics분야의 한 권위자는 미래 의료를 크게 두 가지 키워드 - 데이터(data)와 환자 중심(patient-driven)으로 정리하였다.

이 책 역시 거의 이 두 가지 키워드로 정리되는 듯하다.

다양한 무선화기기의 발달로 인해 일상화될 개개인의 생체정보 수집, 의무전자기록(EMR)의 확산, 외에도 SNS를 포함한 다양한 영역에서의 폭발적인 의료 관련 데이터들이 의학적 의사결정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며, 의료의 중심이 배타적 독점권을 가진 의료공급자 중심에서 개개인이 능동적으로 의료정보를 활용할 수 있게 되는 환자 중심으로 넘어 가게 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한 가지 책에서 아쉬운 점은 이 책에서 데이터에 대한 부분은 ‘데이터 수집과 융합’까지만 다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감당할 수 없는 데이터 홍수 속에 의미 있는 정보를 얻기 위한 ‘분석’이 병목이 될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러한 분석을 위해서는 인포메틱스 기술(info rmatics technology), 인공지능, 네트워크 과학과 같은 분야와의 융합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는 전망이나, 이를 통해 어떤 결과물이 나타날 것인지 등에 대한 부분은 아무래도 이 책의 스콥(scope)을 벗어나는 주제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유전체에 대한 이야기도 개인 유전체 염기서열을 ‘밝히는’ 단계가 주로 언급되었고 뇌영상 기술에 대한 부분도 기능적인 mapping 단계까지만 언급되었다.

어찌됐건 변화는 시작되었고 우리는 변화의 시대에 참여할 수 밖에 없다. 외면한다고 피해갈 수 있는 흐름이 아니며 저항한다고 막을 수 있는 흐름도 아니다. 변화를 겪어야만 한다면, 미리 공부하고, 준비해서 능동적이고 도전적으로 변화에 참여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과연 의사들은 어떤 일을 하게 될 것인지, 한의사는 어떤 역할을 맞게 될 것인지, 조직적인 차원에서, 또 각각의 미래를 설계하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많은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특히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한의대생들은 부디 과거의 잣대로 미래를 설계하고 획일화된 낭만과 꿈을 꾸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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