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료 강화(5)- 한방공공의료 발전과정
상태바
공공의료 강화(5)- 한방공공의료 발전과정
  • 승인 2009.10.14 10: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태종

이태종

contributor@http://


전통의학 활용 공공보건사업 요구 분출
대공협 한의과 전국 우수사례 발굴 공유

한의학 국가보건의료체계 속으로 진입

20세기에 한의학은 획기적인 변화를 맞았다. 한의사 면허제도가 역사상 처음 시행되었고, 한의학 교육방식은 학교교육 형태로 탈바꿈했으며, 이익집단으로서 한의학 단체도 결성되었다. 한의사들은 서양의학과 위생학을 학습했으며, 한의학 이론과 실제를 근본적인 측면에서 재검토했고, 중국의학에 대한 한국의학의 자주성을 고민했다.

이밖에도 의원과 약국을 거점으로 하는 진료방식의 확대, 의원과 약국의 도시 집중 심화, 국내외 약재교류의 증가, 교통 통신의 발달로 인한 약재수급 방식의 변화가 이루어졌다(국가 보건의료체계 속의 한의학, 1900-2000, 신동원).
그러나 공공부문에서 한의학의 역할과 위상은 ‘한의학의 공공영역 배제’라 여길 만큼 매우 제한적이다.

한방공중보건의사는 한방공공보건의료 역사

‘공공영역의 배제’라는 기형적 형태에 변화의 바람이 분 건 1990년대 들어서다. 87년 한방의료보험 실시로 전국 2,682개소의 한방의료기관이 지정됐고, 90년에는 보건소에 한방진료 시범사업이 경북 영양군, 강원 춘천군, 전북 순창군을 대상으로 처음 실시됐으며, 96년 들어 정부 조직 내에 한의약 전담 부서가 생겼다.

특히 93년 병역법과 농특법의 개정 통과로 기틀을 마련한 한방공중보건의사제도는 2002년 개정 병역법에 따라 한의군의관 30명, 한의과 공중보건의사 275명이 전면 확대배치된 이래 지금은 1,000여명의 한의과 공중보건의사가 공공보건의료 일선에서 일하고 있다. 비록 한방공중보건의사제도가 한방공공보건의료체계라는 거시적 관점이 아니라 한의사 전문의제도와 병역문제라는 협소한 틀에서 시작되어 단순히 확대배치 중심으로만 이뤄진 측면이 없지 않지만 한방공공보건의료를 고민할 때 한방공중보건의사제도를 빼놓고 얘기하기 어렵다.

필자 역시 2004년 전남 신안의 작은 섬에 첫 발령을 받았다. 인구가 총 1,000여명 밖에 안되는 조그만 섬에 의료기관이라곤 유일하게 우리 보건지소 뿐이어서 하절기 농번기 이외엔 언제나 이른 아침부터 진료 받을 주민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이래저래 낯설고, 열악한 환경으로 힘든 진료였지만 보람되고 즐거운 나날이었다. 거친 파도와 통통배에 몸을 맡기기도 하고, 고물 오토바이를 벗 삼아 방문진료 나가던 필자에게 공중보건의사 시절은 초보 한의사가 한국의 의료현실을, 책에서만 보던 지역사회 의료를 온몸으로 겪으며 한의사로서 담금질한 소중한 시간이다. 한방공중보건의사제도는 이런 개인적 경험을 넘어 누가 뭐래도 우리나라 한방공공보건의료의 근간이자 최일선이다.

제도 도입초 기본 인프라 구축 노력 눈물겨워

문제점도 없지 않았다. 기본 진료장비와 물품, 보조인력 심지어 진료실 자체가 없는 곳도 허다했다. 다양한 공공보건사업은 고사하고 기본적인 진료를 할 수 있는 여건조차 매우 열악했다. 때문에 확대배치 후 한의과 공중보건의사들의 첫 과제는 인프라 구축이었다.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한의과(대공협 한의과)가 조직돼 중앙 차원의 환경실태 조사에 들어갔다. 파악된 자료를 바탕으로 중앙 차원의 지속적인 개선을 요구했고, 지역 일선에서는 전국의 모범적인 개선사례 등을 근거로 지역 자체적인 인프라 개선 움직임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필자가 근무한 진료실도 기존 보건지소 창고를 활용해 만든 곳인데, 나무베드 3개와 진료책상, 진료용 컴퓨터 1대가 전부였다. 당연히 진료 보조인력은 없고, 보험산제 등을 정리 보관할 변변한 약장이나 캐비넷도 없었다. 그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전임자가 묵묵히 진료에 힘쓴 결과 환자 수와 지역민의 호응이 꾸준히 늘어났고, 결국 보다 못한 지역 주민들이 군청과 보건소에 민원을 제기하여 비정규직이지만 진료 보조인력과 몇 가지 진료실 물품들도 확보할 수 있었다.

어떤 지역에서는 한의과 공중보건의들이 자체적으로 사업계획을 작성하고 보건소장과 담판을 짓는 곳도 있었다. 지역민들을 위해 열심히 일할테니 기본적인 상황을 조성해 달라는 요구였다. 이렇게 초창기 선배들의 희생 아닌 희생, 열정과 헌신 그리고 지역민들의 호응에 힘입어 지역보건 한방인프라가 조성됐고, 공중보건의사들의 복리후생도 향상됐다.

대공협 한방공공보건사업 질적 도약 모색

지금도 한의사들에게는 공공보건의료의 개념이나 접근방식이 비교적 낯선 편이다. 하물며 한의학을 활용한 공공보건의료사업이 전무하다시피 했던 시절에는 오죽했으랴? 확대배치 이후 많은 노력의 결실로 기본적인 인력과 시설, 장비들이 갖춰지자 진료 이상의 것, 즉 전통의학을 활용한 공공보건사업에 대한 다양한 요구가 분출했다. 공공보건사업에 대한 소양이라곤 학부시절 예방의학 시간에 배운 내용과 지역 배치 전 2~3일 간 직무교육을 통해 알게 된 것이 전부여서 대공협 한의과는 전국의 우수 공공보건사업 사례를 수집 발굴해 서로 공유하기에 이르렀다.

복지부 협조를 받아 1년에 한 번 한방공공보건의료 학술대회도 열었다. 학술대회는 전국의 한의과 공중보건의들이 공공보건의료에 대한 정책방향과 현안 등을 논의할 뿐 더러 여러 부문의 인적 네트워크 형성을 도모하고 한방공공보건사업 경진대회 등을 통해 우수사업 아이템을 발굴해 다양한 모범사례를 확대시켜 나가는 소통의 장으로 활용됐다.

그 바람에 독거노인 재가암환자 등 지역사회의 의료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가정방문 진료사업이 진행되고 한의학을 활용한 예방 중심의 다양한 건강증진 프로그램이 선보이는 등 우리 한의학의 가능성과 희망이 오롯이 살아나지 않았나 싶다.

한의학건강증진보건소사업 실시로 공공보건사업 활성화

한방공공보건의료를 말하며 빼놓을 수 없는 게 2005년부터 실시된 ‘한의약건강증진HUB보건소사업’이 아닌가 한다. 이 사업으로 한방공공보건의료 사업을 위한 국가 예산이 확보됐고(물론 기존 건강증진 사업예산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지만^^), 이 예산을 근거로 여러 지역에서 한의학을 활용한 다양한 공공보건의료 사업들이 확대되고 있다. 모 교수님의 표현처럼 전세계적으로 전통의학을 활용한 국가공공보건의료 프로젝트로는 처음일 것이다.

이밖에도 한의과 공중보건의들은 소규모 학습연구모임을 활성화했다. 학습연구모임들이 지속성을 갖기에 한계가 있었지만 대공협 한의과는 학습연구모임의 결과를 정리하여 <한의과 공중보건의사를 위한 임상지침서> <한방공공보건사업 워크북> 등 작지만 소중한 성과물을 내놓았다. 특히 공공보건의료체계 내에서 한의학의 역할과 방향이란 논의를 위해 번역한 <세계보건기구 서태평양지구 전통의학 발전 전략> 출간은 정말 소중한 경험이 아닌가 한다.

공공보건의료 확대가 민족의학 토대 강화

민족의 역사와 운명을 같이 해온 한의학을 민족의학이라 부른다. 그런데 의학이 한의학이 되고, 서양의학이 의학이 되면서 한의학에는 전근대적인 봉건 잔재 보신의학 귀족의학이란 비아냥이 쏟아졌다. 이제 공공보건의료 체계 내에서 한의학이 그 역할과 위상을 되찾아 가면 실체 없는 비아냥과 부질없는 논쟁도 사라질 것이다.

이태종/ 마음한의원 원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