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한의협 이끌 지도자의 미덕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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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한의협 이끌 지도자의 미덕은 무엇인가
  • 승인 2009.09.12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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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석

강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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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계 정책비전 제시할 리더십 필요
한약분쟁 결과 한의계 요구들 정책화

지난 역사라는 것은 박물관에 전시된 박제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과 10여 년 전의 일이고 현재의 우리를 규정 짓고 있는 큰 사건이라면 더더욱 곱씹고 되씹어 보면서 현재와 미래를 준비하는데 활용해야 한다.

많은 한의사가 지난 20년 사이 한의계의 가장 큰 사건으로 ‘한약분쟁’을 꼽을 것이다. 필자는 현재 한의계가 겪고 있는 어려움은 한약분쟁에 대한 회고와 반성을 통해 해결책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93년 3월부터 10월까지, 95년 9월부터 97년 2월까지, 당시 한의과대학 학생들은 무려 26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수업 거부라는 극한투쟁을 하였다. 학생들에게 한약분쟁은 수업 복귀로 끝난 것이 아니라 1년씩의 유급과 함께 98학년도까지의 모든 방학을 반납하여 계절학기를 통해 부족한 학점을 보충하고 난 99년 초에야 마무리되었다.

약사법 시행규칙을 재개정하는데 실패하였고 2만여 한약조제약사가 배출되었을 뿐 아니라 한약사라는 새로운 직종의 탄생으로 한의사의 한약에 대한 독점적 권한이 줄었다고 본다면 한약분쟁은 한의계의 재원을 무의미하게 소진하기만 한 사건으로 평가 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독립적인 한의약법을 제정하라’, ‘보건복지부 내 한의약정국을 설치하라’, ‘한방공중보건의제도를 실시하라’, ‘국립대학 내에 한의과대학을 설치하라’, ‘정부 출연 한의학연구소를 설치하라’, ‘첩약의료보험 실시하라’는 등의 구호나 피켓이 기억나는가? 이 구호들은 한약분쟁의 일차적인 목표였던 ‘약사법을 재개정하라’ 또는 ‘한약조제시험은 원천 무효’라는 주장보다 더욱 중요한 것들이었다. 약사의 한약조제권을 막는 것보다 한의사가 국가보건의료정책 안으로 진입하는 것이 사실상 더욱 중요하고 큰 문제였기 때문이다.

당시 한의사들이건 학생들이건 1~2년의 희생으로 한의계의 10년 이상의 반석을 마련하려고 했기 때문에 장시간의 투쟁에 동참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약분쟁의 후광으로 첩약의료보험을 제외한 한의계의 요구들이 지난 10여 년 사이에 하나씩 하나씩 이루어졌다.

독립한의약법을 요구하였는데 한의약육성법이 제정됐다던가, 서울대를 원했는데 부산대에 국립한의전원이 생겼다던가, 첩약은 실패했지만 침구의 보험재정이 확대되었다던가 하는 것처럼 한의계의 요구 수준에 못 미쳤지만 명목상으로는 거의 다 이루어졌다.

이것은 한약분쟁 때 회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정책 비전을 명확히 제시하였기 때문에 이루어진 결과물들이다.

지난 몇 년 간 대한한의사협회의 집행부가 한약분쟁 때처럼 회원들의 마음을 진심으로 얻지 못하는 것은 단지 경제적으로 어려워서만일까? 필자는 최소 10년 이상의 한의계 미래에 대한 새로운 정책 비전을 제시하여 공감을 이끌어 내지 못하면 리더쉽이 발휘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몇 달 후면 차기 회장 선거가 시작될 것이다.

후보로 나서려고 하는 분들이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10년 이상의 한의약의 미래 비전을 회원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준비를 해오시라고 권해 드리고 싶다. 앞으로는 ‘한약분쟁’이 아니라 ‘한의약 발전의 토대 마련을 위한 대정부 운동’이란 표현을 쓰자고 사족으로 덧붙인다.

강연석yeonkang@wku.ac.kr
원광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교수/ 대한한의사협회 역사편찬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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