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 ‘Korean Medicine’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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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 ‘Korean Medicine’ 유감
  • 승인 2012.04.19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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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왕

김기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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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왕(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

 

조금 지난 일이지만, 지난 달 한의사협회 대의원총회에서 한의학의 공식 영문명칭을 ‘Korean Medicine’으로 정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의계에서는 새로운 명칭에 관해 아직 주목할 만한 반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 같다.(오히려 갖가지 비평들은 한의계 바깥에서 나오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명칭 변경은 이미 대세인 것 같고, 조만간 되돌릴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필자에게 의견을 묻는다면, 이는 “결단코 받아들일 수 없는” 명칭이라 답할 것이다. 왜 그러한가? 간단하다. 명칭 자체가 거짓이기 때문이다. 정직하지 못 하기 때문이다.

사상의학, 사암침법, 그리고 행간을 읽어내야만 밝힐 수 있는 「동의보감」의 독특성…. 이런 것만으로 우리의 전통의학이 중국의 전통의학과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오늘, 나의 문제제기는 이러한 매우 기초적이고 단순한 사실에서 출발한다. 시대 흐름이고 발전전략이고 이런 복잡한 이야기들, 필자는 잘 모르겠다. 누가 뭐라 해도 거짓인 것을 진실인 듯 붙들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언론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명칭 개정의 배경을 살펴보니 전통의학의 국가별 브랜드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한국 한의학의 독자적인 브랜드화가 시급하다는 주장을 찾아볼 수 있었다. 이런 이야기는 근래 국내 문화계에서 자주 내세우고 있는 한류(韓流)란 말을 연상하게 한다.

현실에서 의학이란 지식체계는 분명 의료문화라는 문화적 외피(外皮)를 일정 정도 두르고 있을 수밖에 없겠으나, 과연 그런 문화의 외피가 수출의 주력이어야 할까? 과연 우리는 문화를 팔아야 할까 아니면 과학과 기술을 팔아야 할까? 우리가 힘써야 할 것은 이리 해도 되고 저리 해도 되는 한 가지 기호(嗜好)의 수출일까, 아니면 꼭 그리 해야만 하는 인과율의 전파일까. 게다가 궁극적인 견지에서도 한의학은 내다 팔 수 있는 ‘우리 것’이기만 해야 할까? 어쩌면 외국인이 더 잘 발전시킬 수 있는, 인류 전체의 학문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조금 양보하여 현 단계에서 수출의 중심이 ‘우리 것’이어야 하더라도 그 핵심이 과학과 기술이라면 그 수출품의 명칭은 그 과학기술의 내용에 걸맞은 것이어야 할 것이다.

또한 한 걸음 더 현실에 다가와 생각해 보더라도, 과연 우리를 위협하는 경쟁상대가 외국의 전통의학일까? 누구든 우리의 가장 버거운 상대, 그리고 현실적으로 한의사의 영업 이익을 가장 크게 좌우하는 상대, 게다가 끝까지 경쟁해야 할 최후의 상대가 현대의학임을 잘 알 것이다.

오늘날 현대의학의 발전 추세를 보면, 전 세계의 전통의학이 똘똘 뭉쳐 대항한다 해도 그와 대등한 경쟁력을 갖추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각국의 전통의학자들은 자국의 독립성만을 점점 더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선의의 경쟁이야 많을수록 좋다지만 의견을 모으고 힘을 합쳐야 할 곳에서도 자국의 입장만을 고수하려 하고 있다.

지금의 상황이 혹시 물밀듯한 외세의 동점(東漸)에도 정파 간의 경쟁에만 힘을 쏟던 과거 우리의 모습은 아닐지. 그것이 아니라면 혹시 전통의학의 과학으로서의 가능성을 아예 포기하고 形骸化된 문화로서의 상품성만을 지키려 하는 생각은 아닌지. 코리안 메디신이란 한의학의 새 영문 명칭을 접하며 느껴지는 갖가지 부정적 생각들이다.

서두에 적었듯 필자의 의견은 그저 지면 한 구석의 작은 목소리로 묻혀버릴 것이고, 코리안 메디신의 대세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한의학을 좋아하는 사람 중에 코리안 메디신이란 명칭에 담긴 부정직성에 안타까워하는 사람 역시 없지 않다는 것을 적어도 역사의 한 구석에는 새겨두고 싶다.

※ 외부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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