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 교수의 세계 속으로(9) - 해외 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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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교수의 세계 속으로(9) - 해외 진출
  • 승인 2012.02.16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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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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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부한 해외 인적 자원은 세계화의 동력

들어가며
근래 세계보건기구(WHO) 전통의학 관련 회의 또는 한의학이나 대체의학 관련 국제학술대회에 참가해 보면, 여러 국적의 다양한 대표들이 참가하는 국제회의임에는 분명한데, 출신지나 교육적 배경은 상당수가 중국계이다. 이는 일찌감치 중국 본토 출신의 중의사들이 전 세계에 퍼져 이제는 자리를 잘 잡고 그 나라의 침술이나 대체의학을 대표하는 인물로 성장했음을 말한다.

2008년 10월 한의대생 진로 특강 기념 사진. 필자(앞줄 흰 가운) 옆은 존스홉킨스 보건대학원을 졸업한 박유리 선생님

이에 비해 한국의 한의사들은 해외진출의 인원도 매우 적고, 진출국가 또한 대단히 편중되어 있다. 2011년에 대한한의사협회가 주관한 한의사 해외진출설명회에서 진행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해외진출 고려 국가로서 응답자 22명 중 미국 19명, 호주 1명, 영국 1명, 없음 1명이고, 해외진출 계획 이유(중복응답)는 자녀교육 7명, 삶의 질 향상 4명, 한의학 세계화 2명, 기타 6명, 무응답 3명이었다고 한다. 설문 규모가 크지 않아 단정할 수는 없지만, 대략 주변인들을 보아도 해외진출 고려시 절대적으로 미국을 생각하며, 해외 진출의 이유도 한의사 자신의 자아개발보다는 자녀교육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필자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대부분의 한의사들이 미국이 무조건 좋아서라기보다는 해외진출에 대하여 접하는 정보의 폭이 좁은 것도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이번 호에서는 우선 한의사의 해외진출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해외 침구 시술 자격증을 미리 취득해 두는 것이 좋을까?
많은 한의사들이 한번쯤은 해외에서 침구 시술을 할 수 있는 자격증을 당장은 사용할 계획이 없더라도 일단 취득해 볼까 하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이러한 자격증으로 대표적인 것이 미국의 NCCAOM(National Certification Commission for Acupuncture and Oriental Medicine, http://www.nccaom.org/)이다.

필자 개인의 생각으로는 특별히 제도가 바뀌거나 하지 않는다면 적어도 3~4년 내에 사용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이 있을 때 취득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자격증이나 면허증에 유효기간 개념이 없지만, 보수교육을 중시하는 외국의 경우에는 유효기간이 명시되어 있다.

NCCAOM의 경우에는 4년마다 갱신하도록 되어 있다. 갱신할 때는 비용이 들어가고, 보수교육 등을 통해 유효기간 중 점수를 계속 모아 두어야 해서, 신경을 쓰지 않고 그냥 두었다가는 자격증이 무효화될 수 있다. 갱신이나 유지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위의 공식 홈페이지에 설명되어 있다.

일단 취득을 해 놓으면 사용할 일이 거꾸로 생길 수도 있겠지만, 미리 시험 본 국내 한의사 대부분의 자격증이 장롱 안에서 잠자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니, 각자 계획을 잘 세우고 취득 일정을 정하는 것이 바람직하겠다. NCCAOM은 한국어 시험도 있는데, 주 면허 취득시 NCCAOM을 외국어로 시험을 본 경우 별도의 영어시험이나 성적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 이왕이면 처음부터 영어로 보는 것이 나중을 위해 편리하다.

자격증과 면허증, 그리고 비자
또, 한 가지 정확히 알아야 할 개념이 NCCAOM은 기관에서 발행하는 자격증이지 면허증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격증과 면허증을 혼동하는 경우들이 많은데, 자격증은 소지자가 해당분야에 일정 수준의 능력을 갖추었다는 일종의 인증서일 뿐이다. 이에 반해, 면허는 어떤 형태이든 면허 없는 면허행위는 결과에 상관없이 불법이라는 배타성이 있다.

다시 말해, NCCAOM은 침술에 대해 일정 수준 이상의 능력을 갖고 있다는 자격증이고, 임상활동을 위해서는 이러한 자격증을 갖고 반드시 각 주의 해당 면허를 취득해야 비로소 시술할 자격이 된다. 이와 유사하게 캘리포니아주에 해당하는 것이 CA 이다. 미국 각 주의 침술 관련 면허제도에 대한 정보는 http://www.nccaom.org/wp-content/uploads/pdf/State%20Licensure%20Table.pdf 에 잘 정리되어 있다.

또한, 해외진출을 위해서는 어쩌면 현실적으로 더 중요할 수 있는 것이 비자이다. 외국인의 장기체류 및 취업행위는 어느 국가나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다. 비자의 종류는 다양하여 여기서 다루지는 않겠지만, 미국의 경우 비자스폰서 자격을 갖춘 기관이나 회사에 취업하는 H-visa와 투자 비자 E2-visa 등을 많이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참고로 미국은 무비자 협정이 된 후 잠시 다니기에는 편리해졌지만, 장기 체류 및 현지에서의 비자 변경은 훨씬 더 엄격해졌다.

해외 진출시 잃는 것과 얻는 것
전 세계 어디에도 한국처럼 현대의학과 전통의학이 평행하게 이원화된 의료체계는 없다. 중국과 대만도 유사한 면이 있기는 하지만, 정치와 문화적 배경에 차이가 있고, 일례로 전통의학 전공의 대학 입학시에 의과대학과 동등한 높은 수준을 유지하며, 같은 교육 연한과 제도를 갖춘 곳은 한국이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국내 한의사제도와 동등한 개념의 직종이 외국에는 없기 때문에 해외 진출시 침구시술 중심의 자격증과 면허증을 취득했다고 하여 국내 한의사 수준의 사회적 위치를 기대할 수 없다. 특정분야의 전문가로서의 인정은 받지만, 직종 자체로는 의료인보다는 치료사 내지는 의료보조인력 개념에 더 가깝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현재로서는 국가별 제도 또는 인식의 차이를 하루아침에 개인이나 특정 단체가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해외진출의 긍정적인 면은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특히, 자녀들의 교육을 위한다는 측면은 한의학의 국제화와는 큰 연계가 되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앞서 말한 설문조사에서도 나타났듯이 큰 현실적인 이유이고 대부분이 공감하는 이유이다.

필자의 짧은 외국 생활을 반추해보아도 국내보다는 외국의 학생들이 훨씬 더 전인적이고 마음에 여유가 있는 초중고교 생활을 누리고, 본격적인 공부는 대학에 가서 더욱 열심히 하는 바람직한 측면이 많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치열하고 획일적인 경쟁을 하고, 막상 본격적인 공부의 출발점이 되어야할 대학은 목표점 또는 종착점으로 여겨져 정말 중요한 시점에 이르러서는 부모와 학생 모두 마음을 놓아버리고 마는 안타까운 현실에서 이 나라의 미래는 과연 어떨지 걱정이 된다. 물론, 모두 장단점이 있으니, 가볍게 결정할 문제는 아니고 장기적 계획과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두 번째 긍정적인 면은 가족 중심의 사회일 것이다. 국내에서 일중독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는 필자도 미국에서만큼은 야간이나 주말에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대부분 제시간에 퇴근하고, 주말에는 아예 사무실 건물을 잠가놓았기 때문이다.

존스홉킨스 의과대학이 있는 볼티모어는 미국 내에서 치안이 매우 불안한 도시로 유명한 이유이기도 하지만, 대체로 가장들이 저녁에는 가족들과 함께 가정에 충실해야하는 것이 불문율처럼 되어 있다. 대부분의 상점이나 음식점들도 밤늦기 전에 일찍 문을 닫고, 퇴근 후 남자들끼리 모임을 갖는 일은 거의 없고, 주말의 모임들은 많은 경우 부부동반 또는 가족동반인 경우가 많았다. 아무튼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 될 수 있는 환경적 여건은 한국보다는 훨씬 낫다.

세 번째로 경제적 측면이다. 미국의 침 시술 수가는 매우 다양하고, 민간보험지원 여부에 따라서도 차이가 많이 난다. 보고 들은 바로는 보통 $50정도 하는 것 같고, 가격경쟁이 심한 곳은 $20~30도 있고, 대학병원급의 경우 $100~200, 가장 고가로는 개업의 중 $700도 있었고, 시술시간이 길면 추가 요금을 부과하기도 한다. 국내에 비해서는 평균적으로 볼 때, 고가라고 볼 수 있는데, 한약 복용은 한국보다 많지 않아 시술자의 진료 패턴에 따라 차이가 많을 수 있다.

국내 한의사 출신의 경우 경쟁력이 있어서 성실히만 일한다면 삶의 질은 나쁘지 않다. 물론, 이 역시 막연한 핑크빛 환상은 금물이다. 낯선 환경에서 성공할 수 있는 노력과 열정이 있다면, 국내에서도 잘 할 수 있지 않았겠나 하는 얘기도 있다.

한의계도 해외 대학에 진출하는 사람이 많아지기를
필자가 한의대 제자들에게 진로 특강을 하거나 개별 상담을 할 때, 포부가 있고, 외국어 능력까지 있다면, 해외 진출을 고려하도록 조언을 한다. 특히, 앞서 얘기한 사회적 지위의 아쉬움도 극복하고 한의학 세계화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외국의 대학에 교수로서 진출하는 것이다. 물론, 이는 쉬운 일은 아니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고, 필자 개인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오히려 타 분야보다 경쟁력도 있다.

존스홉킨스 의과대학에는 말 그대로 엄청난 학력과 스펙의 박사 후 연구원들(Post-Doc)이 항상 넘쳐난다. 그러한 인재들보다도 먼저 2년 안에 전임교원 발령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필자의 개인 역량이라기보다는 희소적 가치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분자역학, 의공학 등 최첨단 분야는 인재들이 넘치지만, 침구학 등의 전통의학 분야는 아직도 성장단계이므로 연구능력과 임상 자격을 겸비한 전문 인력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고 자리가 생기면 이를 획득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 한의대 교수들도 연구년 등을 통해 해외 연수를 경험한 경우가 많아졌지만, 거의 대다수가 외국에 풍부한 인맥을 맺고 있는 의과대학에 비하면 아직도 세계화에는 열악한 환경이다. 보다 많은 한의계의 젊은 인재들이 외국에 나가 배우고 기회가 되는대로 자리를 잘 잡은 후 다시 후학들을 해외에서 이끌어주는 아름답고 튼튼한 고리가 만들어지기를 소망한다.

이상훈 / 경희대 한의대 침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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