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한약과 약리학적 효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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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한약과 약리학적 효능
  • 승인 2012.07.26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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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경

김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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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윤 경
진료실에서 한의사에게 환자가 묻는다. “원장님, 이 약을 먹으면 어떤 효과가 있습니까?” 한의사가 “간신음허(肝腎陰虛)로 허화상염(虛火上炎)이 있으셔서 간신(肝腎)을 자보(滋補)하는 약을 써야 합니다”라고 하면, 환자가 “네, 그렇군요”하고 한약의 효능을 이해하고 복용하게 될까?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이해할 수 있는 현대의 언어로 설명해 주기를 원한다.

오죽하면 중의대를 졸업하고 중의사 면허를 취득한 어느 분에게 “중국 유학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우리가 문헌에서 어렵게 배우는 발한해표, 이수소종 같은 용어가 중국에서는 일상용어더라”고 했을까. 마치 “미국 가니까 길거리의 거지도 영어를 쓰더라”같은 말이지만, 한약의 현실을 고려하면 그분은 실제로 그것이 가장 감명 깊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현대인에게 한약을 이해시키기 위해 현대의 한의사들은 한의사가 이해하고 있는 한약의 주치효능을 약리학적 효능으로 풀어서 설명해준다. 육미지황탕이라면 “이 약은 면역기능을 증강해주고 신장기능 저하 개선과 조직손상을 완화시키는 효과와 항당뇨 효과가 있어서 당뇨병이나 신장염 환자에게 많이 쓰입니다. 요통을 개선하고 당뇨병 환자에게서 각막장애를 개선시킨다는 임상시험결과도 있으니 환자분 증상에 적합합니다.” 구체적 기전을 언급한 학술적 표현은 아니겠지만, 환자에게는 위의 한의학적 주치효능보다 이해하기 쉽다.

한의학이 1964년 대학교육에 편입된 이후 지금까지 위와 같은 한약의 현대화를 위해 노력해 왔다. 육미지황탕의 면역반응, 신기능과 aldosterone, 신조직 병변, 고혈압과 renin활성화에 미치는 영향, 항산화작용, 골다공증 치료 작용 등등이 모두 한의대에서 나온 논문들이다.

그러나 육미지황탕의 이런 효능을 근거로 임상시험을 하게 되면 어떨까. 고혈압이나 신장염, 당뇨병 환자에게 임상시험을 하여 치료효능이 입증되면 이것은 한약의 효능을 입증한 것일까, 의약품 후보를 발굴한 것일까.
나아가 육미지황탕 중 한 가지 약재 또는 성분의 역할을 입증하면 이건 한약재가 아닌 생약의 효능일까. 천연물과학의 성과일까. 우차신기환처럼 한의사가 비슷하지만 더 효과 좋은 신규배합을 찾아내면 어떻게 될까. 이 조성은 기성 한약서에 수재된 것이 아닌데 한약일까, 아닐까.

개원 한의사로부터 입수한 임상정보와 신규 처방을 토대로 각종 실험과 임상시험을 수행하여 약재 6개, 또는 12개로 이루어진 관절염 치료제를 개발하면 이것은 한약일까 천연물신약일까. 정보를 제공한 한의사가 쓸 수 있을까 없을까. 과연 한의사가 한약을 현대화, 과학화하려는 노력은 인정받을 수 있을까.

서구의 전통의학인 Naturopathic Medicine의 doctor들은 자신들이 쓰는 전통약재인 St. John’s wort(요한초), Black cohosh(서양 승마)같은 약의 효능을 약리학적으로 풀어낸다. 그들은 한의학처럼 기미론, 귀경론, 주치효능 등의 별도 전통약리 이론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약리학적 효능으로 설명하고 입증하고 제품을 만들었다고 해서 전통의학인 보완대체의학이 아닌 정통의학(Conventional Medicine)의 약으로 바로 편입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현재 한약을 의약품으로 개발하는 과정에서 전통 한약서에 기재되었다는 것을 근거로 임상 1상시험이나 독성시험 일부 등이 면제된다. 이 약을 한의사들이 쓴다면 문제가 없다. 한의사들은 한의서가 기반하고 있는 한의학적인 약리이론과 사용례 등을 다 배웠기 때문이다. 평균적인 한의사들은 그 약재의 기미, 귀경, 주치효능을 잘 알고 적응증, 금기사항, 어떤 약과 사용하면 효능의 상승작용을 기대할 수 있을지, 어떤 약들과 병용을 피해야 할지를 알고 있다.

일례로 한의사는 마황이 주재료인 의약품을 보면, label에 적혀 있지 않더라도 고혈압 환자나, 불면증 환자, 불안신경증 환자 등의 양(陽)이 항진된 환자에게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의사들의 경우라면 어떨까? 마황이 널리 사용되고 고혈압 환자나, 불면증 환자에게서 부작용이 발생해 근거를 제공하기 전에, 마황이 이러한 환자들에게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유추하고 예방할 수 있을까? 유감스럽지만 현실적으로 그렇지 못했다.

의사들이 한약에 기반한 의약품으로 의약품 개발의 모든 과정을 거치지 않은 의약품을 사용하려면, 자료제출 면제받은 근거가 된 한약서의 내용을 알고 있다는 전제하에서만 가능하다.
견우자를 주재료로 하여 안전성 유효성 자료 일부를 면제받은 천연물신약이 있다면, 한의약에서는 견우자가 사하작용이 강하여 장의 연동운동을 촉진하지만, 독성이 있는 약재로 다량을 사용할 때는 신중해야 하며, 소화기가 허약한 사람의 비만(   滿)증상(소화불량증)에는 복용을 금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전문인인 한의사가 그 약을 사용해야 한다.

그것이 전통적인 한약의 사용경험을 활용할 수 있는 길이다. 그렇지 못한 의사들이 견우자를 모든 기능성 소화불량증에 사용한다면, 부작용을 예방할 수 없을 것이며, 국민건강에 위해가 되는 일이다.

중국의 논문(西醫開具中成藥處方存在的問題分析, 臨床合理用藥, 2010.3(13), p61)을 보면 2006∼2008년 사이의 한 병원의 중성약 처방 1만 3천265건을 대상으로 정확성, 배오금기사항, 복용량, 복용기간 등을 분석한 결과, 서의사가 한약의 효능을 이해하지 못해 적응증이 맞지 않는데 사용하거나 변증진단에 의하지 않고 사용해 부작용이 발생하는 등의 처방 부적합률이 41.3%였다고 한다. 중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많은 의과대학에서 서의들이 기초적인 중의학 과목을 이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한약을 현대화하여 과학적으로 연구개발한 의약품은 한약의 전통적인 약리와 함께 현대약리학적인 내용을 다 교육받고 임상에서도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체계(KCD)의 진단코드를 사용하는 한의사가 사용하는 것이 국민건강을 보호하는 일이다.

김윤경/원광대 한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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