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 위키칼럼&메타블로그-사이비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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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위키칼럼&메타블로그-사이비론(1)
  • 승인 2012.08.30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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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호

김현호

mechante@hanmail.net


사이비론(似而非論) (1)

1. 들어가며
- 본 내용은 한의사당에서 5일간 연재한 글을 민족의학신문 지면 상황에 맞도록 수정한 것이다.
- 본 글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및 사이비 이론들은 특정 인물, 단체, 이론과 관련성이 있을 수 있다.
- 사이비 구조의 견고함을 강조하기 위해 종교 분야의 단어를 쓰는 경우가 있으나, 본 글은 전혀 종교적인 글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다.

2. 사이비가 생명을 얻기까지
사이비(fake)란,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 듯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주 다른 것”이라는 정의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 ‘그럴 듯’이라는 의미를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사이비가 처음부터 ‘그럴 듯’하지 않으면 아무도 사이비에 솔깃해 하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당장 누군가가 “우리 모두는 안드로메다에서 날아온 빙빙신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소리친다면, 아무리 속기 쉬운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를 광인 취급하고 말 것이 뻔하다. 처음부터 상식을 너무 벗어나서, ‘그럴 듯’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창조와 진화에 대한 기존의 논의들을 인용하며 그 발화의 허점을 교묘히 이용하여 자신의 구미에 맞게 조금씩 이론을 왜곡시켜서 정보를 제공하기 시작하면, 글자 그대로 ‘그럴 듯’ 해지며, ‘솔깃’ 해진다. 즉, 사이비가 지위를 얻기 위해서는 일단 소규모 대중들의 동의부터 구해야 하는데, 여기서 바로 ‘그럴 듯’이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무엇에 비추어 ‘그럴 듯’인가? 바로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 혹은 기존의 과학이론(토머스 쿤의 정상과학 정도의 지위를 가지고 있는 이론)에 비추어 그럴 듯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자신의 이론을 펼쳐서 세상을 구하고 싶은 A라는 사이비 교주(종교를 이야기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대부분 사이비의 구조는 그릇된 종교적 맹신, 즉 교조주의화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교주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A는 먼저 소규모의, 그러나 매우 적극적인 신자들이 필요할 것이다. 후에 이 신자들은 논공행상상 대부분 상부구조의 위치를 차지하며, 그들을 지지하게 되는 대중들은 대부분 하부구조를 차지하게 된다.

여기서 상부/하부구조는 마르크스의 그것과 거의 일치하며,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에서도 그 예시는 잘 나타난다. 사이비 돌팔이 집단에 홀린 대중이나 한의사들이 처음에 그들에게 갖다 바치는 돈과 정력과 시간을 생각해보라. 그들은 그것을 먹고 자라난다. 이렇듯 초기 신자들을 모집하기 위해서 A는 먼저 상식 혹은 정상과학을 말한다. 즉, 누구나 들어도 ‘오 정말 그럴 수 있구나’라는 동의를 얻기 위해서 상식을 사칭하는 것으로 작업은 시작한다.

이 단계에서 크게 두 가지 정도의 작전을 사용하는 것 같다.
첫째는, 제한된 정보를 지속적으로 반복하여 주입한다. 세상에는 수많은 case들이 있고, 그 중에는 ‘현상적으로’ 혹은 ‘결정론적으로’ A의 이론체계를 상식적으로 따르는 것 ‘처럼’ 보이는 case들도 있다. 한때 유행하였던 혈액형별 성격유형의 겉모습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A는 이 case들을 지속적으로 대상자들에게 주입한다. one case는 one case로 끝나야 하는 것이지만, 반복적이고 확정적인 어법으로 그들을 매료한다. A의 이론체계를 따르지 않는 수많은 case들에 대한 언급은 아예 하지 않는다. 점집은 족집게같이 맞춘 케이스 위주로 소문나고, 의료계로 따지자면 낫는 사람 이야기만 하는 것이다. 사람의 멘탈은 생각보다 약하다. 약간의 호의라도 생긴다면, 정보의 경중은 달라진다. 그리고 사이비는 그 호의를 거름으로 삼아 자라기 시작하고, 판단하는 사람은 어느새 A의 무한순환이론에 빠지게 된다.
둘째는, 정보를 제한함과 동시에, 대상자들의 불안을 자극하기 시작한다. 경제적 명예적 보상을 약속하는 것도 근본적으로 불안을 자극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불안을 자극하며 절망에서 구원해준다고 약속한다. 여기서의 ‘불안’은 인간정서의 근본적 ‘불안’과 ‘절망’이 아니다. 단순하다. 자본주의 경쟁사회에서 가장 큰 불안은 ‘내가 남들보다 못하지 않을까’라는 것이고 절망은 거기서 발생한다. 그리고 여기에 ‘우리만 돼’ 선민의식이 부여되면 사전작업은 절정에 달한다.

반복적 주입에 따라 A의 이론이 그럴듯해 보이기 시작하고, 기존의 정서와 과학에 비추어보아 크게 어긋나는 것 같지도 않고, 이 이론은 극히 제한된, 선택된 이들에게만 알려진 것이고, 게다가 그것이 나에게 경제적 명예적 보상을 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작업 대상자는 초기 광신자(zealot)가 된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종교의 구조화를 위해 회원들을 모으기 시작한다. 이제 A는 더 이상 ‘스스로’ 회원을 모집할 필요가 없다. 사이비 신도들은 이제 자체적으로 확대 재생산의 과정으로 들어가며, A는 자연히 상부구조의 최상층, 즉 ‘신’의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컬트적 사이비시스템이 스스로 굴러갈 수 있는 생명을 얻게 되는 시점이다.

3. 사이비가 시스템을 유지하는 방식
이제 그들이 해야 할 일은 크게 세 가지이다. 신도들의 믿음을 공고히 하는 것과, 이탈자를 처단하는 것과, 상식과 정상과학의 공격에 대해 방어논리를 구축하는 것이다. 물론 그 방어논리의 핵심(core)에는 논리가 아니라 맹목이 자리하고 있지만 말이다. 그들이 주로 사용하는 가짜논리는 다음 절에서 자세히 언급할 것이고, 본 절에서는 앞의 두 가지에 대한 부연설명을 하려 한다.

신도들의 믿음을 공고히 하는 것은 사전작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속적으로 정보를 제한하는 것이며, A의 이론대로 해서 성공한 케이스(물론 이것도 왜곡된 경우가 많다)를 보여주는 것이다. 어디서 많이 보던 과정 아닌가? 거마대학생들이 다단계 사업에 빠지는 것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
그리고 슬슬 여기서 A의 논리에 있는 근본적 허점(상식을 사칭해서 생기는 태생적 간극)을 메우기 위해 교주의 초감각적지각(ESP, 일명 초능력)능력을 드러내며, 믿음을 강조하기 시작한다. 신격화를 했으니, 신의 능력과 권위 - 초능력과 믿음 - 를 가져다 써야 할 것이 아닌가. 이쯤 되면 신도들은 A를 부정할 수 없다. 그는 신이다. 물론 보는 눈들이 있어서 공공연히 신이라고 말하진 않는다. 대신 ‘스승님’ ‘선생님’ ‘은사님’ ‘그 분’ 등의 단어를 써서 포장한다. 무슨 ‘그 분’인가?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자, 볼드모트쯤 되나? 물론 해악을 끼치는 정도로 본다면 볼드모트급은 되겠다. 신을 부정하는 것은 곧 죽음(생물적, 사회적, 철학적, 경제적 죽음)을 뜻한다.
불쌍한 한의사들은 여기에 학문적 죽음의 공포도 더 짊어져야 한다. 이 정도까지 이르게 되면 그들의 불안과 절망은 위에서 말한 한낱 저급한 자본주의의 불안과 절망이 아니다. 이제 비로소 쇠뢴 키에르케고르의 원죄, 즉 신에 대한 불신과 무지에 기초한 ‘불안’과 ‘절망’에 도달한 것이다. 그리고 키에르케고르는 그 불안과 절망이 바로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하였다.

두 번째는 이탈자를 처단하는 것이다. 가끔 꿈에서 깨어나거나, 다른 정보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거나, 시스템 밖에 속한 보다 강력한 선의의 친구가 끌고 나오거나, 아니면 최소한 자기 머리 속에 있는 1kg 남짓한 원래 생각하라고 만들어 놓은 그 백질과 회백질의 물질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남아있는 사람이라면, 이탈하는 경우가 있다.
사이비들의 이탈자 처단 방법은 살인으로 끝을 맺는 경우가 가끔 있어서 영화의 소재로 채택되거나 한동안 인간 이성의 나약함을 한탄하는 소재가 되기도 하지만, 우리 학계의 사이비들은 아직 그 정도는 아닌 듯하다. 폭력으로 이탈을 방지하는 경우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 게 있다고까지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되면 그건 사이비집단이 아니라 사이비 범죄집단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이탈자들은 자신이 이탈자라는 것을 숨기며 산다. 사이비에 빠져있는 기간이 길면 길수록 더 그렇다. 이건 처단당할 것이 불안해서라기보다는 그냥, ‘부끄럽기’ 때문이다. <다음 호 계속>

 

 

 

 

김 현 호
Engineer의 합리적으로 사고하기
엔지니어, 과학적 회의주의자, 한의사
 (http://www.kmwiki.net)

이 지면은 온라인상에서 한의학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심어주기 위한 ‘한의학 위키’와의 제휴로 만들어집니다. 더 많은 한의학 칼럼들이 www.kmwiki.net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의학 위키 필진으로 생각이 젊은 한의사, 한의대생 블로거들의 많은 참여를 기다립니다. 참여를 원하시면 임정태 씨 메일(julcho@naver.com)로 보내주세요.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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