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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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 승인 2012.11.01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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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성진

황보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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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움직이면 ‘얼음’이 사라진다

감독 : 김주호
출연 : 차태현, 오지호, 성동일, 신정근, 고창석, 민효린
문득 차창 너머로 바라본 거리는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들로 가득했다. 평소 주위 관찰력이 부족한 필자였기에 늦게 발견한 가을의 단풍은 매력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점차 그 더웠던 여름을 잊고, 서서히 겨울맞이 준비를 해야 하는 시기가 도래했음을 직감하게 되었다.

그러나 지난 여름에 개봉했던 영화들이 하나둘씩 안방극장으로 오면서 어쩔 수 없이 무더웠던 여름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 그 중에서도 날씨 덕을 많이 봤다고 여겨지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이하 바람사)’가 눈에 들어왔다.

최근 예능 프로그램에서 맹활약하면서 새로운 예능 아이콘으로 등극한 차태현이 처음으로 출연하는 사극인 ‘바람사’는 그동안 한국영화의 씬 스틸러로서 자리매김한 명품 조연들이 총출동한다는 점만으로도 크게 이슈가 되었다. 그로인해 490만 명이라는 관객을 동원하며 ‘도둑들’에 이어 하반기 한국영화의 흥행을 이끌기도 했다.

총명함은 타고났으나 우의정의 서자요, 잡서적에 빠져 지내던 덕무(차태현)는 얼음 독점권을 차지하려는 좌의정 조명수에 의해 아버지가 누명을 쓰게 되자 그의 뒤통수를 칠 묘안을 떠올린다.
바로 서빙고의 얼음을 통째로 털겠다는 것인데 한때 서빙고를 관리했지만 조명수 일행에 의해 파직당한 동수(오지호)와 손을 잡고 작전에 필요한 조선 제일의 고수들을 찾아 나선다. 한양 최고의 돈줄(성동일)을 물주로 잡고, 도굴 전문가(고창석), 폭탄 제조 전문가 (신정근), 변장술의 달인(송종호), 총알배송 마차꾼(김길동), 동수의 여동생이자 잠수전문가 (민효린)과 아이디어 뱅크(천보근), 유언비어의 원조(김향기)까지 조선 최고의 ‘꾼’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이게 되고, 3만정의 얼음을 훔치기 위한 본격 작전에 나서기 시작한다.

한 영화가 흥행하기 위해서는 작품성과 흥행성들이 고루 갖춰져야 하지만 개봉 당시의 운도 매우 많이 작용한다. 바로 ‘바람사’는 참기 힘든 폭염의 날씨와 ‘도둑들’의 조선시대 버전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비슷한 소재로 인해 함께 흥행에서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얼음도둑이라는 독특한 콘셉트 아래 많은 장면에서 무수한 얼음 덩어리와 맛있게 얼음을 먹는 장면 등을 보여주면서 폭염에 지친 관객들을 간접적으로나마 시원하게 해주는 역할을 했다. 영·정조 시대를 배경으로 얼음을 둘러싼 권력형 정치 비리를 주된 테마로 다루는 팩션 영화인 ‘바람사’는 약간 무거울 것 같은 내용을 퓨전 사극으로 표현하며 기존 사극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캐릭터들의 코믹 연기가 더해지면서 극적인 재미를 높이고 있다.

물론 영화의 완성도가 그리 높은 편은 아니지만 적당한 감동과 적당한 교훈, 적당한 웃음이 어우러지면서 깊이 생각할 필요 없이 편하게 볼 수 있는 오락영화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고 있다.

단, 무수히 등장하는 얼음 장면이 여름에는 너무나 시원하게 느껴졌겠지만 겨울을 준비해야 하는 지금은 그 장면들이 으슬으슬하게 느껴지는 것은 기분 탓만은 아닐 것이다. 일교차가 큰 날씨에 감기 조심하시길 기원한다. 

황보성진 / 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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