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북경 여행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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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북경 여행기(2)
  • 승인 2007.10.19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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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성 안으로 들어가니 인파가 부쩍 줄었다. 관람료를 받는 곳에는 사람이 적다고 한다. 자금성은 1407년 명나라의 영락제가 남경에서 북경으로 천도하기 시작할 때부터 건립하여 1420년에 완성한 궁전이다. 북두성의 북쪽에 위치한 자금성이 천자가 거처하는 곳이라는 데서 유래된 말로, 천신이 거처하는 북두성이 10,000칸이어서, 천자가 거처하는 자금성을 9,999와 1/2칸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황제를 천자(天子)라고 부르는 중국인의 천민사상(天民思想)을 엿볼 수 있었다. 임금만이 100칸 집에서 살고,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는 정승도 99칸만 소유할 수 있었던 우리나라와 그 규모가 비교가 되었다.

남북 약 1,000m, 동서 약 760m의 넓은 궁전은 10m 높이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 둘레에는 도랑을 파놓았다. 지상을 통한 침입을 방지한 것이고, 땅 밑에는 여러 층의 숫돌을 깔아놓아서 지하로의 침입경로도 차단하였다고 한다. 황제는 2개의 층에 마련된 수십 개의 침대에서 번갈아 잠을 청하여서, 황제가 그 날 어느 침대에 들어갈 지는 누구도 예상 못했다고 한다. 자객의 침입에 대비하는 여러 가지 방책들을 들으면서, “太陰之情氣 恒欲內守而不欲外勝”이라는 확충론의 조문이 떠올랐다. 태음인의 내수(內守)하는 모습이 한편의 영화처럼 머릿속에 그려졌다.

궁녀들이 황제를 시해하려는 모의를 했다는 이유로(실제로 시행을 했다가 실패한 것이 아니라) 모든 궁녀들을 불태워 죽인 적이 있다는데, 그 이후 궁녀들의 원혼을 두려워한 황제가 침소를 옮겼다고 한다. 태음인이 겁심(怯心)을 지나서 정충(정충)까지 벌어진 상황으로 보인다. 영화 ‘영웅’에서 진시황을 암살하려는 자객들이 서로 경쟁을 하는 것처럼, 주변에 많은 이민족이 있어서 황제의 목숨을 노리는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호위무사를 거느리고 있는 황제가 자객의 침입을 두려워하는 모습이 지나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외부의 침입에 이토록 대비한 왕조는 없었던 것 같다. 혼란스러운 고려 말의 무인정권시대에도…. 왜적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한 십만양병설을 무시해버린 선조와 비교되는 부분이다.
자금성 관광을 마치고 조양서커스를 관람하였다. 지금까지 보았던 대부분의 서커스가 타인의 고통을 즐기는 것 같아서 유쾌하지만은 않았는데, 아름다운 무용, 음악과 어우러진 조양서커스는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과 함께 눈과 귀도 즐거웠다. 공연 전 잠깐 흘러나온 ‘여자12악방’의 음악도, 매점에서 만난 ‘오리온 초코파이’도 반가웠다.

중국에서 처음 만나는 전통음식은 북경의 명물이라는 ‘베이징 덕’. 그 명성을 많이 들었기에 기대를 했는데, 식당에 도착하기 전 미리 테이블에 올라와 식어버린 오리구이가 실망스러웠다. 그리고 상상을 초월하는 중국음식의 느끼함! 기름에 튀기고 볶은 메인요리의 느끼함은 예상했지만, 담백한 맛을 즐겼던 게살수프에도 기름이 1컵 정도는 들어있는 듯했다. 진고유액 중에 유(油)를 소화 흡수하는 소장(小腸)이 가장 큰 태음인의 음식답다. 서울에서 가져간 컵라면을 먹으며 북경의 첫날밤을 보냈다.

김호민
서울 강서구 늘푸른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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