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한의약의 포지셔닝, 한의사의 포지셔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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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한의약의 포지셔닝, 한의사의 포지셔닝
  • 승인 2012.05.10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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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경

김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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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한의약은 비주류의학으로서 소수의 한의사가 주류의학인 양의학에서 치료하지 못하거나 포기한 환자들을 치료하는 4차 의료기관의 역할을 해왔다고 말한다. 다행히 한의약의 치료수단들이 우수하며 효과가 좋은 편이기 때문에 실제 양의학에서 치료하지 못하는 것을 치료하여 전성기를 누렸으며, 지금까지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 결과 한의약은 과학적이지는 않지만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효과를 발휘하는 것으로 인식되기도 했으며, 환자들은 한의사는 양의사가 치료하지 못하는 것도 치료하는 사람으로 침 한방에 효과를 나타내거나 약 한 제 또는 한 첩에 마법과 같은 효과를 낸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이 당시 한의약으로 치료할 수 있는 분야는 크게 나누면 양의학으로 치료할 수 없는 아토피 천식 등 난치성질환분야와 양의학의 치료대상이 아니었던, 보약으로 대표되는 수험생약, 항노화, 정력제, 비만치료 등 QoL(삶의 질)의약들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전성기를 구가하는 동안 양의학도 예전 수준에 그냥 머물러 있지만은 않았다. 양방병원에서 해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아 한방병원을 가득 채웠던 중풍환자들도 치료법을 개발하여 양방응급실로 돌아오게 하였고, 난치성질환들도 치료가 아닌 관리개념으로 환자를 장기간 케어하는 방법을 개발하였으며, 생명에 영향이 없다고 관심을 갖지 않았던 QoL질환들도 비아그라, 제니칼 등 새로운 약물을 개발하여 양의학의 치료영역으로 다시 흡수해 갔다.

반면, 우리는 전성기에 무엇을 했는가? 기존 인식에 기대어 과실을 따먹기만 했다. 얻은 수익을 재투자하여 변화를 선도하거나 대중적인 새로운 제품을 만들지 못했다. 한의약의 효능을 입증해 완성도 높은 논문으로 발표하여 학문화하지 못했으며, 한의약에 대한 환자들의 관심이 늘어난 만큼 한의치료의 영역을 확장하지도 못하고, 가격 등 치료의 선택범위를 넓혀 주지도 못해 환자들이 건강기능식품 시장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방관했다. 그리고 그 시기에 한의대 정원 증가로 급격한 한의사 수의 증가가 있었다. 시장은 줄어들었는데 한의사 수는 많아졌으니 레드오션에서 피 튀기는 내부경쟁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이제는 과거와 같은 포지셔닝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양의사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잘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질환에서는 한의치료에 관심이 없으며, 자신들이 못하는 질환에서 한의약이 어떤 효과를 보이는지 관심을 가질 뿐이다. 그리고 나서는 보완대체의학으로 한의학을 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한의학적 개념과 치료법들을 흡수한 통합의학으로 발전해 가며 한의약시장을 잠식해 오고 있다.

양의학의 발전결과는? 한의약 시장의 위축이다. 이제는 더 이상 우리가 양의학이 커버하지 못하는 부분만을 다루어서는 안 되며, 양의학이 이미 우리의 영역을 잠식해 들어와 같은 질환에서 양의학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어야 한다. 즉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을 해야 한다. 다수의 한의사와 한의원들은 한의약의 장점인 전인적인 관점의 일반의 수준에서 대중적인 1차 의료를 하면서 양의사와 경쟁해야 하며, 한방병원 등 2·3차 의료기관은 난치병 만성병 위주로 치료지침이 세분화된 엄밀한 치료를 하고 특화한의원들도 제대로 된 전문화로 포지셔닝해서 양의사와 경쟁해야 한다.

양의학과 상호 경쟁관계에서는 통합의학처럼 주도적으로 양의학을 흡수하면서라도 과학적 데이터로 우월성을 주장할 각오를 해야 한다. 그게 어렵다면, 어차피 의료체계가 공존하고 환자가 이미 양의학을 주로 이용하는 상황에서 양의학 영역으로 들어가 한의약에 대한 환자의 접근도를 높이기 위해서라도 각 의료의 장점을 살려 상호 공동으로 발전할 수 있는 협진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한약도 마찬가지이다. 한약의 효능을 연구하고 비교우월성을 부각시켜야 하지만, 어차피 만성질환에서 양약과 병용 투여되는 경우가 많다면, 한약을 보조치료제로 포지셔닝해서 양약을 복용하는 환자도 한약치료를 받을 수 있게끔 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필요하다.

의사 입장에서 한약이 양약의 효능에 영향을 미칠까 염려하는 한·양약 병용투여 연구가 아니라, 한의사 입장에서 양약복용 환자도 한약복용에 문제가 없도록 하는 병용투여 연구가 필요하다.
최근 의학연구에서 ‘중개연구(translational research)’라는 용어가 대두되었는데, 실험실에서 나온 신약후보들이 안전성이나 흡수 등의 문제로 제품화되지 못하는 일이 많자 실제 환자에게 사용될 수 있도록 의사와 기초과학자가 협력하여 임상현실을 반영해 연구하는 방법이다.

한약의 경우에도 실제 한·양방 공존의 임상현실을 반영하여 새로운 한약제제를 개발하거나 기성제제를 마케팅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당뇨병 환자가 메트포르민제제를 복용하면서 변증을 나눠 한약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식으로 두 의학이 공존하며 협진 할 수 있도록 말이다.
학문은 역수행주(逆水行舟)와 같아서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뒤처진다고 하였다. 우리는 지금 바뀐 상황에 맞춰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에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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