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인터뷰- 남북 한의사 1호 김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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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인터뷰- 남북 한의사 1호 김지은
  • 승인 2009.11.26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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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연 기자

이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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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인터뷰- 남북한 통합 한의사 1호 김지은 진한의원장

“무리해 가며 개원했는데 비교적 순항이에요” 

고려의 한의사에 비해 의료 범위 자유로워
남북한 보건의료체제 자료 수집 연구할 터

남·북한 통합한의사 1호라는 별칭의 김지은 원장. 1999년 탈북, 중국을 거쳐 2002년 한국에 들어와 2005년 세명대 본과 1학년에 편입하고 한의사국가시험을 합격해 남한의 한의사가 된 것이 올해 2월이다. 5월30일 개원한 진한의원(경기도 부천시)이 이달 30일로 딱 반년이 됐다. 지난 6개월의 소회가 궁금했다.

“느긋하게 가자는 마음으로 다소 무리해서라도 개원을 했는데 지금까지는 순항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한국에서 자라 한의대 6년 과정을 거친 한의사들도 개원하려면 부담이 크다고 한다. 김 원장도 엇비슷한 심정이었지만 개원을 더 이상 늦추기엔 나이가 부담이 됐고, 무엇보다 임상의료는 실제 부딪치지 않고선 알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어 과감히 원장이 됐다. 그 결과는 텍사스 안타성 타구는 날린 모양이다.

남·북한 통합한의사 1호가 지닌 상징성은 남다르다. 진한의원을 찾는 환자들도 이 사실을 알면 무척 신기해 한단다. 북한 출신이라 꺼리기는커녕 오히려 신뢰감을 갖는 환자도 더러 있다고 한다. “환자들이 처방에 잘 따라줘 고맙죠. 한약이든 침이든 최선이라고 판단되는 처방법에 따라 소신껏 치료하고 있어요.”

김 원장의 치료수단은 여타 한의원과 마찬가지로 침이나 뜸, 한약이다. 그의 한의원 한 켠에는 약침을 제조하기 위한 병원 수준의 멸균실이 있다. 환제도 직접 만든다. 조분조분하던 말투가 제환시설·멸균실 얘기가 나오자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이 정도 수준의 멸균실을 갖춘 한의원은 국내에 없다고 해요. 북한에서 쓰던 약침제조법 중에서 효과가 좋던 처방법을 가지고 약침을 만듭니다. 환제도 마찬가지고요.”
남북의료 장점 결합해 국민 건강에 이바지
한약 간독성 등 국민의식 부족이 안타까워

환제나 약침 처방은 서너 가지 정도며 현재 특허를 낸 상태다. 북한에서도 약침을 쓴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졌다. 개원 당시 특이한 이력 덕분에 언론매체의 조명을 받은 탓인지 그는 훈련된 조교처럼 남북한 의료와 교육체계의 공통분모와 차이점을 차분하게 풀어냈다. 북한 의료체계도 고려의사(한의사), 신의(양의사)로 이원화돼 있다. 차이점으로는 북한 주민들의 한방에 대한 인식, 그리고 한의사들의 의료범위를 들었다. 북한에서는 고려의사와 신의사가 거의 비슷한 비율로 배출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주치의도 고려의사와 신의사 모두 배치될 만큼 고려의학에 대한 믿음이 깊다(한국은 노무현 정부 때만 한방주치의가 존재했다).

“북한에서는 양진한치가 정석입니다. 고려의는 양방교육도 받기 때문에 정맥주사를 놓거나 모르핀 또는 항생제 투여 등 한국에서는 양방 범위로 돼있는 부분까지도 진료할 자격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일까. 한양방 협진이 북한에서는 원활한 편이다. 배타성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김 원장은 “고려의사든 신의사든 자기 학문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면서도 서로의 고유성도 확실히 인정한다. 물론 한양방의 틈이 벌어지지 않는 데는 양진한치를 강조하는 정부 시책의 영향이 크다”며 “간복수 환자의 경우 양방 이뇨제를 많이 쓰면 내성이 생길 수 있어 고려의사가 주로 치료할 뿐 더러 간경변이나 암 치료에도 고려의사들이 적극적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현상은 북한 사회체제가 낳은 산물이다. 북한에서 병원은 모두 국가 소유이고, 의료정책도 정부 주도 아래 짜여져 의료권자들의 이익 추구나 직역 배타성은 거의 인정되지 않는 실정이다. 김 원장은 이 부분에서 남북한 차이를 절감한다고 토로했다.

환자들의 인식도 역시 김 원장을 당혹스럽게 한다. 북한과 달리 남한 환자들은 한약에 대한 편견이 심하다. 여기엔 환자 당사자 이외에 주변의 책임이 크다. 김 원장은 서운함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환자들이 의료정보에 밝은데다 언론이 한약 간독성에 대한 의구심을 제기하는 바람에 약 처방에 대해 의심 받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나름 최선의 처방을 냈는데 간독성 문제로 한약을 꺼리는 환자들을 보면 안타까워요. 양의사들이 한약을 먹지 말라고 한다는 얘기도 허무맹랑해요. 양약이든 한약이든 개개의 약물은 환자에 따라 좋게 또는 상반되게 작용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다만 이를 정확히 판단하는 게 한의나 양의의 의무이고 책임이겠죠.”
고려의 한의사에 비해 의료 범위 자유로워
남북한 보건의료체제 자료 수집 연구할 터

고려의사들은 진료 데이터를 갖고 수시로 임상발표회를 연다. 임상발표회에서는 특정 질환을 놓고 한양방을 병행할 것인지, 한방만으로 갈 것인지를 정한 뒤 그 효과를 비교 분석한 내용을 토대로 격렬한 토론이 벌어진다. 임상발표의 실적에 따라 직급이 올라가기 때문에 토론이 활성화될 수밖에 없다. 이런 대목은 임상보고가 학회를 중심으로 열릴 뿐 더러 그나마 개업의들의 임상보고가 많지 않은 우리 한의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치료권한 역시 남한에 비해 넓다. 한의계로선 부러운 측면이다. 권한이 적다 보니 남한 한의사들은 의료사고를 상정해 치료에 소극적 태도를 견지할 수밖에 없다. 북한도 의료사고가 종종 일어나지만 접근법은 조금 다르다. 김 원장은 “북한에서는 의료사고가 났을 때 법의학 감정위원회가 판단한다. 물론 의료인에게 1차적 책임이 있지만, 그에 앞서 의료인의 판단이 환자를 중심으로 시술했느냐, 치료의 선후관계가 바람직했느냐에 따라 판단이 내려진다”고 설명했다. 사법 당국이 아니라 법의학위원회에서 의료사고에 대한 판단이 이뤄진다는 점은 흥미롭다.

인터뷰 내내 김지은 원장은 어떤 질문을 던지든 남북한 의료환경을 비교해 가며 답했다. 놀라운 부분이 많았다. 우리의 한방 진료체계에 대해 고민하고 참고할 대목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한의원 부설로 개소한 남북한의학연구소 행보에 절로 기대감이 들었다.

“남북의 정규 의학교육 과정을 모두 밟은 것은 오직 저 혼자입니다. 그래서 양쪽의 의료·교육체계를 정리해볼 생각이 들었죠. 고려의학을 알면 혹 통일이 됐을 때 고려의사들에 대한 접근이 보다 쉽겠지요. 보건정책 수립에 대한 기초자료 역시 뼈대를 잡아 놓으면 누군가 살을 붙일 겁니다. 현재 연구소 회원이 300명 정도 되는데, 연구소가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서면 회원들과 세미나도 가질 예정입니다. 한의원이 자리 잡으면 저도 관련 연구에만 집중하고 싶어요.”

일련의 계획이 차곡차곡 쌓여있는 듯했지만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느긋하게 진행하겠다’는 말로 답변을 대신했다. 남북한 통합 한의사 1호인 그의 다음 행보가 궁금하다. 촉수를 바짝 세워야겠다.

이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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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이 정도 수준의 멸균시설을 갖춘 한의원은 저희가 처음이라고 합니다.” 멸균실로 기자를 안내한 김지은 원장의 뒤로 약침제조기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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