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약연구 10년의 평가와 향후 10년의 전망(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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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약연구 10년의 평가와 향후 10년의 전망(6-2)
  • 승인 2009.07.03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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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학신문 창간 20주년 특별기획I

용어 정리해 실제 응용방법 찾는 연구를


■ 임상가에서 바라보는 한의약R&D ■

한의학 관련 연구에 대해서 예전부터 느낀 감정은 ‘답답함’이었다. 졸업 후 새로운 분야를 경험해보고 싶어서 보건대학원으로 진로를 결정한 7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 ‘답답함’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나 스스로 치열하게 연구를 진행하거나 실험실에 매달린 바가 없기에 무분별한 비판을 하긴 힘들지만 현재까지 진행돼 온 각종 한의학 관련 연구가 만족스럽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지난 5월29일에 제20차 한의학미래포럼 ‘한의학, 지난 10년의 자화상, 그리고 미래비전-연구분야’에서 지적된 내용을 크게 나누면 2가지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연구인력 부재 및 부실한 연구기획력이고 나머지 하나가 임상과 연구의 괴리다.

연구인력 부재 및 부실한 연구기획력은 결국 같은 말이다. IT이후 BT로 대변되는 생명공학, 의료산업에는 엄청난 연구인력과 비용이 투자되고 있고 의료계에도 거대 제약산업이 끊임없이 커지고 있는 실정이지만 한의계는 그렇지 못하다. 현대 사회에서 연구는 대부분 산업화를 등에 업고 있는 실정이다. 한의계 역시 최종적으로는 산업화할 수 있는 연구에 집중되는 게 당연하다. 최근 화장품이나 식품, 음료분야에서 한약재관련 R&D가 엄청나게 진행되는 것도 이런 맥락으로 볼 수 있다.

◆ 한의약 산업화 필요하긴 한데…

반면 한의학 자체는 어떤가? 과연 한의학은 산업화하기 좋은 형태로 바뀌었는가? 또한 산업화하는 게 옳은 것인가?
산업화를 위해서는 대개 대량생산이 가능하고 품질관리가 돼야 한다. 한의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침, 뜸은 이미 상품화 돼 있다고 볼 수 있고 1만5000명이상의 의료인이 배출된 상태이기 때문에 규모면에서는 어느 정도 시장이 형성돼 있다.

다만 한약의 경우 재배, 채취, 관리에 대한 규정이 아직도 미흡하고 한약이 대부분 천연물임을 감안하면 종자에 대한 관리, 해당 식물의 유전자에 대한 연구가 아직도 미흡하다고 볼 수 있다. 한약재에 대한 품질관리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종자에 대한 확정 및 유전자에 대한 관리가 필수적이며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무궁무진하다고 할 수 있다.

◆ 한의학 개념의 모호성

문제는 오히려 이런 한의학 관련 소모품이나 한약재가 아니라 한의학 자체이며 또한 이것을 행하는 한의사의 진료행태라 볼 수 있다. 산업화 자체가 옳고 그르냐는 일단 여기서는 논외로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좀 더 철학적이고 사회적인 함의를 가지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의학 자체가 산업화하기 어렵다는 것은 일단 개체의 특이성을 인정하기 때문일 것이다. 체질을 나누기도 하고 비슷한 증상일 때도 개체의 특이성에 따라 다른 치료를 해야 된다는 전제조건이 있다. 그런데 이 특이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문제는 많다.

가령 양방에서도 위암, 위염, 위궤양에 대한 병리적 구분이 있듯이 한방에도 병증에 대한 개념이 존재한다. 腹痛이라 할 때 寒腹痛, 熱腹痛, 太陰腹痛 등 여러 가지 형태로 구분을 하고 있는데 이런 기준이 있다는 자체는 어떤 유형성에 대한 인식은 하고 있다는 말이다. 문제는 寒腹痛, 熱腹痛 등을 구분하는 양상이다. 의서를 살피면 환자가 호소하는 주관적 통증 양상에 대한 나열이나 脈의 차이, 그리고 대변의 폐색유무 등을 기준으로 진단을 한다. 대부분 한의학 병증이 양방의 병명(disease)과는 다르게 증후군(syndrome)형태로 나열돼 있다. 정보 중 일부분은 환자의 개인적 기억에 의존한다.

굳이 현대 과학의 연구결과가 아니더라도 기억력의 한계는 분명히 존재한다. 또한 개인의 표현이나 감각에 대한 정도는 서로 다를 수 있다. 결국 한의학에서 사용하는 병증이나 여러 가지 개념은 상당히 모호성을 띄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한의학에서 개인의 특이성을 중시한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기보다는 한의학에서 사용하는 모든 개념들의 모호성이 산업화에 있어서 더 큰 문제일 것이다.

◆ 기초연구에 집중하자

그런데 이런 모호성에 대해서 내부 비판도 적고 여기에 대한 적절한 연구도 적다. 과학발전을 말할 때 물리, 화학같은 기초과학이 잘 발전해야 응용과학이 더 발전할 수 있다는 말을 우리는 예전부터 많이 들었다. 한의학 연구가 의미있게 되기 위해서는 기초적인 내용에 좀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한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인삼의 사포닌성분이 신경세포에 미치는 영향이겠는가? 아니면 인삼을 쓸 수 있는 氣虛의 상태이겠는가? 氣虛라는 병증이 있지만 인삼을 꼭 써야 되는 氣虛증상이 무엇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氣虛증상중 自汗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날씨가 더워서 나는 땀도 포함할 것인지? 시간당 몇 cc 이상을 自汗으로 분류할 것인지? 또한 氣虛의 상태라는 게 처음에는 어떤 원인과 어떤 형태로 발생하며 어떤 과정을 거쳐서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 또 다른 병증의 형태로 달라질 수 있는지 한의학이 바라보는 인체의 자연사 그리고 병증의 예후가 연구돼야 할 것이다.

이런 개념들이 한의학에서는 기초과학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내용들이 계속 쌓여야 한의학의 생리와 병리가 더 튼튼해지고 더 좋은 치료법과 진단법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양방 생리나 병리의 내용을 뒤집을만한 획기적인 내용도 나올 수 있을지 모른다.
이런 사소해 보이는 모든 개념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갈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국가나 기업이 요구하는 것은 다 정리되고 완성된 내용뿐이기에 현재의 연구는 엉뚱한 곳에서 흐르는 경우가 많다. 수많은 양의사들이 행하는 한의학에 대한 무분별한 비판은 대부분 장하준 교수가 지적하듯 ‘사다리 걷어차기’의 다른 모습일 뿐이다. 현대의학 역시 지금의 형태를 띠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했는지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 이제 와서 굳이 한의학에만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는가? 여태까지 진행되어 온 수많은 한의학 관련 연구는 대부분 양방 흉내내기 정도로 생각한다. 한약재를 도구로 이용하고 혈자리나 기타 침치료를 이용하긴 했지만 정작 실질적인 내용은 약리학이나 생화학을 이용하는 게 대부분이다. 이제는 오히려 한의학의 용어나 개념을 정리해보고 그것을 실제에 응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는 연구가 필요하지 않을까?

氣虛를 평가하기 위해 혈액검사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명백히 한방의료행위다. 외형적 형태가 동일해도 혈액검사를 통한 해석이 달라진다면 그것은 충분히 한의학에 가치를 부여할 것이다. 다만 氣虛의 어떤 형태가 혈액검사를 통해 확인될 수 있는지 모형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처음부터 잘 되지 않겠지만 여러 가지 연구인력과 협력해서 만들어간다면 전혀 불가능하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사회와 국가에 널리 알려서 여기에 좀 더 관심을 가지게 하고 그 가치를 인정받는 작업도 진행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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