醫宗損益의 內局日記 인용에 대한 연구

임상 한의사 3인이 연구한 황도순, 황도연(82)

2021-05-22     한기춘, 서정철, 최순화

Ⅰ. 서론

<醫宗損益>에는 <內局日記>에서 해당 부분을 인용하였다고 출전을 밝힌 부분이 4번 나온다. 필자는 원출처를 확인하기 위해 <內局日記>, 즉 內醫院에서의 醫藥 기록인 <藥房日記>를 조사하였으나 英朝 부분은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惠庵이 인용한 <內局日記>에 해당하는 내용의 진위에 대한 의구심으로 본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1)

이번 호에서는 <醫宗損益>의 <內局日記>에서 인용한 부분을 <朝鮮王朝實錄>과 <承政院日記>에서 원문을 찾아 대조하여 조사한 내용을 卷次순으로 정리하여 밝히고자 한다.

 

Ⅱ. 본론

1. 六味地黃丸(卷之二 丑集 五臟 腎病虛實)

“英廟朝丙戌, 賜名萬全湯<內局日記>”

 

2. 腎瀝湯(卷之六 巳集 風門 暴瘖)

“英廟朝丙戌, 進 御湯劑, 加鹿茸遠志, 各一兩, 人參附子, 各五錢, 純廟朝癸亥, 東朝, 微患右部之麻痺, 去黃芪五味子, 减磁石玄參甘草地骨皮, 加獨活萆薢橘皮白朮, 各一兩, 乾薑七錢, 秦艽五錢半, 人參二錢半<內局日記>”

 

3. 八味逍遙散(卷之七 午集 火門 潮熱)

“甲寅, 上候, 頭部小癤, 晝夜煩燥, 寢睡不穩, 進御奏效, 詳載內局日記<濟衆>”

 

4. 理中建功湯(卷之八 未集 虛勞門 虛勞通治)

“英廟朝, 進 御湯劑也, 建功二字, 戊寅賜名, 人參初則二錢, 漸加至五錢, 桂枝乾薑各二錢, 陳皮白朮白芍藥白茯苓各一錢, 甘草灸五分, 或加鹿茸砂仁白豆蔻附子, 暑加香薷白扁豆, 氣滯加香附子, 頭痛加半夏天麻. ○自丁丑至丙申, 所 進, 幾至萬貼<內局日記>”

 

Ⅲ. 고찰

內局은 조선시대 內醫院의 별칭으로 內藥房, 藥房, 藥房, 藥院 등으로도 불렸다. <藥房日記>는 왕실의 진료를 맡아 본 內醫院의 업무를 수록한 일기로 현재 남아있는 <藥房日記>는 憲宗 8년(1842)과 哲宗 년간(1850~1863)의 기록으로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필사본 10책이 소장되어 있다.

<藥房日記>는 內醫院에서 매일의 업무 내용을 기록한 官廳日記의 하나인데 內醫院의 인사 내용과 업무를 정리한 일기면서 왕실의 진료 기록도 수록되어 있으며, 問安은 통상 국왕, 대왕대비, 왕대비, 중궁전의 순서로 이루어졌다.2)

그림 1. 理中建功湯 賜名(朝鮮王朝實錄)

 

<藥房日記>는 <承政院日記>3) 인조 15년(1637)에 나오는데 “永崇殿親祭罷後, 藥房三提調問安. 答曰, 知道. 藥房日記”라고 되어 있고, <朝鮮王朝實錄>4)에는 仁祖 26년(1648)에 “藥房提調趙絅, 都承旨金南重等退而啓曰 "臣等考諸藥房日記, 則曾在乙酉歲,……”라고 나온다. <內局日記>는 <承政院日記> 효종 5년(1654)에 나오는데 “以伊川圍籬安置內官狀啓, 傳于政院曰, 前日下去醫官, 還爲下送, 使之及時治療. 內局日記”라고 되어 있고, <朝鮮王朝實錄>에는 <內局日記>가 나오지 않는다.

<醫宗損益>은 <濟衆新編>을 많이 참조하였지만 <內局日記>는 <濟衆新編>5) 卷之一 火門 潮熱의 八味逍遙散에 1번만 나오는데 “甲寅 上候頭部小癤 晝夜煩燥 寢睡不穩 進御奏效 詳載內局日記”라고 나온다. <醫宗損益>은 이를 그대로 인용하였다.

六味地黃丸에 대하여 <醫宗損益>에는 “英廟朝丙戌, 賜名萬全湯<內局日記>”라고 나오는데 <朝鮮王朝實錄>에는 기록이 없고 <承政院日記> 영조 42년(1766)에는 “上曰, 藿香正氣散停止, 加味地黃湯, 依前煎入, 可也. 出榻敎 上曰, 地黃湯之名俗矣, 予當賜名矣. 內局諸臣, 以監煎事先退. 上曰, 頃年己卯, 理中湯, 特賜名建功矣。至今收效, 專由於此, 今者所進地黃湯, 材料俱備, 於予當劑, 此乃一時之名, 其效長久, 宜乎定名。吁嗟望八, 其豈爲身? 此誠爲宗國爲沖子也. 其名不可俗也, 此亦代八味元矣. 特賜名曰, 萬全湯, 局方知悉.”이라고 나온다. <承政院日記>에 의하면 萬全湯이라고 하사한 약은 六味地黃丸이 아니라 加味地黃湯였던 것인데 이것이 惠庵의 실수인지 <內局日記>의 오류인지 實錄의 誤記인지 확인을 하기 위해서는 좀 더 연구가 필요하다.

腎瀝湯에 대하여 <醫宗損益>에는 “英廟朝丙戌, 進御湯劑, 加鹿茸遠志 各一兩, 人蔘附子 各五錢……<內局日記>”이라고 나오는데 <朝鮮王朝實錄>에는 기록이 없고 <承政院日記> 영조 42년(1766) 3월 28일 기록에는 “泰遠奏曰, 建功湯, 今夕爲二十五貼, 明日則腎瀝湯進之宜矣. 上曰, 理中建功湯, 自明日停止, 腎瀝湯前方, 加遠志鹿茸各一兩煎入事.”라고 나온다. 그런데 여기에는 “遠志鹿茸各一兩”은 있으나 <內局日記>의 “人蔘附子 各五錢”은 보이지 않는다. 한편 <承政院日記> 영조 46년(1770) 기록에는 “上曰, 今則進御腎瀝湯, 可乎? 諸醫曰, 然矣. 上曰, 建功湯, 自明日停止, 腎瀝湯本方中, 減川芎, 加人蔘五錢, 白朮鹿茸各一兩, 附子五錢煎入.”이라 하여 “減川芎, 加人蔘五錢, 白朮鹿茸各一兩, 附子五錢”이 나오는데 <醫宗損益>에서 인용한 <內局日記>의 기록이 영조 42년과 영조 46년 實錄 중 어느 것에 해당하는지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腎瀝湯에서 純廟朝癸亥(1803년)에 東朝의 麻痺 관련 기술은 순조 3년(1803) <承政院日記>에 나오는데 “龍輔曰, 大王大妃殿進御腎瀝湯當否, 累日日次與內局諸醫及方外醫官, 爛熳商議, 昨日日次, 始議定矣. 本方中去黃茋五味子, 減磁石七錢, 玄蔘七錢五分, 甘草五錢, 地骨皮二錢五分, 人蔘加二錢五分, 加獨活萆薢白朮橘皮各一兩, 乾薑七錢, 秦芃五錢,……”이라고 되어 있으며 <內局日記>와 처방 내용이 대동소이하다.

八味逍遙散에 대하여 <醫宗損益>에는 “甲寅, 上候, 頭部小癤, 晝夜煩燥, 寢睡不穩, 進御奏效, 詳載內局日記.<濟衆>”라고 나오는데 <朝鮮王朝實錄>에는 기록이 없고 <承政院日記> 현종 15년(1674)에는 “藥房再啓曰, 伏聞醫官所傳之言, 中殿症候……不可遽用攻利之劑, 姑先以八味逍遙散元方.”이라고 나오는데, 현종 15년이 甲寅은 맞지만 頭部小癤과는 관련이 없고, 더구나 왕이 아니라 中殿의 症候에 대한 처방으로 <內局日記> 원본을 찾을 수 없어 정확한 것은 알 수가 없다.

理中建功湯에 대하여 <醫宗損益>에는 “英廟朝, 進 御湯劑也. 建功二字, 戊寅賜名.”이라고 나오는데 <朝鮮王朝實錄> 영조 34년(1758) 12월 21일에는 “上曰, 此理中湯之功也. 賜名理中湯, 曰理中建功湯.”이라고 나온다(그림 1). 그리고 <承政院日記> 영조 34년 12월 25일에는 “上曰, 氣似廻矣, 湯劑加建功二字,……”라고 나오는데(그림 2) <內局日記> 기록과 일맥상통한다.

그림 2. 理中建功湯의 建功二字(承政院日記)

 

현재까지 <內局日記>를 인용한 한의서는 <醫宗損益>과 <濟衆新編> 외에는 거의 없다. <醫宗損益>도 <內局日記>를 인용하였지만 정작 <醫宗損益>의 引用諸書나 <濟衆新編>의 引用諸方에는 <藥房日記>나 <內局日記>가 나오지 않는다.

추후 英祖와 純祖 시대 부분이 나오는 <內局日記>를 발굴하여 <醫宗損益>이 인용한 부분의 실체를 확인하는 연구가 기대된다.

 

Ⅳ. 결론

<醫宗損益>의 <內局日記> 인용에 대해 연구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1. <醫宗損益>에는 <濟衆新編>의 <內局日記> 치험례 1건 외에 3건이 추가로 수록되어 있다.

2. <醫宗損益>에서 인용한 <內局日記> 치험례는 <朝鮮王朝實錄>과 <承政院日記>에서 유사한 기록을 찾을 수 있다.

 

<참고문헌>

1. 惠庵, 醫宗損益, 필자 소장.

2. 이규근, 朝鮮 後期 內醫院 硏究, 2007, 중앙대학교 박사학위논문.

3. 承政院日記,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4. 朝鮮王朝實錄(http://sillok.history.go.kr/id/kba_10204006_010).

5. 康命吉, 濟衆新編, 필자 소장.

그림 1. 理中建功湯 賜名(<朝鮮王朝實錄>)

그림 2. 理中建功湯의 建功二字(<承政院日記>)

 

한기춘·서정철·최순화 / mc맥한의원·우리경희한의원·보광한의원