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 위키칼럼 & 메타블로그-측정·사정·평가와 진단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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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위키칼럼 & 메타블로그-측정·사정·평가와 진단에 대한 단상
  • 승인 2012.07.26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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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호

김현호

mechante@hanmail.net


검사는 평가, 진단은 의사의 몫

평가와 진단의 차이는?
일반적으로 평가(evaluation)라는 것은 어떤 대상에 대한 가치를 판단하는 것이며, 관련된 용어로는 측정(measurement)이 있고, 사정(assessment)이 있습니다.
측정은 정말 low-level에서 기계, 기구, 센서 등을 사용하여 물리량을 측정하는 것이고, 사정이라는 것은 정보를 수집하여 종합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그리고 평가라는 것은, 이렇게 수집·종합된 정보를 기반으로 환자(혹은 측정대상)에 대해 판단을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의 체중과 키를 측정해보았더니, 100kg에 170cm가 나왔습니다. 이 과정은 측정(measurement)이 됩니다. 그리고 그 정보들을 종합해서 BMI를 계산하는 과정은 사정(assessment)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이미 알려져 있거나, 임상적으로 합의(consensus)가 있는 기준에 의거하여, “당신의 체중과 신장은 당신 나이대의 평균적인 분포를 몇 %정도 벗어나 있기 때문에, 비만 혹은 성인병의 위험이 있을 수 있습니다”까지 판단하여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평가(evaluation)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모든 정보를 모아서, 그 사람에게 “당신은 BMI 상으로는 비만에 속하지만, 체지방량이 현저히 적고 근육량이 많기 때문에, 비만 혹은 성인병의 범주와는 거리가 멉니다. 그러므로 의사로서 저는 당신을 비만인으로 분류하지 않습니다”라는 것이 진단(Diagnosis)입니다.
“BMI 상으로는 정상체중이지만, 체지방량의 분포를 보았을 때 당신은 언제든지 비만 혹은 성인병의 위험이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당신을 비만위험군으로 분류합니다”도 진단이 될 수 있겠습니다. 진단을 위해서는 생리와 병리에 관한 전반적인 지식이 필요함은 당연합니다. ‘斷’이라는 한자를 사용한 것에 그 의미가 집중적으로 함축되어 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더 들어보겠습니다. 맥진기로 부맥과 침맥을 구분하는 것은 평가입니다. 그러나 그 맥진기가 output으로 ‘상한’이라는 단어를 내어놓으면 그것은 진단입니다.
Brain MRI를 찍었더니 일부에서 고음영이 보이고, 기계가 그곳을 highlight 해줍니다. 이것은 평가입니다. 그러나 이 기계가 ‘cerebral infarction’이라는 단어를 쓰게 되면, 그것은 진단이 되는 것입니다.
EKG를 찍었더니 ‘normal sinus rhythm’이 나오면 이것은 평가이며, ‘warning! AMI’라고 나오면 이것은 진단입니다. 환자가 와서 망문문절을 하고 설문지를 작성하게 합니다. 이것은 평가입니다. 이 데이터를 가지고 최종적으로 ‘식적유상한’으로 판단합니다. 이것은 진단입니다. 환자의 체형을 재고 그래프를 그려봅니다. 이것은 평가입니다. 그리고 다른 데이터와 함께 최종적으로 ‘소음인’으로 판단합니다. 이것은 진단입니다.

더듬어 찾느냐, 원하는 것을 찾느냐의 차이
앞의 측정-사정-평가에 이르는 일련의 프로시저는, 매우 객관적이고 수치화된 데이터를 사용하는, 논리적인 과정입니다. 그러나 진단이라는 프로시저는, 측정-사정-평가에서 얻은 데이터를 사용하지만, 그 중 필요한 것들을 취사·선택하고, 가중치를 부여하며, 매우 비선형적으로(주관적이라는 것이 아니고) 정보를 통합(integration)하여 의미 있는 결과를 끌어냅니다. 이미 알려져 있는 순서대로의 논리연산이 아니라, 매우 복잡한 과정(굳이 데이터마이닝 기법으로 보면 신경망 분석정도?)을 통해 결론에 이르는 과정을 이야기 합니다.
이는 모(摸)와 탐(探)의 차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모색은, 더듬어서 찾는 것입니다. 불이 완전히 꺼진 곳에서 굴러가버린 동전을 찾는 것입니다. 찾으려면, 방구석부터 시작하여 대각선 구석까지 모든 부분을 더듬어서 찾아야 합니다. 윈도우에서 원하는 파일을 찾을 때, search 기능을 사용하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혀 알지 못하는 대상의 이곳저곳을 측정-사정-평가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탐색은, 윈도우 탐색기를 이용하여 내가 원하는 파일을 찾는 행동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기존의 모든 지식을 동원하여, 내가 가고자 하는 곳, 내가 얻고자 하는 정보가 있는 곳으로 몰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 과정 중에는 특히 ‘내가 저것을 제대로 알고 있는가’라는 인지과학의 주요한 물음, 즉 상위인지 혹은 초인지(metacogni-tion)가 주요하게 사용됩니다. 이 경우에는 모색에 비해 훨씬 빠르게 정보에 접근 할 수 있으나, metacognition상의 물음을 제대로 답할 수 없는 경우에는 길을 잃고 wande-ring하다가 엉뚱한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부분 임상의들은 이런 차이들을 인지하지 않고 있으며, 사실 굳이 인지하지 않아도 됩니다. (한)의사들이 환자들을 진료하기 시작할 때부터 위의 과정들이 복합적으로 그리고 매우 빠르게 일어나서 진단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기를 만들고 진단기법을 연구하는 입장에서는 구분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사의 Primary opinion과 편차가 적어야 훌륭한 진단기기
양방에서 사용하는 의학적 검사들은 거의 모두 평가에서 끝나 있고, 진단의 부분은 고스란히 의사의 몫으로 남겨둡니다. 가끔 의료기기에 부가가치를 더 매기기 위해서 진단을 흉내 내는 경우도 많으나, 이 경우에도 false positive의 가능성을 높이면서까지도 민감도를 엄청 높이거나, “∼가능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문제가 발생할 여지를 없앱니다.

그래서 의사들은 진단기기의 auto-interpretation을 거의 믿지 않습니다. 그리고 의료기기 역시 저런 자동판독의 부분보다는 실측값을 얼마나 정확하게 측정·가공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춥니다. 물론 양방의 진단 중에는 integration이 특별히 필요 없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이런 경우는 사실 평가와 진단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한의학은 조금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한의학의 변증은 주어진 일련의 알고리즘을 통해서 기계적으로 산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의료기기들이 이런 복잡한 변증까지 가기 위해서는, 결국 한의사의 사고를 흉내 낼 수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인공지능의 초인지에 관한 연구도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요?
아무리 뉴럴 네트워크니 AI니 프랙탈이니 해도, 인간의 integration을 쉽게 흉내 내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진단기기란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 아니냐? 말씀하실 수도 있는데, 그것 역시 아닙니다. 다만 그것을 어디까지 신뢰할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기계의 product는 어디까지나 ‘secondary opinion’입니다. 이 의견은 인간이 실수로 빼먹는 부분이나, 인간이기 때문에 보지 못하고, 재지 못하는 부분들을 도와주는 의견이라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이러한 secondary opinion이, 의사가 직접 판단한 primary opinion과 편차를 많이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이것을 훌륭한 진단기계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는, 위에서 말씀드린대로 한의사의 사고과정을 잘 구현하거나 혹은 그에 상응하는 정도의 알고리즘을 구현해 내야 하는데, 그게 정말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제가 진단기기보다는 평가기기에 관심이 있는 이유는 저러한 사고과정을 구현할만한 아이디어를 가질만한 내공이 아직은 모자라기 때문에 한 급수 아래인 평가도구들을 잘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열심히 하다보면 진단에 대한 아이디어들이 나올 수도 있겠죠?

 

 

김현호
Engineer의 합리적으로 사고하기
엔지니어, 과학적 회의주의자, 한의사
 (http:www.kmwiki.net)

 

이 지면은 온라인상에서 한의학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심어주기 위한 ‘한의학 위키’와의 제휴로 만들어집니다. 더 많은 한의학 칼럼들이 www.kmwiki.net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의학 위키 필진으로 생각이 젊은 한의사, 한의대생 블로거들의 많은 참여를 기다립니다. 참여를 원하시면 임정태 씨 메일(julcho@naver.com)로 보내주세요.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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