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한의학 인물사 (84) - 金長憲 (1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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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한의학 인물사 (84) - 金長憲 (1897∼?)
  • 승인 2011.05.26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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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일

김남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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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한의학 교육계를 선도한 한의학자

 

1964년 김장헌을 취재한 의림지의 기사
咸鏡北道 明川郡 출신의 金長憲은 한의학 교육계에 깊은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東洋醫藥大學(현 경희대 한의대의 전신) 敎授 등을 역임하면서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내어 한의학의 체계화에 힘썼다.

 

金長憲의 조부는 유명한 名醫로서 이러한 가문의 분위기는 그에게 이어져 한의사의 길을 걷게 되었다. 私立光東中學校(현재의 고등학교)를 2등으로 마치고 17세에 한의학 연구에 뜻을 두고 李希煥, 金命駿 등 한의사의 문하에 들어가 한의학 교육을 받았다. 18세부터는 고향에 건립된 초등학교의 교사로 교편생활하면서 한의학 학습이 이어졌다. 21세 되던 해에 동네에서 전염병이 돌아 100여명의 환자가 발생하였을 때 金長憲도 감염되어 심각한 증상이 나타나게 되었을 때 스승 李希煥이 발열의 증상을 보고 ‘陰極似陽’이라고 판정하고, 附子 5錢, 人蔘 一兩, 甘草 二錢을 처방하여 單貼으로 치료해낸 일화가 있다.

金長憲은 1926년 도에서 시행한 醫生試驗에 합격한 후로 고향에 한의원을 개설하여 환자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게 된다. 이곳에서 무료진료로 군민들의 존경을 받았고 벌어들인 돈으로 대학을 졸업시킨 친척들도 8∼9人에 달할 정도였다고 한다.

해방 후 공산정권이 들어선 이후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절간에 들어가 한의학 공부를 하였고, 한국전쟁이 났을 때 1·4후퇴 기간에 부산으로 피난을 내려와서 진해해군사관학교 도서관에 근무하면서 그 도서관에 있는 한의학서적을 모조리 탐독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이후에 부산시 대신동에 개업하여 생활하면서 당시 부산으로 피난 중이었던 동양의약대학의 교수로 초빙되었다.

서울이 수복된 이후로 서울로 이사하여 동양의약대학 도서관장, 한의과 과장, 학장서리 등을 거치되게 되었다. 그는 1957년 朴性洙, 洪性初 등과 함께 교육부로부터 정식으로 교수자격을 획득하게 되는 영광을 갖게 된다. 金長憲이 이때 제출한 논문 제목은 「氣化生理에 대한 고찰」이었다.

또한 1958년 3월 24일부터 31일까지 東洋醫藥大學에서는 제1회 한의학학술강좌가 서울특별시 주최로 개최되는데, 이 자리에서 金長憲은 ‘傷寒例’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한다.

金長憲이 後學들에게 읽기를 권하는 책은 먼저 「醫學入門」이고, 그 다음으로 「內經」이다. 그리고 臨床의 治法을 연구하려면 「石室秘錄」, 理論을 개발하려면 「醫林改錯」 등을 권하고 있다.   

 김남일 /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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