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2주년 특집 | 한의사가 바라는 '한의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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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22주년 특집 | 한의사가 바라는 '한의사상'
  • 승인 2011.07.21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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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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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임상 한의사다”

고등학교를 입학하자마자 기침이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기관지염에 걸렸습니다. 부산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내과에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한 달간 주사를 맞고 약을 받아먹었는데, 낫기는커녕 오히려 위장병까지 생겨버렸습니다. 그런 난감한 상황에서 한의원을 소개받고 탕약을 복용하게 되었는데, 약 2주 만에 완치되었습니다. 한약의 놀라운 치료경험을 체험한 고등학교 1학년 어린학생은 평생 한의사의 길을 걷겠다고 결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고등학생은 이제 중년의 한의사가 되었습니다.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보니 한의계는 항상 다사다난했습니다. 대부분의 일들은 대외적인 갈등들인데, 자유경쟁사회에서 단체와 단체 간의 다툼이란 당연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런데, 요즘 많은 젊은 후배들이 그런 상황에 쉽게 상처받고 좌절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후배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앞으로 대외적인 문제는 한의협 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열심히 일하고 계시니 눈 딱 감고 잊어버립시다. 그리고 이제부터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임상 한의사들은 時俗에 흔들리지 말고 오로지 의사로서의 본분만을 생각합시다.

‘나는 가수다’가 보여주듯, 의사의 본분은 오로지 병을 잘 고치는데 있습니다. 임상 한의사로 살아온 저의 경험에 비추어, 한의학은 정말 멋있는 학문일 뿐만 아니라, 정확한 진단과 그에 따른 적합한 처방을 했을 때 ‘북을 치면 소리로 응하듯’ 速效가 나타나는 멋진 치료의학이라는 사실입니다.

제가 어린 나이에 한약으로 병이 치료되고 한의사의 길을 걷게 되었듯이, 전국의 모든 동료 한의사들의 진료실에서도 같은 감동이 일어나길 기원합니다. 약을 처방했는데도 환자의 병이 잘 낫지 않으면 나의 미숙함을 나무라고 더욱 분발해야지, 한의학을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한의학을 크게 일으키고 한의사의 위상을 높이는 길은 대외적인 투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 우리들의 진료실에 있습니다.   

가장 건강하고 행복한 전문가 집단

가끔 직업별 소득이 뉴스가 된다. 변호사, 변리사, 의료인, 의료인 중에서도 한의사, 의사, 치과의사, 간호사 등등. 그리고 직업별 평균수명을 조사한 것도 뉴스가 된다. 변호사, 의사, 화가, 음악가, 대학교수, 운동선수, 정치인 등등. 그런데 눈에 띄는 것은 의사의 수명이 상당히 짧다는 것이다. “의사가 시키는대로 하면 오래 살고 의사처럼 살면 빨리 죽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생각난다.

이런 상상을 한번 해본다. 한의사가 혈압과 혈당, 간수치 등이 가장 낮고, 행복도와 기대 수명이 가장 높은 직업군이라는 논문이 나오고 언론에 보도된다.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채식주의자이며, 매일 명상을 하거나 기도나 참선을 하며, 화타오금희 같은 양생술을 수련하기 때문이라는 분석기사가 크게 회자된다. 그리고 한의사들은 자신과 이웃의 건강뿐 아니라 지구 생태계의 건강에도 큰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멘트가 붙는다!

한의사는 당연히 가장 건강하고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학문의  뿌리인 「황제내경」 소문이 바로 그 주제를 다루는 경전이 아니던가!? ‘지도자(知道者)는 식음유절(食飮有節), 기거유상(起居有常), 불망작로(不忘作勞)하며, 천수를 누린다’ 소문의 첫 장이 이런 말로 시작되지 않는가?!

‘심자는 군주지관 신명출언’이다. 살아있는 동물을 죽일 때 나오는 칠정의 기는 어디로 가는가? 천지지간 육합지내에 미만할 것이며 죽은 짐승의 살에 그대로 남을 것이다. 그 기운을 호흡하고 그 살을 먹으면 군주지관은 밝음을 잃고, 콜레스테롤과 과다한 중성지방으로 혈관은 막힌다. 그리고 오염된 환경 속에서 먹이사슬을 거쳐 농축된 독성물질(Xenobiotics)은?

내가 꿈꾸는 한의사는 술 담배와 동물성음식을 먹지 않는 전문가들, 명상을 하고, 화타오금희를 수련하며, 자신을 찾아오는 환자뿐만 아니라 지구생태계의 건강을 위하여 애쓰는 도덕적인 사람들, 「황제내경」 소문의 법대로 사는 진실된 전문가들이다. 

한동하 / 서울 한동하한의원 원장
사회와 소통하는 한의사

한국 의사학을 살펴보면 역사적으로 이 땅의 의사였던 우리는 ‘한’의사가 되어 있고, 주류의학에서 비주류로 밀려나 있다. 역사와 함께 했던 한의학은 기름이 떨어져 가는 호롱불 신세가 된 느낌이다. 정체되어 멈춰진 느낌을 털어내고 세상을 향해 포효할 수 있을까?

특정 대상에 대한 평가는 다양한 이미지들이 조합되고 재편집되어 형성된다. 그러나 한의사 직업에 대한 이미지들은 몇 가지 색만으로 이루어진 협소한 스펙트럼 안에서 쉽게 정리된다. 침을 놓는 모습, 진맥하는 모습, 나이가 지긋하고 흰머리에 수염이 있는 인자한 모습이 주된 이미지 중에 하나이다. ‘참 한의사답다’라고 일반인들에게 인식되어지고 있는 한의사다운 이미지는 우리를 스스로의 편협함 속에 가두고 있다. 이유는 ‘변화’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의사다운 이미지는 결코 나쁘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이미지는 변화를 막는 장벽이 되었다. 전통적인 방식의 진료뿐만 아니라 과학적으로 응용 개발된 기기 등과 다양한 제형의 제제들도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미래지향적인 측면에서 받아들여야 한다. 한의학이란 학문 자체의 정체성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다만 이러한 변화는 현 시대가 요구하는 당위성일 뿐이다. 결국 한의학적인 이론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치료법들이 등장할 것이다.

더불어 우리는 주변과 ‘소통’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한의학적인 언어는 사회성을 획득하지 못하고 있다. 주관적인 판단으로 객관화된 의견을 제시해 동의를 구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사진(四診)은 최고의 진단방법일 수 있지만, 현시대에 있어서 심각한 고민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사진과 함께 보다 객관화된 진단방법과 보다 사회성을 획득한 언어의 사용이 필요하다. 우리는 한의사이기 이전에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이다. 한의사로서 바라는 한의사는 ‘시대의 요구에 맞춰 사회와 소통하며 치료하는 한의사’가 되는 것이다.  

표준화된 매뉴얼 가진 ‘보편적 한의사’

91년도 처음 한의대를 입학하던 때가 떠오릅니다. 그 당시만 해도 한의학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진맥을 하면 온갖 증상을 다 알아맞히고 달인 탕약을 먹으면 몸이 좋아지면서 온갖 질병이 다 낫는 신비한 의학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미지의 영역을 과학화해서 온갖 난치질환을 정복하는 한의사나 연구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 당시 한의학은 ‘보약의학’ ‘예방의학’ ‘개인경험의학’이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후로 20년이란 세월이 지나고 그동안 한의계는 군의관ㆍ공보의 전면실시, 전문의제도 실시, 국립한의학전문대학원 설립 등 제도권으로 편입이 되면서 이제는 일차진료와 치료의학으로 거듭나는 시대적 요구에 직면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또한 2만 한의사가 배출이 되고 EBM의 파도가 치면서 표준화된 매뉴얼을 가진 ‘보편적 한의사’의 탄생이 앞으로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상상하는 미래의 한의원의 모습은 이렇습니다. 발이 삐끗하고 허리를 다치고 감기가 걸리고 체하거나 장염이 걸린 등등의 환자가 내원했을 때, 어느 한의원에 가나 비슷한 질병에 대한 설명이 이루어지고 변증이 이루어져 보험한약과 침구치료로 치료가 이루어집니다. 필요하면 주변 방사선과에 검사를 의뢰하기도 하고 한의원에서 보기 부담스러운 질환이면 큰 병원으로 transfer합니다. 간혹 자꾸 재발이 되는 만성질환이나 다이어트 그리고 수술 후나 산후 등 기력이 쇠해서 보약을 원할 경우는 체질에 맞게 탕약을 처방해드립니다.

어느 한의원에 가나 비슷한 진료형태가 이루어져서 한의사도 축적된 임상연구를 바탕으로 한 전문적인 지식으로 무장되어 있으며, 환자도 ‘한의원’하면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진료형태가 이루어져서 몸에 큰 부담이 가지 않으면서 치료가 잘되는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다려 봅니다. 

주진원 / 경기 사랑한의원 원장

‘명예와 동료애’를 중시하는 한의계

로마인들은 명예를 중시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적에게 항복을 하는 것은 가장 큰 불명예로 여겼으며, 차라리 나가서 싸우다 죽는 것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래서 로마인들은 명예를 지킨 자들에게 최고의 시민으로서 대접하는 전통이 있는데, 이런 최고 명예 중의 하나는 전쟁터에서 동료를 구한 병사에게 월계관을 씌워주는 것이라고 한다. 이런 전통 때문에 전투가 벌어지면 로마 군인들은 위기의 순간에도 동료를 지키기 위해서 동료 곁에서 끝까지 남아있게 되고, 이로 인해서 훨씬 덩치가 큰 게르만족들과의 전투에서도 늘 승리를 하는 매우 중요한 이유라고 한다.

한의계 안팎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한의계는 분과가 이루어진 상황이 아니어서 한의사가 대부분 1차진료인 일반의의 진료를 하다보니 서로 경쟁이 많은 것도 우리가 겪는 어려움의 원인이기도 하다.

어떤 집단이든 내부의 경쟁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내부의 경쟁을 어떻게 만들어가느냐가 그 집단의 성패를 좌우한다. 로마인들도 내부의 갈등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로마인들은 이를 ‘명예와 동료애’라는 가치를 통해서 내부의 경쟁을 선의의 경쟁으로 승화시키는 지혜를 가지고 있었다.

한의계에 이런 문화가 있는가? 서로를 경쟁자가 아닌 동료로 바라보고 서로를 지키기 위해서 전장에 뛰어들며, 그런 것을 최고의 명예로 여기는 문화가 있는가? 안타깝게도 내가 보는 한 그렇지 않다. 경쟁과 탐욕은 다르다. 경쟁을 하되 명예와 동료애라는 가치가 사라진 조직은 경쟁이 아니라 오직 서로 빼앗고 빼앗는 탐욕만이 난무한다. 탐욕을 경쟁이라는 이름으로 둔갑시켜 정당화하는 집단은 머지않아 소멸한다는 것은 인류역사에서 무수히 나타나는 사례이다.

명예와 동료애라는 정신적 가치는 내부의 경쟁을 가치있게 만들고 집단을 발전시키는 기본적인 정신문화다. 나부터, 그리고 동료들에게 이런 정신가치가 소중해질 수 있기를 바란다. 

행복과 긍정적 사고의 중심축

저는 지역사회와 소통하고 지역사회에서 사회지도층 역할을 하는 한의사상을 희망합니다. 우리 주변에서 한의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사회 엘리트이며, 공인이며, 사회지도층입니다. 따라서 한의사들의 지역사회참여와 기여도가 높아지면 자연적으로 한의사의 위상이 더욱 올라갈 것입니다.

지역사람들의 정서와 행복지수를 파악하고 지역사람들이 어떤 부분에서 힘들어하는지, 어떤 식으로 도와주거나 이끌어주어야 이 분들의 몸과 마음이 건강해질 수 있을지를 모색하고 행동하시는 한의사가 많아지길 소망합니다.

저는 또한 한의사분들이 각자 계신 지역사회에서 행복과 긍정적 사고의 중심축이 되시길 바랍니다. 지금 한국사회는 행복지수가 OECD국가 중 최저수준이고(2011년 한국 청소년 행복지수 OECD 23국가 중 최하위, 2011년 성인 행복지수 OECD 34개 회원국 중 26위),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1위인 불행한 사회입니다.

한의사들이 로컬한의원을 중심으로 행복과 긍정바이러스를 퍼뜨리신다면, 탐욕과 경쟁에 지친 지역사회 구성원들의 몸과 마음의 독을 뺄 수 있는 쉼터로 한의원을 만들어 가신다면, 한의사와 그 한의원은 지역사회에 빛과 소금으로 자리매김 될 수 있을 것 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저는 또한 한의사분들이 표준한의용어로 서로 소통하는 한의사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영어나 양의학 공부할 때 사전을 보듯이, 한국어나 한의학을 공부할 때 한의서를 읽은 감으로 나는 이 단어가 이렇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WHO전통의학국제표준용어집(WHO-IST)」과 「한의학 사전」을 참조하여 정확한 표준한의용어를 구사하는 한의사가 많아지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바라건대 한의학회 차원에서 「표준한의학사전」을 편찬해서 위키백과(http://ko.wikipedia.org)에 지식 기증하여 전 세계 지식인들이 유비쿼터스로 표준 한의학 용어를 익힐 수 있게 되고, 전 세계 한의학 용어의 표준을 한국 한의사가 선도하는 날이 오기를 희망합니다.  

치료보다는 진단에 관심갖는 한의사

진료실에 두통을 호소하는 환자가 왔습니다. 환자를 처음 본 순간 진료실에서는 주로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오수유탕을 쓸까? 소음인이고 신경도 많이 쓰는 스타일이니 향부자팔물탕? 아냐 오래된 두통에는 열결이 즉효지!!’ 아마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 많은 분들이 처음에 무슨 처방이나 침법을 써야 할 지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게 뭐가 문제냐구요? 하지만 진단보다 처방을 먼저 생각하는 습관 때문에 한의사들은 점점 더 의료인이 아닌 치료사의 위치로 격하되고 있는 게 아닐까요?

진단을 놓치는 순간 환자의 예후가 달라지는 것이 문제지요. 어떤 후배가 묻더군요. 도대체 진단을 하는 게 한의사와 무슨 상관이냐고, 양방에서 다 진단을 받고 오는데 왜?우리가 힘들여 진단을 해야 하냐고.
하지만 우리는 한의사이기 이전에 인간의 질병을 다루는 의료인입니다. 단 한명의 환자라도 진단을 제대로 하지 못해 환자의 예후가 달라진다면 그것은 범죄 아닐까요? 진단에 관심을 두지 않으면 않을수록 한의사는 점점 치료사의 지위로 격하될 것입니다.

치료사는 환자의 진단이나 예후에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그럴 권한도 능력도 없습니다. 의료인의 지휘를 받아 정해진 치료법을 수행할 뿐이지요. 지금 이대로라면 우리는 의사 지휘하의 ‘한약치료사’ ‘침 치료사’가 될 지도 모릅니다.

혹자는 진단을 하고 싶어도 진단기기 사용권이 없지 않냐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로컬의원에 전부 MRI나 CT, 내시경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병력을 청취하고 이학적 검진과 신체검사를 통해서 추정진단을 하고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진단기기를 활용하는 것이죠.

질병관리에 있어 환자의 증상이 왜 나타났는지 (한)의학적 원인을 찾아내고 원인을 제거하고 생활습관을 교정하고 예방에 힘쓰기만 해도 관리가 되는 것이 많습니다. 치료는 가장 나중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한 가장 기본이 진단입니다. 진단에 따라 방향이 달라질 테니까요.

한약치료사, 침치료사가 되겠습니까? 아니면 동등한 의료인이 되겠습니까? 제가 바라는 한의사상은 치료법을 생각하기에 앞서 진단에 먼저 관심을 가지고 예방과 생활관리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의료인이라는 직함에 걸맞는 한의사입니다.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한의사

‘내가 생각하는 한의사 상’은 어쩌면 모든 한의사분들이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다양한 답들이 나올 것이기에 가장 어려운 질문 중에 하나일 것이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환자분들을 치료할 때 단 한 가지 치료법이 정답일 수 없듯이 한의사 여러분의 의견도 다양할 것이고, 그 다양한 가운데 좀 더 좋은 방법을 채용하는 것이 우리 한의사의 몫이 아닐까 싶다.
이처럼 다양한 치료법 속에 한의학적 범주로 해석하고 그것을 일관성 있게 치료해나가는 것이 내가 바라는 한의사상이다.

현재는 각종 인터넷 매체의 홍수 속에 각종 치료법이나 건강법이 범람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치료법을 한의원에 채용하는 가운데 과연 어느 정도 각자가 한의사로써 채용하는데 한의학적 마인드나 한의학의 이론적 체계로 채용하는지, 과연 이것이 의료로써 최소한의 범주로 삼을 만한 것인지, 솔직히 지금의 상황에서는 각자가 판단해야 할 몫으로 남겨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보통은 이쯤이면 각종 학회나 학교에서 해야 할 몫이라고들 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채용만 하고 그것에 대한 본인 자신에게 자문이나 어떠한 고민이 없이 하는 경우가 어느 정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조금은 든다.

솔직히 내 자신도 그런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내가 바라보는 한의사상의 첫째 조건에 한의사로서 한의학의 학문적 또는 의료로서의 마인드 속에 우리의 의료가 녹아들어야 할 것 같다.

짧으나 어느 덧 13여년의 한의사로 일하고 있지만, 가장 고민하는 부분 중의 하나가 내가 하는 치료방법이 과연 가장 최선의 치료법인가하는 고민이다. 그리고 어느 때 새로운 치법이나 기타 건강법 등을 접하면서 그것을 채용하면서 더욱 좋은 방법들을 찾아가고 있다. 이런 과정 중에 채용하면서 고민하는 부분들이 나를 항상 임상에서 괴롭게 하고 있다. 또한 그것들의 의문이 나를 공부하면서 발전하게끔 만드는 원동력일지 모르지만, 이 바탕에 한의학은 혹은 한의사는 변화해야 한다는 것을 바탕에 깔고 있지 않았나 싶다.

다양한 사회의 변화 속에 변화하지 않는 불변의 규칙을 원칙으로 채용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 한의사에게 어쩌면 학문적으로나 임상적으로나 자신의 마음에서 우리를 힘들게 하고, 또한 이로 인해 발전해 나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것이 바로 내가 바라는 한의사상 중에 첫째가 아닐까 싶다.  

공공보건사업 전반에서의 충실한 역할 기대

우리나라는 전 국민 의료보험제도를 통해 큰 틀에서는 국가가 국민의 의료를 직접 책임지는 형태입니다. 그러나 실제 의료를 행하는 의료기관을 보면, 민간의료기관이 90%에 달하고, 국가가 운영하는 국공립의료기관의 비중은 10%에 불과합니다.

턱없이 낮은 이 10%의 공공의료에서 보건소, 보건지소, 국공립병원 등에서 일하는 공중보건의의 역할은 절대적입니다. 따라서 한의과 공중보건의는 우리나라 공공보건의료에서 한의계의 역할과 직결된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공공보건사업에서 한의과는 확고한 자리매김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의과와 치과의 경우, 진료와 사업으로 나뉘어 질병의 검진과 예방, 치료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또 생애주기별로 전 연령대, 모든 성별을 아우르기 때문에 공공의료기관에서의 검진, 진료가 로컬의 1차, 2차, 3차 의료기관까지 연결되는 의료전달체계 확립의 역할까지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의과의 경우, 전국의 면단위까지 한의원이 개설된 현재까지도 질병의 치료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제 공공보건사업에서 우리 한의사도 질병의 치료 뿐 아니라 검진, 예방, 관리 등 보건사업 전반에 걸쳐 우리의 영역을 확장해야 합니다.

한의학의 특징이자 강점인 양생, 치미병의 뜻을 살려, 공공보건 측면에서도 한의사의 역할을 튼튼히 자리매김하길 바랍니다. 

기본에 충실한 한의사

한의대를 졸업하고 한의사로 살아온 지 벌써 15년이 지났지만 항상 아쉽게 느껴지는 것은 한의사간의 대화문화가 성숙하지 못하고 아울러 소통하는데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대한한의사협회의 정책에 대한 의견개진을 하는 자리는 항상 서로의 목소리를 높이다가 감정이 골만 깊어지고 그 갈등을 봉합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학문적 입장에서 진단과 치료의 정당성을 따지는 갑론을박 토론하는 자리는 각자의 입장을 강조하다가 기본적인 목표를 잃어버리고 전혀 다른 논쟁을 야기 시켜 엉뚱한 결과를 낳는 경우가 흔하다.

한국인의 토론문화가 부족하고 성숙하지 못했다는 현실적인 의견도 있지만, 전문가 집단으로 사회의 공익적인 요구를 받는 한의사들이 성숙된 인간으로서의 자세를 취하지 못하고 항상 이익을 위해 밥그릇 싸움만하는 존재로 비춰지게 된다면 한의사의 미래는 지금보다 더 훨씬 암울해지는 것은 자명하다. 한의사도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가 현실적으로 존재하고 신구의 갈등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현대는 이러한 갈등의 고리를 타파하고 실용을 보다 더 큰 가치로 삼는 것이 보편적인 흐름이고 의료인으로서 진료의 중심인 환자에 대한 무한감동과 서비스를 지향하는 것이 임무와 사명으로 주어지고 있다.

한의사들이 매우 오랜 시간동안 나쁜 습관에 젖어있다고 볼 수 있는데, 시대가 바라는 한의사상이란 인간적인 대화를 할 수 있는 기본에 충실한 한의사, 상대방을 인정하고 소통할 줄 아는 한의사라고 생각된다.
다산 선생의 글 중에 “人自上者 人下之 人自下者 人上之”라는 말이 있다. 해석해 보면 “사람은 자신을 높게 여기면 남들이 끌어내리고, 자신을 낮다고 여기면 남들이 올려준다”는 의미인데, 모든 한의사가 깊이 새겨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상 無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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