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만의 티베트 이야기(30·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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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만의 티베트 이야기(30·끝)
  • 승인 2008.12.19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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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남은 길은 더 아름답게 가거라!

이제 마지막 나의 Philosophy를 이야기하고 물러날 때가 온 것 같다. 모든 것은 有始有終이다 그러나 본래 無始無終이다. 이 글은 여행기가 아니고 오랫동안 내 마음 속에 담아둔 ‘티베트 이야기’를 Bike에 태워서 세상에 소개한 것이다. 이 글은 Thinking과 Activism이 서로 싸우고 갈등하면서 또는 다시 화해하면서 쓰인 글이다.

존재와 현상과 나머지 빈 여백을 채울 수 있는 상상력의 조합이 아름다움을 결정한다. 그러한 상상력이 있어 浪漫이라는 것도 존재한다. 상상력의 외연에 나타나는 Aura 또는 영롱한 무지개가 낭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름다움에 접근해가는 동경, 조금씩 이루어가는 성취감, 빈 공간을 채우는 낭만 때문에 나는 살고 있다. 이런 동경, 성취감, 낭만이 동력이 되어 나의 생뚱맞은 행동주의적 인생관이 이루어졌다. 人生은 가는 것이다. 그래서 人生은 人行이기도 하다. 人行의 가장 궁극은 人을 버린 仁行일 것이다. 인생은 나그네길이라서 旅行이다.

나의 旅行인 “고행”을 소개한다.
첫 번째 고행은 呱呱之聲을 지르는 呱行이 시작이었다. 그 다음 直立해서 걷는 GO行이었다. 외로운 행성(Lonely Planet)에서 홀로 가는 孤行이 나의 삶 전반을 지배했다. 그렇게 가는 길은 사무치게 괴로운 苦行일 때도 많았다. 외로움과 괴로움을 벗 삼아서 Another World를 꿈꾸며 간 高行도 있었다.

나이 들면서 다시 나의 삶을 回顧하는 顧行을 하면서 성찰하게 된다. 그래서 나의 길이 진실로 한결같은 固行을 꿈꾼다.
그리고 남은 이들이 나의 마지막을 訃告하는 告行으로 끝날 것이다. 한자가 표의문자이지만 漢字의 여러 의미를 한글에 담고 싶었다. 그 말이 바로 “고행”이다.

목숨을 草芥같이 여기는 선사들이나 순교자들에게 부끄럽지만 마지막 고행(告行)은 받아들이기 싫다. 그냥 열심히 도를 닦아 파랑새가 되어 샹그릴라(이상향)로 사라지는 꿈을 꿔본다.
우리는 장무에서 1박하고 아침 일찍 발길을 돌리면서 만난 장례행렬은 이국인의 눈에는 축제의 행렬과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하안 카타가 걸려있는 하얗게 싼 사각형 관 안에 안치된 시신을 장정 몇 명이서 들고 가고 있다.

티베트는 나무가 귀하고 잘 썩지 않으므로 天葬을 한다. 2m가 넘는 긴 관악기를 불고, 큰 소라로 만든 나팔을 불며, 긴 여음이 발길을 끌며 맨 나중에 따라오는 징을 치고 있다. 사람들의 손에는 香이 들려 있다. 갈 길이 먼 우리는 그들을 추월해 간다. 오늘 밤 늦게라도 초모랑마(에베레스트 티베트 명) BC가 있는 롱북곰파까지 갈 예정이다!

티베트의 天葬은 만물의 영장으로 태어나 살다 떠나는 사람들이 다른 중생에게 하는 마지막 최고의 보시이다.
‘내 피를 마시고 내 살을 먹어라’ 하신 예수의 말씀이 생각난다. 죽은 자의 살과 비계가 다른 중생의 피가 되고 살이 되게 하는 의식이다. 몸을 토막 내는 이 천장은 잔인해 보이지만 가장 아름답고 깊은 슬픔을 느끼게 한다. 몸을 불태우는 화장은 마지막 순간에도 또 다른 무엇인가를 죽이고 소모하는 것이다.

엄격한 수도 생활과 평생 침묵으로 유명한 ‘트라피스트 수도회’ 수사들은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한다고 한다. 그 말은 ‘죽음을 상기하라’는 뜻이다. 이 수도승들의 평생 話頭인 셈이다.

로마에 가면 카푸치노 승단의 예배당(산타마리아~~)이 있고 지하에는 까따꼼베(지하묘소)가 있다. 이곳에서 수도승들 시체의 살이 다 썩고 나면 마지막 뼈들이 남는다. 이 뼈들을 재료로 怪奇스런 인테리어를 꾸며놓았다. 촛대와 제단, 벽장식, 샹들리에까지 모두 뼈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을 보면 무엇이 느껴질까?

三毒으로 가득한 우리 삶에 현기증 나는 충격을 준다. 여기 “MEMENTO MORI”라는 말은 모든 방문자들에게 話頭를 던져 준다. 그리고 “우리도 한때는 너희와 같았다. 당신들도 언젠가 우리처럼 될 것이다”라는 말은 지나고 나면 긴 세월 영욕의 삶도 暫時였다는 말이다. 우리는 아주 짧은 이승의 삶을 살다가 다시 영원한 길로 들어선다. 그 영원한 길의 삶(永生)을 기독교는 역설하고 있다.

카푸치노? 귀에 익은 소리 아닌가? 그렇다, 카푸치노 커피! 이 커피는 카푸치노 승단의 수도승들이 마시던 커피에서 유래가 되었다. 커피의 흰 거품 위에는 남국에서 온 계피가루가 뿌려져 있어서 향기를 더한다.

우리 다 같이 MEMENTO MORI!
죽음을 인정하고 죽음 앞에 당당히 설 때 그 삶은 더욱더 강하고 향기롭게 빛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남은 길은 더 아름답게 가거라! <연재 끝>

[추신] 초봄에 시작한 이야기를 초겨울에 마친다. 이야기의 말미는 늘 미완성이란 여운을 남긴다. 그래서 아쉬움이 움트는 것이다. 그 움이 싹터서 여러분의 상상력을 채워주길 바란다. 그 동안 非學淺才한 글을 실어준 민족의학신문사와 읽어주신 독자에게 감사드린다.
- 소울메이트

김규만(서울 은평구 굿모닝한의원)

※ 그동안 ‘김규만의 티베트이야기’를 애독해주신 독자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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