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 위키칼럼&메타블로그-사이비론(似而非論)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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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위키칼럼&메타블로그-사이비론(似而非論) (5)
  • 승인 2012.09.27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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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호

김현호

mechante@hanmail.net


(전호에 이어)

7. 그러면 어떻게?
자, 그러면 사이비 척결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필자가 제시하는 것이 유일한 답도, 가장 좋은 답인 것도 아니지만, 현재 상태에서 우리가 해볼 수 있고,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조금 모아 보았다. 이보다 더 좋은 방법도 많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사이비를 개인의 문제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위에서 누누이 이야기 했지만, 이것은 개인의 도덕성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무의식이 결정해버리는 것이다. 그 사람이 악하기 때문에 사이비가 된 것이 아니고, 멘탈이 약하고 세뇌를 당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개인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질병의 문제로 보아도 된다.

1) 돌팔이 척결
무조건 돌팔이는 척결해야 한다. 돌팔이는 ‘면허’의 여부가 결정하고, 사이비는 ‘합리’의 여부가 결정한다. 따라서 돌팔이와 사이비는 서로 포함하는 집합이 아니고, 교집합을 가지는 구조이다.
돌팔이 이면서 동시에 사이비가 가장 많은 것 같고, 돌팔이는 아닌데 사이비인 경우도 많이 있다. 사이비는 아닌데 돌팔이인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다.(중국의 한의학을 전공하고 중의사 면허를 취득했는데 한국에서 몰래 진료하는 정도?) 돌팔이를 척결하게 되면 일단 가장 문제 많은 집단이 사라지게 될 것이고, 한의사를 꼬드겨서 면허있는 사이비를 만드는 경우도 줄어들 것이라 생각한다.

2) 복사실의 분서갱유
많은 학생들의 편의를 위해 애써주신 복사실 사장님껜 정말 죄송하지만, 각 학교의 복사실은 분서갱유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온갖 사이비 잡설들이 모여 있는 곳, 그리고 그들이 계속 확대 재생산되는 곳. 헬게이트와 다름이 없다.

3) 스터디문화와 강의문화의 변화
한의대 입학해서 가장 놀란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스터디문화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서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책을 두고 서로 모르는 말을 한다. 그리고 책 한권 다 봤다고 좋아한다. 이건 뭐지? 어느 정도 그 분야에서 충분히 무르익은 사람이 아닌, 초짜들이 모여서 스터디를 하는 건 아무리 좋게 생각해봐도 이건 시간낭비다. 시간만 낭비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시간낭비 정력낭비 게다가 스스로들 대견하게 생각하며, 뭔가를 ‘알게 되었다’고 착각한다. 망상의 원동력이며, 사이비 결성의 단초를 제공한다.

학생들에게 필요한 건 스터디가 아니라 강의(lecture)이다. 인정받는 lecturer 한 분 모시면 다 해결된다. 10시간 걸려서 박터지게 토론하고 스터디하는 것 아무 의미 없다. 그냥 그 분야에서 인정받는 교수님 모시고 한 시간 들으면 간단하다. 심지어는 병원에서 레지던트들이 모여서 ‘통계학’을 두고 ‘토론’하는 것도 봤다. 이건 토론해야할 것이 아니라, 배워야 할 것이다.

한의사들은 논쟁을 참 좋아한다. 다른 말로 이야기 하면, 수평관계를 좋아하는 것이다. 이거 천부인권에 의하면 가능한 말이지만, 학문과 팩트에 있어서 평등은 없다. 내가 덜 알면 배워야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근데 자존심은 세서 잘 안 들으려 한다.

그래서 ‘논쟁’ ‘토론’ 이런 말을 잘 쓴다. 그런 건 정책 결정할 때 쓰는 것이지 의학 지식을 말할 때 쓰는 게 아니다.
그럼 강의는 누가 해야 하는가? 강의는, 교수가 해야 한다. 아니면 최소한 석·박사학위라도 받은 사람은 되어야 강단에 서서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문제를 발굴하고, 그 해결방법을 제시한 후, 합리적인 방법으로 해결을 시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제도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개개인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어쨌든 그들은 열심히 노력한 결과를 여러 타인의 심사를 거쳐 인정받은 것이다. 그 정도는 되어야 합리적인 강의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게다가 교수들은 주기적으로 논문을 쓰고 있으며, 다른 학자들과, 다른 나라의 학자들과 계속 교류한다. 꾸준히 합리를 유지할 수 있고, 최신의 정보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스터디에서 강의하는 것을 보면 가관이다. 본과 3학년생이 뭘 안다고 예과생들을 가르친다. 임상에 나온 초짜 한의사가 몇몇 케이스만 보고, 자기랑 코드가 맞는 선배들과 몇 번 케이스 토론한 것을 가지고 기고만장해서 강의를 열고 돈을 받는다. 후배들이라고 돈 안 받고 강의하는 선심 쓰는 경우도 많다. 똑같이 끔찍한 일이다. 미래를 망쳐버린다는 의미에서는 더 악질일 수도 있다.

4) 합리적 사고와 과학철학에 대한 교육
예1, 예2 때 명리, 운기, 하도낙서 등의 형이상학을 이야기해서 아직 방법론도 익히지 못한 학생들을 혼돈스럽게 하지 말고, 합리적 사고에 대한 교육과 과학철학에 대한 교육을 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한의대는 과학철학 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긴 역사 다 할 필요 없이 중요한 부분만 짚고 넘어가면, 합리적 사고, 과학적 회의주의, 과학철학 이렇게 해서 한 과목으로 싹 묶을 수 있을 것 같다. 명리와 운기, 하도낙서 등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충분히 방법론에 대한 고민을 하고 어느 정도 머리가 익었을 때 진의를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
사이비를 경계하기 위해서 과학철학과 합리의 교육을 제도권에서 꼭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솔직히 부끄럽다.

5) 개인? No! 구조? Yes!
위에서도 말했다시피, 사이비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개인의 욕심을 버리면 많은 부분 해결될 수도 있으나, 개인의 욕심을 버리라는 것은 신학대에서나 가능한 요구이지 애초에 불가능하다.
게다가 욕심이 없으면 긍정적 모티브도 없지 않은가! 다만 중요한 것은, 개인의 욕심을 자양분 삼아 피어나는 사이비들을 그때그때 정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학문체계냐 아니냐가 중요하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들을 구축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이비에 대한 강력한 제도적 제제가 필요하다. 쉬운 일은 아니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말을 안 듣는다. 사이비는 개인의 취향이 아니라 환자와 사회에 대한 범죄라고 생각해야 한다.

8. 나와 학교를 위한 변명 & 그래도 여전히
이쯤 되면 많은 분들이 필자는 왼쪽 날개 끝에 있으며 과학만능주의에다가 한의학을 무조건 현대과학의 잣대로 판단하려는 한의학의 반역자 같은 사람이라고 자칫 큰 오해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극우파의 테러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폭력을 두려워하고 쉽게 굴복하는 필자는 그래서 스스로를 위한 변명을 조금 하려 한다.

1) 한의대 내부교육부터 충실하자
필자는 과학만능주의의 숭배자가 아니다. 의서를 좋아하는 편이다. 학부 때에도 의서들을 좋아해서 무척 많이 읽었었다. 한의학이라는 어지러울 정도로 방대한 체계와 정보를 재해석하여 구조를 재구축한 허준과 이천을 존경하고, 또 모모 교수님들께서 「동의보감」과 「의학입문」을 해석하시는 방법을 무척 좋아한다.
경악이 날카로운 군인정신으로 병마와 ‘전쟁’을 벌인 작전들이 나타난 「경악전서」를 좋아하고, 간단명료하고 분명한 어조로 한의학을 종합하여 서술한 오겸의 「의종금감」을 좋아한다.
혈병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과감한 처방이 존재하는 「혈증론」과 이름부터 너무 정직하게 사이비스러워서 귀엽기까지 한 「변증기문」, 새로운 변증체계와 본초들로 새로운 질병들을 치료하고자 했던 「온병조변」, 「온열경위」, 그리고 처방과 활투에 대한, 약간은 억지스런 부분이 있지만 절묘하게 일관된 「의방집해」, 모든 것을 다 고칠 수 있다고 주장하지 않고, 스페셜리티한 분야를 개척한 「소아약증직결」(오래전 책이고, 처방 양은 별로 없지만)과 「부청주여과」. 약간은 이해하기 힘들지만 그래도 정이 가는 명대 유순의 「옥기미의」를 나는 좋아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가능하게 해준 금원사대가의 의론들을 좋아한다. 자신만의 물리학을 창조한 것 같은 「본초문답」과 앞뒤가 잘 맞지 않아 도저히 진도를 나갈 수 없는 「본경소증」을 싫어하는 편이다. 나름 절묘한 비유들을 사용하여 본초를 서술하려 했던 「본초구진」은 비유만 참고하는 책이며, 본초와 처방을 보는 방식에 많은 도움을 준 「약대론」과 「한약임상응용」은 참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모두 필자가 환자들을 치료할 때 참고하는 한의학 레퍼런스 체계이다. 어디서 이 많은 것들을 듣고 읽었냐고? 바로 학교다. 대부분 교수님들께서 원전학 시간과 의사학 시간, 각 과목들에서 강조하신 책들이고, 6년이라는 긴 시간은 이들을 마스터 할 수는 없지만, 교과서와 함께 참고서적으로 읽어볼 시간으로서는 충분하다.
한의학에 대한 대학교육이 부족하고 의미 없다고 생각하고, 그 답을 외부강의나 사이비 집단에서 찾으려고 하시는 분들, 제도권 내에서 열심히 공부해 보려는 시도는 해 보고 말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2) 합리성 충족한 한의학 갈망
필자가 다른 한의사들과 조금 다른 것은, 예전 전공이 있었으며, 그 전공이 매우 과학적이라는 것, 그리고 결정적으로 필자는 한의대 6년간을 공부하면서, 예전 전공의 합리성과, 공부하는 방식을 버리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많은 선배들이 “모든 것을 다 잊고 백지에서 시작해야 진정한 한의학을 하는 것이다”라는 그릇된 조언을 할 때, 솔직히 그동안 공부한 게 너무 아까워서 버리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너무나도 다행이다. 필자는 한의학 그 자체를 무척 좋아한다. 좋아하지 않았으면 본과 4학년 황금 같은 1년의 개인 시간을 몽땅 바쳐 InSAM을 개발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의서를 분해해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 그 안에서 한의학의 구조를 통찰해보려는 데이터마이닝을 하고 있다. 그러니까 좌파로 몰아가서 테러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필자가 한의계의 사이비에 대해 쓴 소리를 하고, 너무 강렬하다 싶을 정도의 기준을 제시하는 것도 필자가 학문적 자존심이 세기 때문이다.
즉, 한의학이 그 자체로서 무척 완전무결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해야 한다. 그 기준이 바로 합리성이 되어야 한다.

필자가 아무리 이런 글을 쓰고 사이비와 돌팔이를 비판하고 합리를 주장해도, 그래도 여전히 검증되지 않은 이론을 주장하며 자신의 이익과 존재가치만을 위한 합리화를 하는 사이비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눈과 귀를 막고 소리를 지르는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유아들과 같이 자신들의 뜻만을 관철시키기 위해 끈질기게 말꼬리를 잡을 것이고, 핍박받는 소신 있는 선지자를 사칭할 것이고, 심지어는 주류에 의해 내몰림 받는 장렬한 희생양을 자처하며 사회 곳곳에서 독버섯처럼 피어날 것이다.

오늘도 그들은 한의사들을 꼬드겨서 가르칠 것이며, 무지한 한의대생들과 한의사들은 그들을 숭배하고 그들의 이론을 재생산하여 하위구조를 착취하는 중간단계가 될 것이고, 죄 없는 환자들은 그들에게 속아 넘어가서 경제적 가치를 지불할 것이고, 정부는 그들에게 속아 여전히 펀드를 내 줄 것이다. 그리고 그럴수록 합리를 추구하는 사람들과 보편타당한 상식의 대중들에게 한의학은 점점 외면받을 것이다.

아무리 대학에서 실험하고, SCI 논문을 쓰고, 임상에서 진료를 잘 하고, 신약도 개발하고, 신의료기기를 쓰고, 국제학회에 발표해봤자 소용없다. 이런 사이비들 때문에 대중에게 외면 받는 순간, 한의학의 존재 이유는 사라진다. 환자들이 실망하고 떠나는데 한의학이 무슨 소용인가? 그러면 그때는 정말 끝이다.

 

  

김 현 호

Engineer의 합리적으로 사고하기
엔지니어, 과학적 회의주의자, 한의사
(http://www.kmwiki.net)

이 지면은 온라인상에서 한의학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심어주기 위한 ‘한의학 위키’와의 제휴로 만들어집니다. 더 많은 한의학 칼럼들이 www.kmwiki.net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의학 위키 필진으로 생각이 젊은 한의사, 한의대생 블로거들의 많은 참여를 기다립니다. 참여를 원하시면 임정태 씨 메일(julcho@naver.com)로 보내주세요.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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