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메이커 | 병원 구경 힘든 산골마을 한의사 고은광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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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메이커 | 병원 구경 힘든 산골마을 한의사 고은광순
  • 승인 2011.02.24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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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선 기자

김윤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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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소외지역 주민에게 ‘건강한 삶’ 인도

고은광순(충남 솔빛한의원·56) 원장은 2008년 충남 공주시 계룡면 계룡산 자락 갑사동네에서 명상프로그램에 참여한 후 훌륭한 스승과 도반들을 만나게 되었고, 서울에서 진료하는 짬짬이 시간을 내 그들과 함께 건강학교, 여성대학 등을 운영해왔다. 그러던 중 강화도 요양소에 계신 노모의 건강이 더욱 악화되고, 노모의 마지막 가는 길에 행복한 동행이 되고 싶어 서울의 한의원을 정리하고, 올 1월 초 갑사동네에 한의원을 개원했다.

   이주여성 상담프로그램 준비중

 

지역 여건 상 갑사동네 주민들은 병원에 가기가 불편하다. 그런 불편함을 고은광순 원장의 솔빛한의원이 해소해주고 있다.

 

“주민들이 아주 좋아하세요. 공주에 나가서 치료받으려면 거의 하루가 다 지나가니깐요. 자주 오지도 않는 버스를 기다리고, 병원에 가서도 환자들이 많으니 차례까지 또 기다려야 하는데 이제 그러지 않아도 되니 너무들 좋아하십니다.”

고은 원장은 한의원 진료 외에 주민들에게 건강한 상식, 건강한 정보 나누기, 건강한 삶에 대한 소통도 잊지 않고 있다. 또 이주 여성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준비 중이다.

“여기에 살면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외국에서 시집온 여성들이 고된 시집살이에 울면서 하소연을 하는 일이 많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습니다. 이들은 가족간에 갈등이 생겨도 마땅히 하소연할 곳이 없어 대부분 우울증에 걸리기도 합니다. 마음의 상처가 생기면 몸의 질병을 유발할 수 있으니 그 전에 그들의 얘기를 털어놓기만 해도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2월 말에 첫 모임을 가질 예정이고, 그들의 현황을 파악하고, 고충도 들어볼 생각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건강을 제대로 지키는 것을 비롯해 가족과 자녀와의 관계에서 내공을 높여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려 합니다.”

   마을주민의 '건강사랑방' 솔빛한의원 

고은 원장의 솔빛한의원은 동네 사랑방 구실도 한다.

“새로운 정보를 공유하는 공간입니다. 서울에서 진료했을 때와 차이점이 있다면 한 동네에서 오래 산 분들이라 한의원에서 만나면 와글와글 사람사는 냄새가 강하다고 할까요?”라며 따뜻하고 정감어린 눈빛으로 말했다.

또 “한의학적인 측면에서 주민들에게 도움줄 부분이 많다”며 “근육통, 관절질환이 많아 침, 뜸, 부항 등 물리치료가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한의학은 한의원에 오는 환자에게만 도움을 주는 학문이 아니라 그에게도 자신을 치유해준 고마운 학문이며, 생업의 도구이며, 세상과의 소통의 도구이다. 그런 한의학이 그와 참 많이 닮아보였다. 그는 평상시에는 명상공부를 통해 평안을 얻고 있다.

“명상공부를 하며 지극한 평안을 얻었습니다. 매일 밤 잠자리에서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다. 다 이루었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뜨면 ‘오늘, 내게 주어진 이 생을 감사하게 받아 살겠습니다’라고 마음먹지요. 성인, 현자들이 인류에게 요구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듯합니다.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일구고 세상 만물의 귀중함을 알라는 것이지요.”  

   치매노모를 위한 일이라면...

고은 원장이 계룡산 자락에 들어와 한의원을 운영하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치매에 걸린 노모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어머니는 다 비슷한 존재지요. 낳아주고. 키워주고. ‘사람 구실’하도록 끌어주고 밀어주고. 특히 어머니는 성실함, 정의로움, 인내 등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말도 못하고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서 생활하고 계십니다. 어머니 마지막 가시는 길에 동행하는 것도 제게 주어진 소중한 기회입니다.”

고은 원장의 노모는 갑사동네로 오기 전 1년 8개월간 강화도에 있는 요양소에 있었다. 그동안 노모는 말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게 됐다. 그런 노모가 갑사동네에 온 첫날.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보고 “와”라는 외마디를 했단다. 기적은 그렇게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다.

“외마디를 듣고 어머니의 감성은 아직 살아있었구나! 각성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꽃사진과 가족사진을 확대해서 천정과 벽에 붙였습니다. 가족사진을 보고 한동안 눈을 떼지 못하셨습니다.”
그는 이곳으로 오기 석달 전 노모를 위해 해금도 배워뒀다. 섬집아기, 아리랑, 새야 새야 파랑새야, 동심초, 클레멘타인 등을 연주해 드린다. 식사 중 갑자기 자는 경우도 있어 잠을 깨울 요량으로 오빠 생각, 어머니 등의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치매는 최근 기억은 거의 잊고 오래된 기억은 할 수 있다기에 오래된 노래, 어머니가 예전에 즐기시던 노래를 불러드립니다.”

서울 강남에서 한의원을 하다가 노모를 위해 시골로 오게 되면서 많은 부분을 포기한 것은 아닌지 알고 싶었다.

“서울에 남편과 아들 둘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주부가 없지만 웬만큼 연습을 했기 때문에 크게 불편하지는 않을 겁니다. 건장한 남자 셋, 삶의 마지막 단계에 계신 어머니. 이들 중 나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은 어머니지요. 제가 서울 삶에서 포기한 건 없고요, 시골에 와서 자연이라고 하는 보화를 얻는 횡재를 했지요.”

그는 치매 노모와 자신의 삶에 대한 글을 웹진을 통해 기고하고 있다. 세상 모든 딸들이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이 비슷하기에 독자들에게 많은 감동을 주고 있다.

공주=김윤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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