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스테시스와 한의학(1)- 1. 알로스테시스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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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로스테시스와 한의학(1)- 1. 알로스테시스란 무엇인가?
  • 승인 2012.03.29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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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승

최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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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로스테시스는 항상성에 대한 개념의 확장

필자를 비롯한 몇몇 동료들은 정신신경면역학의 스트레스(stress)와 알로스테시스(allostasis) 개념이 한의학과 관련성이 크고, 이러한 관련성이 바로 실험적으로 연계할 수도 있는 정도의 현실성도 가지고 있어 다른 분야(시스템 바이올로지, 바이오 인포메틱스, 복잡계이론 등)보다 먼저 국내 한의계에 소개되는 것이 시급하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의계에 이 분야를 소개하고 강조하는 그룹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하여, 저희 그룹에서라도 미약한 지식이나마 한의계와 같이 공유하고, 좀 더 심도 깊은 논의를 모색해보고자 아래와 같은 순서로 게재하고자 합니다. <필자 주>

<글 싣는 순서>
1. 알로스테시스란 무엇인가?
2. 스트레스 반응이 알로스테시스 과부하로
3. 알로스테시스 과부하의 4가지 시나리오

4. 알로스테시스와 자가면역질환
5. 알로스테시스와 대사증후군
6. 알로스테시스와 수면장애
7. 알로스테시스와 무월경
8. 스트레스와 병인론
9. 한방치료는 어디에 개입하는가?
10. 체질을 생각해보다
11. 감초의 재발견
12. 마무리 제언

베르나르의 생리학

“내부 환경(milieu interieur)의 항상성(constancy)이야말로 자유롭고 독립적인 존재의 조건이다.” - 클로드 베르나르, 1878년

실험생리학자 클로드 베르나르(Claude Bernard, 1813∼1878)는 의학과 생물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실험의학방법서설」에서 그는 의학이 다른 과학과 마찬가지로 실험적 방법에 의해 성립될 수 있음을 주장하였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시 여기는 실험이라는 방법론을 주장하는 일이 그렇게 대단한 일이었을까? 대답은 아마도 ‘예스’일 것이다.

당시 의학은 해부학과 병리학 위주였고, 생리학은 마땅한 제도적 공간을 가지지 못한 채 해부학에 종속된 부수적인 분야로 여겨지고 있었다. 또한 실험이 의학발전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은 소수에 불과했고 오히려 실험에 반대하는 입장을 가진 의사들이 다수였다고 한다.

하지만 베르나르는 유기체의 생명현상은 죽은 시체를 연구해서는 결코 파악될 수 없고, 살아있는 생물에 대한 생체해부(vivisection)를 통한 생리학이 연구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에 그는 의학에서 생리학의 확고한 위치를 마련하고자 실험적 방법론을 제창하기에 이른다. 생명과학 분과에서 실험이라는 방법론이 유기체의 생명현상을 생동적으로 다루기 위한 방편으로 제시되었다는 역사적 환기는 한의학계에도 많은 점을 시사한다.(클로드 베르나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라. 클로드 베르나르의 일반생리학: 형성과정과 배경, 한기원, 의사학 제19권 제2호 2010년 12월)

한편, 그는 일반생리학이라는 제목의 강의를 통해 의학으로부터 독립된 순수한 생리학 체계를 구성해 보고자 하였다. 그는 일반생리학 강의에서 ‘생명이란 무엇인가’ ‘생명현상을 어떻게 분류할 것인가’ 따위의 다소 사색적이고 추상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는 생명체의 조건으로서 내부 환경의 항상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내부 환경’의 개념은 고등동물이 외부 환경의 영향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었다.

베르나르는 생명체를 둘러싼 외부의 무기적 환경으로 물 공기 온도 등 세 가지를 강조했는데, 식물과 미생물, 그리고 동물 중에서도 양서류 등 구조적·기능적으로 하등한 생명체들은 이 세 요소들 중 하나라도 충족되지 못하면 곧 죽거나 한동안 생명 현상이 중지된다.

그러나 인간을 포함한 대부분의 고등 포유동물들의 생리적 현상은 이러한 외부환경의 변화에 비교적 영향을 덜 받는 것으로 보인다. 베르나르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고등한 포유동물의 체내에는 외부 환경의 변화가 주요 생명현상들이 일어나는 기관들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일단 한번 차단해 주는 또 다른 환경-즉 내부 환경-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이상 한기원, 앞의 책에서 인용)

베르나르의 ‘내부 환경’개념은 생명현상의 여러 특성 중 항상성(Homeostasis)이라는 이름으로 그 명맥이 이어졌다.(생명현상의 특성은 크게 개체 유지현상과 종족 유지현상으로 나눈다. 개체 유지현상은 물질대사, 생장과 발생, 반응성과 항상성으로 구분되며 종족 유지현상은 생식과 유전, 적응과 진화로 구분된다.) 항상성은 -베르나르의 표현(All the vital mechanisms have only one object – to preserve constant the conditions of the internal environment.)처럼- 자극에 대한 일정 값(set point)으로의 원상 복구에 의한 안정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일정 값이란 신체에는 어떤 측정치에 관해서도 가장 적합한 단 하나의 수준, 수치, 양이 있다는 의미이다.

물론 이는 사실에 부합되지 않는다. 인체의 평형은 본질적으로 고정된 값을 갖지 않는다. 가령, 인체의 정상 체온은 36.5℃이지만, 그것은 다른 여러 요소들을 고려한 경우에만 그러하다. 병적 상태에서 38℃ 이상은 위험신호일 수 있다. 그러나 격렬한 운동 직후에 신체는 40℃가 넘은 체온상태에서도 병적이라 말할 수는 없다. 따라서 우리가 인체에서 측정하려는 어떤 생체 값도 고정적(fixed)이지는 않으며, 그것은 언제나 여타 요인들에 의존하는 맥락의존적 값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분자생물학자 후쿠오카 신이치의 생명에 대한 이해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는 생명을 가변적이며 지속가능한 즉, 동적인 평형상태(dynamic equilibrium)에 있는 시스템이라 말한다. 생명현상은 구성 성분의 구조적 총합 그 이상이며, 성분들 상호간에 만들어내는 ‘흐름’의 효과라는 것이다.

알로스테시스의 개념
항상성 개념을 지지한 베르나르를 비롯한 생리화학자들은 생명현상이 이러한 ‘동적 평형’을 유지하려는 역동적인 조정과정임을 인식하였으나, 당시로서는 이를 구체적으로 연구할 방법을 갖고 있지 못했다.(분자생물학에서 동적평형에 대한 역사적 이해는 다음 글을 참조하라. 후쿠오카 신이치 교수의 동적평형 서평, 김우재, 사이언즈타임즈http://www.sciencetimes.co.kr/article.do?todo=view&atidx=0000040375. 클로드 베르나르의 다음 발언은 이를 잘 보여준다. “오늘날 생물학 전체의 종합을 기도하려 하는 무리들은 자신들이 이러한 과학의 현 상태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가지고 있지 못함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오늘날에는 겨우 생물학의 문제가 막 제안되었을 뿐이다. 기념비를 세울 것을 생각하기 전에 우선 돌을 모으고 그것을 필요한 크기도 자르지 않으면 안 되듯이, 먼저 생물과학을 구성할 사실들을 수집하고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역할의 수행은 실험의 임무이다. 방법은 이미 확립되어 있다. 그러나 분석하지 않으면 안 될 현상이 지극히 복잡하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과학의 참다운 선구자는 분석 조작에 어떠한 단순한 원리를 부여해줄 수 있는 사람, 혹은 실험 도구를 발명해내는 사람일 것이다. 또 사실이 극히 명료하게 실증되고, 또 충분히 많이 존재하고 있을 때에도 종합은 결코 쉽게 완수되지 못할 것으로 생각된다. 진보의 도상에 있는 실험과학, 그 중에서도 생물학과 같은 복잡한 과학에 있어서는 새로운 관찰도구나 실험기구의 발명이 많은 체계적 혹은 철학적 논의들보다 훨씬 공헌하는 바가 크다고 나는 확신한다.” 한기원, 앞의 책)

항상성은 비교적 최근에 들어서야 ‘알로스테시스’라는 개념으로 재확립되었다.(Allostasis는 신항상성, 알로스테시스 등의 용어로 번역되고 있으나 통일된 역어는 없는 듯 하다. 이 글에서는 알로스테시스로로 일관되게 부를 것이다.) 1988년 펜실베니아 대학교의 피터 스털링(Peter Sterling)과 조지프 아이어(Joseph Eyer)는 그들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항상성 개념을 현대화하였다.

알로스테시스는 생명체 내외부의 자극에 대한 동적 변이를 통한 안정성을 의미한다. 알로스테시스는 자극에 대해 행동의 변화를 포함한 신체 전반의 변화를 조절하는 것이다. 항상성이 국소적인 매커니즘에 따라 특정 피드백 사이클 내에서의 음성 혹은 양성 피드백에 의한 균형 회복만을 의미했다면, 알로스테시스는 자극에 대해 자율신경계, HPA 축, 심혈관계, 신진대사, 면역계 등을 포함한 전신의 모든 체계가 협응하여 자극에 대한 새로운 균형을 만들어가는 역동적인 조절 과정을 의미한다.

<그림 1>Homeostasis and Allostasis(from Principles of allostasis, Peter Sterling,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4)

그렇다면 건강은 내외부의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서 항상 역동적으로 균형을 만들어가는 상태이며, 반면에 질병은 이러한 동적 평형이 무너진 상태라고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림 1>은 항상성과 알로스테시스의 차이를 도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림 2>The brain sets blood pressure via multiple, mutually reinforcing mechanism. Modified from Sterling and Eyer 1988.
 <그림 2>는 알로스테시스 개념의 구체적 실례로서, 스트레스에 반응하여 신체 전반이 어떤 방식으로 조율되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자율신경계, HPA 축, 심혈관계, 레닌-안지오텐신계 등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모습이 흡사 태극문양을 연상시킨다.

한의학과 알로스테시스 개념의 차이는?
아마 누군가는 내부 환경, 항상성, 알로스테시스로 이어지는 일련의 개념들이 한의학에도 얼마든지 있다고 항변할 것이다. 그렇다. 한의학에도 이러한 현상을 설명해내는 개념들, 이를 테면 正氣 邪氣 衛氣 등을 비롯해 다양한 개념이 존재한다. 베르나르가 고등동물에서의 내부 환경을 이야기하듯 한의학에도 ‘運’이라는 개념을 통해 신기지물과 기립지물을 구별 짓는 사유 모델이 있다.(신기지물과 기립지물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라. 우주변화의 원리, 한동석) 추상화 혹은 난해함의 정도 차이는 있을지라도 흡사 동일한 현상을 지칭하는 표현들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이 개념들은 완전히 동일한가? 물론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지점에서 결을 달리하는 것일까? 개념이 서로 유사하다는 점은 인정되더라도 더 유용한 개념은 있을 수 있는가? 만약 상호 유사한 개념 사이에서 한 개념이 더 유용하다고 인정될 경우, 개념은 대체 가능한가? 각 개념 간의 유사점만을 뭉뚱그려 모호하게 이해하는 것은 간편한 방식으로 사적 사유를 강화시킬지는 몰라도 학문적으로 성실한 태도는 아니다. 차이를 드러냄으로써 더욱 정치한 이해가 비로소 가능해진다.

알로스테시스는 항상성에 대한 근본적인 부정이라기보다는 개념의 확장이라고 볼 수 있다. 내부 환경, 항상성, 알로스테시스로 이어지는 사유의 흐름은 점점 더 현상에 근접한 설명 방식을 제공하고 있다. 내부 환경, 항상성, 알로스테시스. 각 개념의 역사적 변모과정 중에 발생한 차이를 모두 탈락시키고, 어찌됐든 그와 비슷한 개념이 한의학에 이미 예전부터 있었다고 말하는 것은 지적으로 게으르고 무책임할 뿐만 아니라 서양의학이 단순히 환원론에 매몰되어있다는 식의 주장은 쉽사리 하지 못할 것이다.

한의학적 사유의 재해석
앞으로 우리는 알로스테시스 개념을 생명체의 동적 평형을 교란시키는 내외부의 여러 자극들(이러한 자극을 스트레스라고 부른다)과 관련지어 보다 자세하게 소개할 예정이다. 또한 이 개념을 도구삼아 몇 가지 한의학적 사유를 재해석하고자 한다. 비록 아직 조악한 형태의 접목에 불과할지라도 우리는 알로스테시스 개념을 통한 사유 모형에서 모종의 희망을 발견했다.

혹자는 “기존 한의학 개념을 알로스테시스 개념으로 독해하는 작업이 무슨 이득을 가져다 줄 수 있단 말인가?”라는 회의적인 질문을 던질 것이다. 그 질문이 바로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이다. 몇 편의 글을 통해 이러한 질문에 구체적으로 답하고자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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