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명왕성의 퇴출, 침의 퇴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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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명왕성의 퇴출, 침의 퇴출
  • 승인 2011.12.01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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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왕

김기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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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11일, 동의대학교 한의과대학에서 조촐한 연구 발표 모임이 있었다. 이 자리에는 ‘뇌기능 영상 기술은 침 연구에 유용한가?’라는 주제로, 지인인 경희대학교 전자정보대학 박경모 교수의 발표가 있었는데, 10년 전 얼마간 이 분야의 연구에 참여한 적이 있는 나로서는 그 이후의 연구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많이 궁금했는데, 이 자리는 그러한 궁금증을 잘 풀어준 자리가 되었다.

발표의 초반부는 1998년 미국 국립학술원회보(PNAS)에 실려 이목을 끌었던 조장희 박사님(현 가천대학교 뇌과학연구소장)의 논문으로 시작하였다. 이 논문은 근결(根結) 이론과 같은 고전적 경락학설의 실질을 뇌기능 영상을 통해 규명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연구자들에게 심어 주었고 이후 유사한 방법론으로 진행된 연구가 한 동안 이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후속 연구의 출발점이 된 위의 논문은 저자 스스로의 요청에 의해 2006년 철회되었다. 이 일은 한 때 한의계에서 다소의 논란거리가 되었는데, 외부에는 마치 한의계가 종래의 주장을 고수하기 위해 진실을 거부하려 한다는 식으로 묘사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굳이 그러한 사례를 언급할 필요도 없이 이 때쯤이면 이미 뇌기능 영상기술에 의한 침 연구는 마치 활짝 열린 판도라의 상자처럼 훨씬 더 본질적인 고민거리들을 한의학 연구자들에게 쏟아내고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거짓침(僞針) 자극의 효과에 대한 실험 결과들이다. 거짓침 자극에 대한 인체의 반응은 의외로 실제 침의 반응과 유사하여 심지어는 심박변이도 변동과 같은 신체 반응이 영상만으로 제시된 수기자극에 정확히 비례하여 재현되기조차 한다고 한다.

이러한 결과를 가지고 어떤 사람은 침의 효과는 위약효과일 뿐이라고 말한다. 자, 우리는 어떤 해석을 해야 할까. 그 동안 환자에게 그저 푸닥거리나 한 셈이니 이제 침은 깨끗이 쓰레기통에 버려야 할까?

앞서 소개한 논문 철회 사건이 있던 해에 국제 천문학계에는 의미 있는 결정이 하나 이루어졌다. 일반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명왕성의 ‘퇴출’ 결정이다. 발견 이후 76년간 미국 천문학계의 자존심을 살려 주었던 명왕성이 행성의 자리에서 밀려나 수많은 소천체의 하나로 강등되었다.

그런데 과연 명왕성의 발견자 톰보(Clyde W. Tombaugh, 1906~1997)는 1930년 명왕성 발견 당시 그저 쓸 데 없는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그의 발견은 근래에서야 촉발된 해왕성 바깥 천체에 대한 탐구의 장을 무려 60여년이나 앞서 열어젖힌 위대한 발견이었다. 그는 태양계의 끝을 찾아내고자 열심히 망원경을 들여다보았지만, 정작 그가 발견한 것은 새로운 세계의 시작이었다.

동의대 발표에서 초반부에 나는 한의학의 기존 학설이 뇌기능 영상 연구에 의해 입증되었는지 폐기되었는지에 대해서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하지만 발표 후반부에 소개된 최근의 연구 성과들은 침 효과가 위약 효과냐 아니냐 하는 식의 질문보다 훨씬 더 중대한 의미를 갖는, 인체에 관한 놀라운 사실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뇌와 의식은 많은 사람이 흥미를 갖는 보편적 탐구의 대상인데 뇌기능 영상에 의한 침의 연구는 이 주제에 깊숙이 들어와 있었고, 새롭게 탐구해 볼 많은 것이 남아 있음을 알 수 있었다(수근관증후군에 대한 연구 등).

종종 우리는 종래의 주장이 ‘입증’되었는지, 한의학이 ‘옳은’것인지에만 관심을 기울인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침은 퇴출될 것인가? 그 답을 지금 알 수는 없으나 최근의 침 연구는 침이 인체 탐구의 새로운 출발점일 수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김 기 왕 /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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