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열 칼럼] 한국의 동서의학 논쟁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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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열 칼럼] 한국의 동서의학 논쟁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 승인 2007.12.14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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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는가? 동아시아 지역에 서양의학이 들어 온 후부터 시작된 동서의학 사이의 논쟁은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일제시기 고사 위기에 처했던 한의학은 1930년대 조헌영 선생을 비롯한 근대적 한의학자들이 나서서 신문과 잡지 지면을 통해 서양의학 진영과 소위 동서의학 논쟁을 벌임으로써 부흥의 불씨를 살릴 수 있었다. 이 논쟁을 통해 한의학은 인류 의학에 공헌할 수 있는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고, 윤길영 선생 같은 분들에게는 한의학 연구에 투신하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이런 면에서 30년대 논쟁은 한국 동서의학 논쟁사에서 최초의 대규모 논쟁이자 가장 모범적이고 건설적인 것이었다. 지금까지도 주제나 내용 면에서 이 수준을 넘어서는 논쟁은 없었다고 평가된다.

이후의 주요 동서의학 논쟁들은 대부분 제도권 내에서 한의사 제도의 정착을 위한 투쟁과정에서 이루어졌다. 한의사에 비해 근대적 교육을 받았던 서의사들은 서구식의 보건위생 정책과 제도를 앞세워 정부와 국회 등 제도권을 장악했고, 이 권력을 무기로 가능하면 한의사, 한의학을 법이나 행정체계로부터 배제하려고 했다. 전통의학 제도를 없애고 서구적 의료제도를 성공적으로 이식한 일본은 그들이 지향해야 할 훌륭한 모델이었다. 그러므로 논쟁의 장소도 자연스럽게 정부나 국회와 같은 제도권 내가 중심이 되었던 것이다.
반면 한의사들에게는 법이나 행정체계 속에서 한의사로서의 지위나 임무를 보장받는 것이 존폐의 위기에 몰린 당시 상황에서 그들의 생존을 담보할 유일한 방편으로 인식되었다.

1951년 국민의료법 제정 때 의사와 대등한 수준으로 漢醫師, 漢醫院과 같은 명칭을 법에 명문화하기 위해 국회를 대상으로 벌인 청원 운동이 그랬고, 1963년 현대적 교육을 통한 한의사 배출을 제도화하기 위해 5.16 군사정부의 국가재건최고회의를 상대로 벌인 청원 운동이 그랬다.
그리고 가깝게는 ‘재래식 한약장’이라는 지극히 상징적인 단어 하나를 두고 벌어진 1993년과 96년 두 차례의 한약분쟁도 그랬다. 이런 제도권 내에서의 투쟁은 항상 제도권 밖에서의 격렬한 동서의학 논쟁을 수반했다. 결국 국민 여론의 향배가 서로의 입장을 관철하는 데 필요한 주요 지지기반이 됐기 때문이다.

논쟁의 단골 주제들은 주로 한의학의 과학성, 현대화, 객관화, 의료일원화와 같은 것들이었다. 이 같은 논쟁들은 결과적으로 한의계 내에서도 이 주제들과 관련된 다양한 담론들을 생산했으며 한의학이 이와 같은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는 추동력이 되기도 했다.
지금 한의계 일각에서는 개업가 불황이 의사들의 조직적인 ‘한의학 죽이기’ 공세와 관련이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대부분의 병원이나 의원들에서 한약의 간독성을 조직적으로 선전하고 있으며, 내원 환자들에게 한약을 복용하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는 것이 하나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또 ‘허준이 죽어야 나라가 산다’, ‘미안하다 한의학’과 같은 한의학을 비방하고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책들도 잇따라 발간되고 있다. 이들은 이런 움직임의 배후에 의사협회 산하 기관인 ‘의료일원화추진위원회(위원장 유용상)’가 있는 것으로 지목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이 사실이라면 의사협회가 ‘의료일원화추진위원회’라는 이름을 내건 기관을 앞세워 ‘한의학 죽이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 된다. 이것은 한의사, 한의학을 고사시켜 그들이 원하는 형태의 일원화를 강압적으로 이루겠다는 의도를 공공연히 드러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사용하는 전략도 대단히 비겁하다. 동서의학 논쟁의 역사에서 속된 말로 이렇게 조직적으로 ‘뒷담화’까는 방법을 사용했던 경우는 없었다. 역대 최악의 논쟁 파트너인 셈이다. 동서의학 양 진영 사이에 서로를 인정하고 또 서로의 발전을 추동할 수 있는 생산적이고 정정당당한 논쟁의 장이 회복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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