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미국의사제도 조명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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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미국의사제도 조명⑤
  • 승인 2012.09.20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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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수

장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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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정골요법의사)의 역사가 시사하는 점

- 목  차 -
1. 미국의 의사제도에 대한 개론
- 미국에 존재하는 네 종류의 의사들 : MD(의사), DO(정골요법의사), DC(카이로프랙틱 의사), ND(자연요법의사), 합법적으로 Doctor를 표방할 수 있는 의사들.
2. Flexner 보고서와 미국 의학계의 혁신
-미국 의사제도의 역사에서 큰 족적을 남긴 Flexner 보고서와 그 영향
3. DO는 어떻게 MD가 되었나?

(전호에 이어)

3. D.O는 어떻게 M.D가 되었나?
앞서 말씀드렸듯이, D.O대학을 졸업하면, 의과대학 부속병원에서 인턴, 레지던트의 전문의 과정을 밟을 수 있습니다.
또한, 공식기관에서 의사 숫자를 발표하거나 의대 리스트에도 빠짐없이 D.O를 포함시켜서 말합니다. 미국 사회에서 D.O는 사실상 M.D와 동등한 지위를 누리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요? 이 점에 대해서 이해하려면, D.O의 역사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1900년 이전 D.O는 미신이나 컬트 수준으로 분류
D.O의 역사는 의사였던 Andrew Taylor Still이 1892년에 처음으로 정골요법의학(osteopa-thy medicine) 교육기관인 American School of Osteopathy를 Missouri주 Kirksville에 설립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의사들은 환자에게 비소나 위스키, 아편을 처방하던 시절이었습니다. 해부나 생리에 대한 인식도 그렇게 높다고 볼 수는 없었습니다. 하버드의대나 존스홉킨즈의대와 같은 명문대가 있었던 반면에, 전체적인 의료 수준은 낮았습니다.
Andrew Still은 기존 의학의 범주 밖에서 새로운 사고의 의술을 생각했고, 근골격계에 대한 수기치료와 수술, 약물치료를 종합한 치료를 창안했습니다. 전체적 또는 전인적 사고(holistic or ‘whole person’ approach)에서 질병에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그의 이론체계는 새롭고 혁신적이었지만, 주류 의학계에서 보면, Andrew Still이 M.D임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의학체계를 비판하고, 새로운 유파를 창안하여 분리 독립한 형국이 되었기 때문에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미국 주류의학계와 치열한 싸움을 이어가게 됩니다.
미국의사협회(AMA)는 osteopathic medicine을 미신이나 컬트(cult) 수준으로 분류하였으며, AMA는 M.D가 osteopathic medicine과 관련되는 것을 비윤리적인 행동으로 규정하였습니다.

1966년 미국 군의관에 포함, 독립된 의사로 인정
1900년대 초반에 들어서면서 양측의 다툼은 줄기차게 지속되었습니다. 1909년에는 잘 알려진 미국의 작가 마크 트웨인은 자신의 만성천식과 딸의 간질발작이 osteopathic medicine 치료에 의해서 완화된 이후, 공개적으로 osteopathic medicine를 지지하며, 주류 의사회와 대치하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Flexner 보고서가 1910년에 발표됩니다. Osteopathic medicine 대학들은 여러 차례 위기와 혼란이 있었지만, 나름대로 이를 극복해나가며, Flexner 보고서의 원칙에 맞춰서 교육과정과 체계를 개편해 갑니다. 이론적인 측면에서도 manipulation을 기반으로 하는 정골 이론과 함께 과학적 사고를 중요한 지식체계의 원칙으로 정합니다. 그리고 학제 및 교육기관의 정비도 병행하게 됩니다.
Flexner 보고서의 여파로 미국 내 의대 중에서 거의 3분의 2가 폐교되는 위기상황 속에서 일부 osteopathic medicine 대학들은 살아남아 역사를 이어가게 됩니다.
M.D와 싸우면서 1916~1966년까지 지루한 대치가 지속된 끝에, D.O를 미국 군의관에 포함하는 결정이 1966년에 이루어졌습니다.
이는 D.O의 역사에 획기적인 점을 찍은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D.O를 군의관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미국 정부가 D.O를 독립된 의사로서 인정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일이었습니다.(한국 한의사들이 군의관이나 공중보건의사로 진출한다는 사실도 국가시스템에서 의사의 counterpart로 인정받는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죠) 한참 시간이 흐른 뒤인 1996년에는 D.O 출신 군의관이 미국 국방부 의무사령관에 임명되기도 하였습니다.

그치지 않는 M.D의 공세, 통폐합 시도
그렇지만, M.D의 공세는 그치지 않았습니다. 한국 한의사의 시각에서 보면, 일종의 강제 통폐합과 같은 일원화 시도도 이어집니다.
1962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AMA의 주도로, D.O에게 간단한 세미나에 참석한 다음 65달러를 내면 M.D 면허를 부여하는 제도가 시행됩니다.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D.O 중 약 86%는 여기에 따라서 M.D 면허를 취득하였습니다.
어바인에 있는 캘리포니아주립대(University of California at Irvine)의 College of Osteopathic Medicine은 곧바로 University of California, Irvine School of Medicine으로 개명되었습니다. 삽시간에 M.D 면허를 나누어주고, 정골요법대학을 의과대학으로 개편해버립니다.(UC Irvine은 꽤 명문대에 속하죠!)
그러나 M.D 면허는 캘리포니아를 벗어날 수 없다는 단서가 달려 있었습니다. 옛날 우리나라에 있었던 限地醫師와 비슷한 개념이었습니다. 물론 미국은 주 하나가 독립된 나라와 같기 때문에 당연한 조치이긴 합니다. 이와 같은 시도를 통해서 D.O 면허를 폐지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1974년에 캘리포니아 대법원은 D.O 면허가 지속적으로 발급될 수 있다고 판결하였습니다.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미국의사협회(AMA)는 1969년 마침내 D.O도 AMA의 멤버로 가입할 수 있도록 허용하였습니다. 미국정골요법의사협회(American Osteopathic Association)는 이에 대해서 osteopathic medicine 말살정책이라고 거부 의사를 밝혔지만, 이후로 D.O는 의사로서 전문의가 되는 길을 갈 수 있는 ACGME (M.D) program과 정골요법의사로서 갈 수 있는 AOA (D.O) program 중에서 원하는 수련을 받을 수 있도록 선택할 권한이 부여되었습니다.

최근 D.O만의 독자적인 정체성 점차 약화 추세
오늘날 여전히 American Osteopathic Association은 존재하고 있지만, 거의 모든 D.O는 AMA에 가입되어 멤버십을 받고 있으며, M.D와 D.O의 차별금지 정책의 일환으로 AOA의 대표가 AMA의 입법기관에서 voting member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1892년에 D.O 대학이 설립되었고, M.D의 공격을 받으면서 스스로의 교육체계와 스타일을 정립해가면서 살아남았습니다. 1960년대에는 캘리포니아에서 M.D로의 통폐합의 시도도 있었지만, 결국 공존의 길을 걸었으며, 이후로 M.D와 동등한 지위를 얻었고, 원하면 언제든지 M.D가 될 수 있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좀 더 부연하자면, 최근에는 D.O만의 독자적인 정체성이 점차 약화되는 측면이 있다고 합니다. 여러 가지 사회분위기와 상황에 따라서 달라지겠지요? 수기요법을 제외하면, 모든 교육, 진료의 영역에서 차별화되는 부분이 약한 것이죠. 앞으로도 D.O만의 독자적인 길을 걸어가겠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는 통합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무력 진압에 의한 강제 병합은 실패했지만, M.D의 햇볕정책으로 D.O가 일원화의 길로 들어선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도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상호존중을 바탕으로 신뢰가 이루어지고 나니, 통합이 저절로 싹트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끝>

장 인 수 / 우석대학교 한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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