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평화진료단 일지(上)-정경진(청년한의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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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평화진료단 일지(上)-정경진(청년한의사회장)
  • 승인 2003.06.20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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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방의료 보람 찾은 열흘간의 경험


지난 3월 미국의 공격을 시작으로 한달여 지속됐던 이라크 전쟁의 한 가운데, 한의계에서는 ‘이라크 평화진료단 범한의계 운동본부’를 발족해 현지 의료지원 및 구호활동을 펼쳤다.
세차례에 걸쳐 파견된 한의사들의 1천3백여명에 달하는 전시 진료활동은 한의계의 역할을 보여준 또 하나의 사례로서 큰 의미를 갖는다.
다음 글은 2차 진료단(5월 8~24일)으로 파견됐던 정경진 참된 의료실현 청년한의사회장이 겪은 의료체험기로 중요부분만 발췌해 싣는다. <편집자 주>


■ 5월 13일

바그다드의 첫 아침은 탱크소리로부터 시작됐다. 도로를 질주하며 건물을 흔들고 지나가는 미군 탱크의 굉음에 놀라 잠이 깼던 것이다. 숙소인 모텔의 창문너머로 보이는 이슬람 사원의 평화스럽고 아름다운 모습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우리 일행 4명은 5월8일 인천을 출발해 일본 오사카와 요르단 암만을 거쳐 나흘만인 어제 저녁 바그다드에 도착했다.

변혜진 보건의료연합간사로부터 첫날 일정을 통보받았다. 아침 일정은 진료실이 세팅되지 못한 관계로 바그다드에서 100km 떨어진 알타쉬캠프라는 쿠르드족 거주마을에 반전평화팀 소속 한상진선생과 함께 의료실태를 파악하기로 했다.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 우리 봉고차안에는 모두 6명이 타고 있었는데 차안은 건식 한증막이나 다름없었다. 입이 마르고 기진맥진해지기 시작한다. 다들 찬물을 마셔대지만 그때뿐이다. 첫날부터 이렇게 힘들어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해진다. 2시간 반만에 마을에 도착했다.

이곳 쿠르드족은 보름에 한번 한시간 정도 유프라테스강으로부터 싣고 온 물을 공급받는다고 한다. 집집마다 큰 물탱크에 물을 받아놓고 식수로 사용한다. 집주위에는 온통 더러운 물로 오염되어 있고 죽은 짐승들이 그냥 나뒹굴고 있다. 집안으로 들어가 보니 여름철 지하실에서나 맡을 수 있는 퀴퀴한 냄새가 진동친다.

이런 환경에서 살다보니 주민 대부분이 피부병과 설사병으로 고생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의료시설로는 지역 보건소가 하나 있는데 의사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근무하고 간호사 한명이 상주하면서 진료를 한다고 한다.

가지고 간 의약품(스테로이드 연고와 비타민제)을 보건소에 기증하고 오후 4시쯤 우리가 활동할 진료소에 도착했다. 진료실 세팅을 하느라 우리 일행들과 현지인 모두들 분주하게 움직였다. 우리의 진료소 소식을 벌써 들었는지 밖에는 치료받으려고 온 환자들이 북새통을 이뤘다.

5시가 넘어서야 진료를 하기 시작했는데 한방은 근골격계 질환을 위주로 환자를 보기로 했다.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환자들이 몰려와 정신이 몽롱할 정도였다. 아침부터 쿠르드족 마을 방문으로 거의 탈진상태인데다 진료세팅과 진료로 정신나간 첫날 이었다.

■ 5월 14일

진료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그리고 오후 4시부터 7시까지이며 오후 1시부터 4시까지는 점심 및 휴식시간이다.

이준혁 선생은 남자를 진료하고 나는 여자를 진료하기로 했다. 이라크에서는 남녀간의 내외가 분명하다. 젊은 아가씨들은 사진조차도 부끄러워서 찍지 않는다.

한번은 발목이 겹질러서 온 16살 된 처녀가 진료실에 왔는데 발목에 침을 놓으려고 하자 한사코 거부하는 통에 애를 먹은 적이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여의사를 원하는 눈치라고 누가 귀띔해줘 이해할 수 있었는데 다행이 침을 맞고 발목이 좋아져 어색한 분위기는 금새 사라졌다.

검은 옷으로 온몸을 휘감고 다니는 이라크 여성들, 유난히 부끄러움을 잘 타는 여성들, 하지만 사람을 대하는 친근한 눈빛과 말투는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이라크인만의 자랑이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진료는 영어로 하는데 통역이 있어서 이라크 말을 나에게 영어로 통역해 주고 다시 환자에게 이라크말로 통역해 준다.

오늘 하루에만 이준혁 선생이 60명, 내가 50명 정도 본 것 같다. 첫날이라 치료시간이 조금 더디고 너무 신중을 기한 것 같다. 특이한 환자는 별로 없었으며 대부분 허리나 무릎, 어깨가 아프다거나 전신근골격계 환자들이었다.

■ 5월 15일

양방은 김정범 선생(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과 이라크 현지의사가 진료를 하고 한방은 나와 이준혁 선생이 진료를 맡았다.

어제와는 달리 오늘은 급성 환자가 조금 있었다. 좌골신경통 때문에 울면서 들어온 환자가 있었는데 나갈 때는 웃고 나갔다. 나중에 감사의 선물과 적잖은 환대를 받았으며 식사초대까지 받았다.

그 이외에 중풍후유증, 안면경련, 급성 곽란, 급성 좌섬요통 환자 등이 있었다. 한방진료의 보람을 다시금 느낀 하루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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